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만물을 움직였다는 그리스 신화 속 음유시인 오르페우스처럼, 이소라의 목소리는 관객을 황홀한 미로 속에 머물게 했다.
지난 2~3일 저녁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2026 이소라 여덟번째 봄 콘서트—봄의 미로’ 첫째 날인 2일 공연은 한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 미로를 통과하는 경험에 가까웠다. 지난해 3월 ‘이소라 일곱번째 봄 콘서트—봄 밤 핌’ 이후 1년2개월 만의 단독 콘서트인 이번 공연에서 이소라는 ‘명품 보컬’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무대 디자인은 제목 그대로 ‘미로’였다. 연둣빛 정원이 얽힌 길을 만들었고, 그 중심에 이소라가 있었다. 5인조 밴드와 16인조 현악 오케스트라가 둘러싼 무대에서 그는 공연 내내 의자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직접 악보를 넘기고, 손을 뻗어 음향 믹서를 조절하며 노래 그 자체에 집중했다. 목소리의 높낮이와 결을 직접 다듬으며 노래를 이어가는 모습은 가수라기보다 지휘자에 가까웠다. 무대 위 모든 소리의 흐름을 자신이 붙잡고 있는 듯했다.
첫 곡 ‘바라 봄’(2024)이 흐르자 객석은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 위한 침묵으로 가득 찼다. 이어 ‘트랙 9’(2008), ‘포춘 텔러’(2004),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2002),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2016)까지, 이소라는 익숙함을 뒤로 미루고 관객을 낯선 길로 이끌었다. 노래를 마친 그는 “지금 박수 많이 치세요. 앞으로 슬픈 노래들을 막 네다섯 곡씩 이어서 하면 이런 분위기는 없어질 거예요”라며 웃었다.
풍성한 사운드가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특히 2010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팝 음반’에 선정된 ‘이소라 7집’ 수록곡 ‘트랙 11’(2008) 무대에서 현악 오케스트라와의 앙상블이 일품이었다.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현악이 깊이를 더하며 사운드는 점점 두터워졌고, 어느 순간 프로그레시브 록을 떠올리게 할 만큼 웅장해지며 음원과는 또 다른 감동을 안겼다.
무엇보다 빛나는 건 그의 목소리였다. 이소라는 공연 중 “평소 하던 호흡에 반밖에 안 된다” “오늘 너무 떨린다”며 겸손해했다. 그러나 음정은 한치도 흔들리지 않았고, 박자는 정확했다. 마치 완벽하게 다듬어진 음원을 듣는 듯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 살아있는 감정의 떨림도 느껴졌다.
조금 달라진 이소라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노래만 열심히 하면 됐다고 생각했는데, 제 말하는 목소리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았다”며 “2025년부터 저한테 변화가 왔다. 집 밖으로 나가게 됐고,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이소라’를 열고 토크쇼 사회를 맡는 등 은둔형 이미지를 벗으며 대중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이소라는 “올해는 정말 제가 안 해본 많은 일들을 해보고 있다. 좀 더 밝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팬들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갈 계획을 내비쳤다.
후반부에는 좀 더 익숙한 노래들이 펼쳐졌다. ‘티어스’(2004), ‘난 행복해’(1995), ‘처음 느낌 그대로’(1995), ‘믿음’(1998)이 이어지며 공연의 열기는 서서히 끓어올랐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두 곡이었다. ‘바람이 분다’(2004)는 상실을 견뎌낸 감정이 듬뿍 실린 채 공연장을 채웠고, ‘순수의 시절’(2002)에서 이소라는 처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정에 북받친 듯 열창한 뒤 그가 의자에 털썩 앉자 객석에서는 긴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18곡, 2시간 동안 진행된 ‘봄의 미로’ 끝에서 관객이 만난 것은 출구가 아니라, 완벽하게 노래하는 이소라 그 자체였다. 다음 계절, 그가 어떤 목소리로 돌아올지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만드는 봄밤이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