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가(家)가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은 단순한 문화재 환원을 넘어 한국 문화 위상을 끌어올린 사례로 평가된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유족은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평생 수집한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2021년 국가에 기증했다. 예술성과 사료적 가치가 높은 미술품을 기증해 고인의 바람대로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들이 문화유산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일각에서는 소장품을 매각해 상속세 재원에 보탤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했으나 유족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한 기증을 결정했다. 아울러 해외 반출에 대한 우려도 불식시킨 결단이었다.
국보 40점, 보물 127점 등 고미술품 2만1693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내외 작가들의 근대작품 1488점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다. 지역 미술관의 소장품 수준을 높여 지방의 문화인프라 향상에 일조하기 위해 한국 근대 미술작품 146점은 지방 미술관에도 배치돼 지역 문화 인프라 확충에도 기여했다. 국보와 보물을 포함한 대규모 컬렉션으로 미술계에서는 가치가 최대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성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국내 순회전은 총 35회 열리며 누적 관람객 350만 명을 기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관람객 증가세를 바탕으로 연간 방문객 650만 명 수준까지 확대되며 프랑스 루브르, 이탈리아 바티칸 박물관에 이어 세계 3위 박물관으로 도약했다.
해외 확장도 본격화됐다. '이건희 컬렉션' 해외 순회전의 첫 전시는 2025년 11월 미국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렸다. 전시에는 약 8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으며 이는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이 최근 5년간 개최한 특별전 중 최다 관람객 기록이다.
이재용 회장과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삼성가와 주요 경영진은 1월 스미스소니언에서 기증전의 성공적 개최를 기념하는 갈라 디너 행사를 열었다. 갈라 디너에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을 포함한 미국의 정·관계 인사, 글로벌 기업 경영진, 문화계 인사 등 총 250여 명이 참석해 민간 외교의 장이 됐다. 이재용 회장은 당시 “미국과 한국 국민이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문화 교류 확대 의지를 밝혔다.
이후 전시는 시카고미술관으로 이어졌으며 현재 전시가 진행 중이다. 10월에는 영국 런던으로 무대를 옮겨 영국박물관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다. 1980년대 ‘한국미술 5천년전’ 이후 최대 규모 해외 전시라는 평가다.
미술계에서는 이번 기증을 계기로 K컬처가 대중문화 중심에서 전통·순수예술 영역까지 확장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화유산을 국가 자산으로 전환하고 이를 글로벌 무대에서 활용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분석이다. 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건희 컬렉션은 한국의 근대·현대미술이 체계적으로 국가적 문화유산으로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