지난 2월 대구에 이어 충북 청주에서 29주 고위험 임신부가 응급 분만할 병원을 찾지 못해 부산까지 옮겨졌지만 결국 태아가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분만실 뺑뺑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24시간 분만·고위험 신생아 진료’가 가능한 지역모자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전혀 작동하지 못했다.
3일 보건복지부와 소방당국 등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1일 밤 11시5분께 충북 청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임신 29주차 30대 임신부가 출혈 증상으로 태아 심박수가 떨어지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는 119 신고가 들어왔다. 해당 산부인과는 119 신고 전부터 충북대·충남대·대전을지대·건양대·순천향대(충남 천안) 병원 등 지역 내 상급병원에 전화를 돌렸지만, 모두 수용을 거부했다.
119 소방은 충청을 포함해 전국 41곳 병원에 연락을 했고, 부산 동아대병원이 “수용 가능하다”고 응답해 헬기를 동원해 2일 새벽 2시25분쯤 병원으로 옮겼다. 첫 신고부터 이송까지 3시간20분이 걸린 셈이다. 수술을 받은 임신부는 생명에 지장이 없었지만, 태아는 결국 숨졌다. 소방청 관계자는 “임신부가 있는 청주 산부인과와 가까운 충청·대전은커녕 서울·경기에서도 아이를 받을 곳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지난 2월 말에도 대구에서 조산 증세를 보였던 쌍둥이 산모가 4시간 만에 수도권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아이 한명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는 정부가 고위험 임산부의 응급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재정까지 쏟아가며 ‘지역모자의료센터’를 지정했지만, 제 몫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지난해부터 ‘24시간 분만, 고위험 신생아 진료’를 위해 지역모자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야간에도 안전하게 분만하고, 치료가 필요할 때 임산부와 아기가 한곳에서 진료를 받게 하기 위한 조처였다.
이번에 임신부 수용을 거부한 청주에 있는 충북대병원은 충청 지역의 모자의료센터를 총괄하는 권역모자의료센터다. 전문의 당직 등 24시간 분만과 신생아 진료가 가능하도록 기반을 마련했어야 하는 의료기관이다. 복지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권역모자의료센터 1곳당 16억원이 투입됐다.
충북대병원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시 산과 전문의 부재로 (임산부를) 수용할 수 없었다”며 “병원에 (출산을 담당하는) 산과 전문의가 2명 있다. 1명이 지난해 해외 연수를 가면서 1명이 24시간 당직을 하면서 진료를 보고 있다. 산과 지원자가 없어 인력 충원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역모자의료센터는 산과 전문의 4명,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4명을 갖추도록 돼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센터를 상대로 인력 충원을 계속 요청하고 있다”며 “지역 병원들이 (산부인과 등 필수과) 인력난을 겪고 있어서 (인력 요건을) 강제할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임신부 수용을 거부한 건양대·대전을지대·충남대(세종) 등도 지역모자의료센터로 운영비와 산과 기능 강화를 위한 예산이 들어간 곳이다. 건양대병원 관계자는 “당시 신생아 중환자실이 꽉 차서 (임신부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역모자의료센터 지정 병원이 왜 임신부를 수용하지 못했는지 이날 충북대병원을 직접 찾아 진상 파악에 나섰다. 정 장관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최근 들어 고령 산모(임산부)와 다태아 출산 등 고위험 분만이 증가하고 있지만, 분만 전문 산과와 신생아 전문의가 매우 부족하다”며 “취약 지역에 대한 개선 방안을 시급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배후 진료 문제는 ‘응급실 뺑뺑이’(미수용)의 원인 중 하나로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김재혁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정책이사는 “산부인과의 경우 의료사고 형사처벌 부담, 낮은 분만수가 등으로 지원자가 계속 줄고 있다”며 “필수 의료진 부족은 응급실 배후 진료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의사제 등 필수 의료진 확보를 위한 중장기 정책과 함께 단기 대책도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송기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위원장(한양대 보건학 교수)은 “지역별로 필수과 의료진이 얼마나 부족하고 어느 정도 공급해야 하는지 등 정밀한 점검이 필요하다”며 “당장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현재 있는 의료 자원을 공유할 수 있는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윤희 신형철 최예린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