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 만행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강압수사를 받다가 사망한 임기윤 목사 유가족에게도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민주화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유가족에게도 국가배상청구권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지난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른 결과다.
대법원 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임 목사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부분 중 유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 부분을 파기한다”며 사건을 지난 3월12일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소멸시효의 진행을 막는 권리행사 장애사유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임 목사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독재와 인권탄압에 맞서 1974년 유신헌법 개헌청원 서명운동을 벌인 인물이다. 이어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 학살이 벌어지자 부산에서 기도회와 시국강연회 등을 열어 광주의 진상을 알렸고 설교 도중 군사정부를 나무랐다. 이후 임 목사는 부산지구 계엄합동수사단에서 조사를 받다 사흘째 쓰러진 뒤 8일째 되던 날 사망했다.
유족들은 국가가 임 목사와 유족들에게 모두 배상 책임이 있다며 60억원을 배상하라면서 지난 2023년 5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에서는 임 목사에 대해서만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해 배상금을 2억1000만원으로 산정했다. 법원은 그동안 헌재가 ‘국가배상을 받은 5·18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광주민주화보상법 조항은 위헌’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지난 2021년 5월을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 계산의 기준인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지한 시점’으로 삼아왔는데, 유가족의 손해배상 청구권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임 목사가 1998년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에서 5·18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지한 시점’을 1998년으로 보고 단기소멸시효인 3년이 지났다고 봤다.
그런데 이 사건 상고심이 진행 중이던 지난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5·18 유족들의 손해배상 청구권도 아직 소멸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판례를 내놨다. 당시 대법원은 “원고들에게는 (헌재의) 이 사건 위헌 결정이 있기까지 관련자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사유가 존재했다”며 “원고들은 이 사건 위헌 결정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으므로 원고들의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에 관한 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후 임 목사 유족의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이 판례를 인용했다. 대법원은 “국가배상제도의 목적과 과거사 사건의 특수성 및 그 피해자 보호 필요성을 아울러 고려한다면, 관련자의 유족에게 관련자 또는 그 유족에 대한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에 자기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것을 객관적,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으므로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임 목사 유족들의 국가배상 사건 파기환송심의 첫 변론기일은 오는 6월11일에 열린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