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4일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국민적 의견 수렴과 숙의 과정을 거쳐 판단해달라”며 사실상 6·3 지방선거 뒤 ‘윤석열 정권 조작기소 진상규명 특검법안’(조작기소 특검법) 처리를 요청한 것은 영남과 수도권 접전 지역 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는 “특검 수사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법안 내용에는 이상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는 지난달 30일 민주당 주도로 조작기소 특검법이 발의된 뒤 “국회에서 논의할 사안”이라며 거리를 둬왔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등의 수도권 후보들이 연합해 공동 대응에 나서고, 민주당 안에서도 수도권과 영남 접전지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잇따르자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김부겸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는 이날 대구 선거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어려운 지역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 후보자들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중앙당이 이런 법안을 내거나 혹은 자신들이 입장을 밝힐 때도 항상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해 달라”고 말했다. 전날 “고생하면서 뛰고 있는 동지들을 버릴 셈이 아니라면 신중해 달라고 요청드리고 싶다”고 말한 데 이어 거듭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같은 당 권칠승, 임미애 의원은 이날 민주당 의원들의 단체 텔레그램방에서 ‘영남권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지방선거 뒤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다른 민주당 수도권 의원도 한겨레에 “수도권은 모르겠지만 대구나 부산 선거엔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선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겨레에 “이 대통령의 말은 지방선거에 부담이 없도록 당에서 정무적으로 판단하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조작기소 특검법에 대해 속도 조절을 요청함에 따라 당도 법안 처리를 지방선거 이후로 늦출 태세다. 다음달 6일 열리는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연임이 확실시되는 한병도 전 원내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정치 검찰의 조작기소에 대한 불법성과 부당함은 이미 밝혀졌고, 국정조사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특검을 통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고 있고, 당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숙의하고 토의하는 과정을 충분히 거친 다음에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특검 도입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특검법안에 포함된 공소 취소 권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청와대가 공소 취소 권한에 대해 사실상 수긍하는 입장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지난해 11월 민주당이 현직 대통령의 재판을 중단할 수 있다는 재판중지법을 추진하자 “대통령을 정쟁에 끌어들이지 말라”며 강훈식 비서실장이 공개 브리핑까지 하며 선을 그은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민주당이 발의한 조작기소 특검법은 △대장동 개발 의혹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성남에프시(FC) 후원금 의혹 등 이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 8건을 포함해 총 12건의 사건에 대해 특검이 공소 취소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검법의 필요성은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도 조작기소 특검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정청래 대표는 부산 동구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당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타깃으로, 없는 죄를 만들기 위해 검찰이 행한 위법행위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렵다”며 “조작기소 특검은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의 과오를 바로잡는 사법 정상화의 과정이다.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피해구제를 외면하는 건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