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
논설위원
“윤석열이가… 죽었어?”
힘겹게 몸을 일으킨 아버지가 물었다. “아뇨. 계엄령을 선포한 게 윤석열이에요.”
전남대 병원에 입원한 미수의 아버지를 문안하러 4시간 반 차를 몰아 광주에 도착한 12월3일 늦은 밤이었다. 회사 복귀를 위해 서둘러 병실 문을 나서려는 나에게 아버지의 근심 섞인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몸조심해야 한다.”
라디오는 긴박한 국회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상행선 정읍휴게소를 지날 즈음이었다.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고, 얼마 안 가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얼마나 다행이냐. 운전 조심하거라.”
계엄령이 떨어졌다는 말에 아버지는 왜 통치자의 죽음을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일까. 이듬해 설 연휴에 재회한 아버지가 아들의 궁금증에 답했다. “나한테 계엄은 대통령이 죽거나, 대통령 되려고 국민을 죽이는 거였으니까.”
돌이켜보면 1979년 10월27일 아침의 내 기억도 그랬다. 새벽기도회 인도를 마치고 교회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대문 앞 조간신문을 집어 들고 보인 첫 반응이 “이 사람, 드디어 죽었구나”였다. 그날 발행된 전남일보는 주먹만 한 활자로 대통령 박정희의 “유고”와 함께 “전국에 비상계엄 선포”를 머리제목으로 전했다. 그로부터 200일이 조금 지났을 때, 내가 자란 도시에선 전두환이 보낸 계엄군이 시민을 학살했다.
제주 출신 아버지에게 계엄은 시작부터 누군가의 ‘죽음’과 연루돼 있었다. 첫 기억은 1948년 11월17일 제주에 선포된 계엄령이었다. 제주지역 계엄사령관 송요찬은 해안선에서 5㎞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대에 통금령을 내린 뒤 “이를 위반하는 자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폭도배로 인정하여 총살한다”고 포고했다. “중학생 때지. 읍내 장터에서 ‘폭도 처형’ 장면을 본 게. 그냥 청년단이 무서워서 산으로 도망친 사람들이었을 거야.”
당시 제주지역 계엄은 초기부터 위법 논란에 휘말렸다. 국회는 제헌헌법 제64조에 “대통령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한다”고만 규정했을 뿐, 시행에 필요한 하위 법령은 제정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이 일어나자, 정부는 법률 대신 ‘대통령령’으로 서둘러 계엄을 선포했다. 당시 계엄령은 해방 전 조선총독부가 도입한 1882년 일본제국 계엄령을 모본 삼아 급조한 것이었다.
계엄의 역사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계엄과 같은 헌법상의 국가긴급권을 동원하면,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헌정 질서라도 통치자 마음먹기에 따라 쉽게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계엄이 처음 ‘발명’된 18세기 말 이후의 세계 정치사도 이를 증언한다. ‘계엄 발명국’ 프랑스의 근대사부터가 계엄의 주기적 반복과 이를 통한 공화정 붕괴의 역사였다. 보나파르트 가문의 2대에 걸친 독재(제1·2제정) 역시 계엄을 배경과 수단 삼아 탄생했다.
우리 헌법의 계엄 조항 역시 제헌국회 심의 단계부터 논란이 됐다. 조봉암은 대통령의 계엄 선포권 등을 언급하며 “제국 이상의 강대한 권한”을 부여해 “인민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마음대로 처벌할 수 있는 무서운 대통령을 만든다면, 우리는 ‘인민의 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조봉암의 우려대로 10월 유신을 통한 박정희 종신독재정 수립, 박정희를 베낀 전두환의 5·17 친위 쿠데타, 전두환을 모방한 윤석열의 12·3 내란에도 예외 없이 계엄이라는 헌법상 비상수단이 동원됐다.
우여곡절 끝에 국민의힘을 뺀 여야 6당과 우원식 국회의장이 공동 발의한 개헌안이 곧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계엄에 대한 국회 통제를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 지체 없이 국회 승인을 받도록 하고, 국회에서 승인이 부결되거나 계엄 선포 시점부터 48시간 안에 승인이 이뤄지지 않으면 계엄을 즉시 무효화하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개헌안 내용에 대해선 가타부타 없이 반대 당론을 정했다. 개헌 이슈를 지방선거에 이용하려는 여당의 정략이 작용하고 있다는 이유다. 그런데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면 국민의힘에 불리할까. 계엄 요건을 강화하는 개헌이라면, 오히려 찬성하는 게 지긋지긋한 ‘내란 정당’이란 오명에서 벗어나는 길 아닌가.
“대통령이 죽거나, 대통령 되려고 국민을 죽이는” 계엄은 지난 세기의 악몽으로 족하다. 한줌 불안 때문에 39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무산시킬 셈인가. 의원 각자가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결단할 일이다. 정략인가, 헌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