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RARE ] VOL. 5
얼티밋 오디오:
슈퍼리치가 스피커에 아파트 값을 쓰는 이유
"천외천(天外天). 하늘 밖의 하늘이 있다."
부자 중에서도 '슈퍼리치'라 불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명품관의 오픈런 줄에는 그들이 없습니다. 세상의 0.0001%로 살아가는 그들, '천외천'의 삶은 우리의 상식 밖 궤도에서 움직입니다.
로고가 없는 3000만원짜리 코트, 대중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1억원의 침대, 그리고 지도에서 지워진 리조트. 남들이 알아봐 주길 바라는 '과시'가 아니라, 남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단절'을 사는 그들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요.
이투데이 [THE RARE]는 일반인들은 접하기도 힘든,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훔쳐보고 싶은 견고한 성벽 안쪽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로고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이 지갑을 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자본주의 최정점에 선 그들의 소비와 취향, 그 속에 숨겨진 부의 트렌드를 들여다 봅니다.
상위 0.0001%가 사는 세상의 문을 열다
VOL. 5 스피커

"에어팟을 끼고 일해야 능률이 올라가는 편입니다."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신입사원이 내뱉은 이 대사는 MZ세대를 비꼬는 유행어가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을 겁니다. 허락만 된다면 나도 그러고 싶다고.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점심시간 카페에서, 퇴근 후 침대에 눕기 직전까지. 현대인의 귀에는 거의 항상 무언가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음악, 팟캐스트, 유튜브, 혹은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서 켜는 노이즈 캔슬링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닐슨과 에디슨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현대인은 하루 평균 약 4시간을 오디오 콘텐츠 청취에 쓴다고 합니다. 깨어 있는 시간의 거의 4분의 1을 우리는 무언가를 들으며 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소리를 대하는 태도가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한때는 이어폰 하나를 스마트폰에 끼워서 들으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중저음은 어떻게 들리는지, 드라이버 크기가 어떤지, 주파수 응답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따지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여기에 맞추어 오디오 시장의 흐름도 달라졌습니다. 글로벌 하이파이(Hi-Fi) 오디오 시장은 2035년까지 8억6000만 달러(약 1조275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소비자의 62% 이상이 고해상도 청취를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CES 2026에서 삼성전자는 프랑스 가구 디자이너와 협업한 AI 공간인식 스피커를 공개했고, LG전자는 최대 13.1.7 채널을 구현하는 사운드 시스템을 선보이며 스피커를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설계하는 장치로 재정의했습니다.
소리는 이제 공간과 취향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흐름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소리를 향한 집착에 한계를 두지 않는 사람들, 세계의 슈퍼리치들은 스피커 한 쌍에 아파트 한 채 값을 쓰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스피커는 음악을 재생하는 기계를 넘어 자신의 공간에 깊이를 부여하는 도구입니다.
구매자의 방이 준비되지 않으면 판매를 거부하는 브랜드부터,
한 대를 만드는 데 90일이 걸리는 브랜드까지,
하이엔드를 넘어선 얼티밋 오디오를 알아봅니다.
SPEAKER 01 . FM ACOUSTICS
FM 어쿠스틱스 인스피레이션 시스템 XS-I

스위스 취리히 인근의 작은 마을 호르겐에는 작은 회사가 하나 있습니다. 간판도 소박하고, 인스타그램 계정도 없고, 광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롤링 스톤즈, 퀸, 스팅, 마일스 데이비스, 레이 찰스 같은 아티스트들이 이 회사의 제품을 씁니다. 릭 루빈은 최근 뉴욕의 딜러를 통해 이 회사 앰프를 직접 구매했고, 워너 파이오니어, EMI 도시바, NHK 도쿄 같은 세계적인 스튜디오들이 이 회사의 장비를 레퍼런스로 사용해 왔습니다. FM 어쿠스틱스. 'FM'은 라디오 주파수가 아니라 'For Music'의 약자입니다.
입소문을 탄 작은 연구소
창업자 마누엘 후버의 이야기부터 흥미롭습니다. 할아버지는 테너 가수였고, 아버지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무대 위에서 느꼈던 음악의 감동을 집에서도 재현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소년은, 대학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독학으로 음향 이론을 공부하고 14세에 앰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스튜디오에서 음향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하면서 좋은 회로와 나쁜 회로를 귀로 구별하는 법을 익혔고, 그가 만든 앰프가 입소문을 타면서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1973년, 스물 몇 살의 청년이 세운 이 작은 연구소가 오늘날 세계 최고가 오디오 브랜드 중 하나가 된 FM 어쿠스틱스의 출발점입니다.
이 브랜드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집착에 가까운 부품 선별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구매자를 심사하는 브랜드의 태도입니다.
먼저 부품입니다. FM 어쿠스틱스는 모든 트랜지스터를 커브 트레이서라는 장비로 한 개씩 측정합니다. 정적 조건과 동적 조건 모두에서 검사하는데, 이 과정에서 40%에서 많게는 95%의 부품이 기준 미달로 버려집니다. 일반 오디오 업계가 10% 허용 오차에 만족할 때, 이 회사는 0.25%를 고집합니다. 앱솔루트 사운드(The Absolute Sound)의 리뷰어가 호르겐 공장을 방문했을 때 목격한 것은, 고급 커패시터와 저항이 가득 담긴 보관함들, 그리고 그 하나하나를 모든 측정 가능한 파라미터에서 완벽하게 매칭시키는 데 쏟는 시간과 노동이었습니다. 그는 이 과정을 "하이엔드 업계에서도 놀라운 수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대부분의 하이엔드 메이커들이 회로 설계는 직접 하되 기판 조립은 외부 업체에 맡기는 것과 달리, FM 어쿠스틱스는 부품 선별부터 납땜까지 모든 공정을 스위스 현지에서 수작업으로 완성합니다.
다음은 태도입니다. 인스피레이션 시스템 XS-I를 사고 싶다면, 먼저 상세한 설문지를 작성해야 합니다. 이 설문지는 FM 어쿠스틱스의 엔지니어와 음향 전문가 팀이 분석하며, 청음 공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구매 전에 환경 개선을 권고합니다. 설치와 조정은 훈련받은 전담 엔지니어가 직접 현장에 와서 수행하고, 고객의 기존 장비 조합이 자사 제품과 맞지 않다고 판단되면 판매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XS 스피커는 오직 FM 어쿠스틱스의 앰프로만 구동할 수 있고, 다른 브랜드의 앰프를 연결하면 스피커가 손상될 수 있다고 합니다. 주문 후 대기 기간은 최대 1년. 돈을 내밀어도 "당신의 방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돌려보내는 오디오 회사. 이것이 슈퍼리치들이 FM 어쿠스틱스에 끌리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희소하고, 까다롭고, 타협하지 않으니까요.
SPEAKER 02 . GOLDMUND
골드문트 사마디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MA)에는 스피커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여주기 위해서. 1987년, 이탈리아 예술가 클라우디오 로타 로리아가 디자인한 골드문트의 아폴로그(Apologue) 스피커는 음향 기기로서가 아니라 조형물로서 모마의 컬렉션에 선정되었습니다. 이것은 골드문트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잘 설명해 줍니다.
명품을 알아보는 귀
골드문트의 시작은 1978년 제네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두 명의 대학생이 만든 T3라는 턴테이블 톤암이 출발점이었는데, 제품의 품질은 뛰어났지만 시장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 시스템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이 미셸 르베숑입니다. 오페라 가수였던 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어릴 때부터 소리에 남다른 감각을 지녔던 그는 이 기술을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소개했고, 이후 골드문트를 세계적인 초고가 오디오 브랜드로 키워냈습니다.
사마디는 골드문트가 추구하는 철학의 결정체입니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정신적 집중 상태", 힌두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를 뜻합니다.
슈퍼리치들이 사마디에 끌리는 이유는 FM 어쿠스틱스와는 정반대 지점에 있습니다. FM 어쿠스틱스가 아날로그적 집착과 장인 정신의 극한이라면, 사마디는 기술로 복잡함을 지워버리는 미니멀리즘의 극한입니다. 이 스피커에는 앰프 등이 내장되어 있어, 외부 앰프도, 두꺼운 스피커 케이블도 필요 없습니다. 골드문트의 독자적인 무선 전송 기술을 통해 소스 기기에서 스피커까지 신호가 무선으로 전달됩니다. 거실에 놓이는 것은 오직 스피커 두 대와 전원 코드 하나뿐이며, 나머지는 필요 없습니다.
골드문트의 스피커 부품은 제네바 현지의 소규모 정밀 가공 업체들이 담당하는데, 이 업체들의 고객 목록에는 롤렉스와 파텍 필립이 함께 올라 있습니다. 명품 시계 케이스를 깎는 것과 같은 수준의 정밀도로 스피커를 가공한다는 뜻입니다. 최종 조립은 골드문트 제네바 공장에서 전량 수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마디 한 대의 무게는 약 180kg이며, 한 쌍이면 360kg이 넘습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물체가 방 안에 서 있으면 놀라울 정도로 단정합니다. 케이블이 없으니 뒷면을 드러내도 깔끔하고, 주변을 걸어 다니며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골드문트는 이것을 의도적으로 설계했습니다. 스피커가 미술관의 조각품처럼 어느 각도에서든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022년에는 크리스 햄스워스 주연의 넷플릭스 영화 '스파이더헤드'에 사마디가 소품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 초호화 시설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데에도 적합한 오브제임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극도로 깔끔한 공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통제된 환경, 기술은 최첨단이되 그 존재는 크지 않은 것. 사마디는 그런 가치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스피커입니다.
SPEAKER 03 . WILSON AUDIO
윌슨 오디오 크로노소닉 XVX

1957년 크리스마스 이브, 캘리포니아 글렌데일. 열두 살 소년 데이브 윌슨은 빨리 잠들고 싶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화학 실험 세트를 갖고 놀고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웃집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왔습니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소년은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합창단은 어디 있을까.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성가대가 아니라 이웃집 앞에 놓인 커다란 스피커 하나뿐이었습니다. 단순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가 사람의 목소리와 구별이 안 된다는 사실에 소년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날 밤이 윌슨 오디오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분자생물학자가 만든 스피커
흥미로운 건, 데이브 윌슨이 원래 스피커 설계자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의 본업은 분자생물학자였습니다. 화이자와 애보트 연구소에서 임상 연구원으로 일했죠. 하지만 그의 진짜 열정은 녹음이었고, 자신이 녹음한 소리를 제대로 들려줄 스피커를 찾다가 결국 직접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1974년, 아내와 함께 차고에서 시작한 회사가 오늘날의 윌슨 오디오입니다. 과학자 출신답게 그는 스피커 설계에 연구 프로토콜을 적용했고, 이 접근법이 윌슨 오디오를 미국 하이엔드 오디오의 자존심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애플 창업자인 고 스티브 잡스가 고객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것도 그 결과입니다.
크로노소닉 XVX는 데이브 윌슨이 2018년 세상을 떠난 뒤, 아들 대릴 윌슨이 2년간의 개발 끝에 완성한 플래그십입니다. 높이 약 187cm, 무게 311kg. 사람보다 크고, 냉장고보다 무겁습니다. 4웨이 7드라이버 구성에, 재생 주파수 대역은 20Hz부터 30kHz까지라는 스펙을 자랑합니다.
슈퍼리치들이 이 스피커에 열광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시간 정렬에 대한 집착입니다. 스피커에는 보통 여러 개의 드라이버가 들어갑니다. 저음, 중음, 고음을 각각 다른 유닛이 담당하죠. 문제는 이 유닛들의 위치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소리가 청취자의 귀에 동시에 도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이 시간차는 음색의 정확도와 공간감을 무너뜨립니다. 대부분의 스피커 메이커들이 이 문제를 대략적으로만 처리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반면, 윌슨 오디오는 창립 때부터 이것에 매달려 왔습니다. XVX는 마이크로미터 방식의 정밀 슬레드 시스템을 탑재해, 각 드라이버 모듈의 위치를 200만분의 1초 단위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내장된 버블 레벨과 충전식 조명 시스템이 세팅을 돕고, 청취자의 귀 높이와 거리에 맞춰 모든 드라이버에서 나온 소리가 정확히 같은 순간에 귀에 도달하도록 맞춥니다.
둘째, 소재입니다. 윌슨 오디오는 목재를 쓰지 않습니다. 페놀 수지 복합재와 에폭시 적층재 등 독자 개발한 비목재 소재로 캐비닛을 만들고, 이것을 자동차 도장 공정과 동일한 방식으로 마감합니다. 유타주 프로보의 자사 공장에는 전용 도장실이 있는데, 프라이머를 바르고, 샌딩하고, 색을 입히고, 다시 샌딩하고, 다시 칠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합니다. 수일간 자연 건조시킨 뒤 최종 연마까지 마치면, 표면은 고급 스포츠카의 보닛처럼 빛납니다.
셋째, 수직 통합입니다. 윌슨 오디오는 몇 년 전 커패시터 제조사를 인수해 커패시터까지 자체 생산합니다. XVX에는 이 기술로 만든 전용 커패시터가 탑재되었습니다. 프로보 공장 한 지붕 아래에서 50명의 직원이 모든 공정을 수행하고, 각 공정을 마칠 때마다 담당자가 내부에 서명을 남깁니다. 완성된 스피커의 안쪽에는 그 스피커를 만든 모든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는 셈입니다.
앱솔루트 사운드(The Absolute Sound)의 리뷰어는 이렇게 썼습니다. "세계 최고의 스피커들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XVX만큼 현실적이고 음악적으로 풍부하며 감정적으로 몰입되는 스피커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과학자가 시작하고, 장인이 완성하고, 아들이 이어받은 스피커. 200만 분의 1초를 쫓는 강박이 만들어낸 소리는, 결국 기계가 아닌 것처럼 들리는 소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SPEAKER 04 . MBL
MBL 101 X-TREME

보통 스피커는 앞을 향합니다. 벽 앞에 세워두고, 소파에 앉아서, 정면에서 듣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피커는 전부 뒤에서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MBL 101 엑스트림은 그 상식을 거부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 스피커는 바이올린이 콘서트홀에서 소리를 퍼뜨리는 방식 그대로 360도 모든 방향으로 소리를 내보냅니다.
MBL의 고민
1979년 베를린. 세 명의 엔지니어 볼프강 멜레츠키, 요제프 바이네케, 한스외르크 렌하르트가 회사를 세웠습니다. MBL이라는 이름은 이 세 사람의 성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입니다. 그들이 집착한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악기가 소리를 내는 방식과 스피커가 소리를 내는 방식은 왜 이렇게 다를까. 트럼펫은, 첼로는, 사람의 목소리는 한쪽 방향으로만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소리는 공기를 타고 사방으로 퍼지고, 벽과 천장과 바닥에 부딪혀 돌아오면서 그 공간 고유의 울림을 만듭니다. 그것이 우리가 콘서트홀에서 느끼는 생생함의 정체입니다. 그런데 일반 스피커는 상자 안에 드라이버를 넣고 앞으로만 소리를 쏩니다. 무대의 절반을 잘라버리는 셈이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MBL이 개발한 것이 그 이름도 어려운 라디알슈트랄러(Radialstrahler)입니다. 양파 모양, 혹은 외계 생명체의 알처럼 생긴 이 구형 드라이버는 탄소 섬유, 알루미늄, 마그네슘 등으로 만든 얇은 금속 막이 마치 심장처럼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전 방위로 음파를 방사합니다. 45년간 다듬어 온 MBL의 핵심 기술이자, 다른 어떤 스피커 회사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한 기술입니다.
101 엑스트림은 이 기술의 끝판입니다. 시스템 전체는 네 개의 타워로 구성됩니다. 가운데 두 개는 라디알슈트랄러 드라이버가 위아래로 거울처럼 배치된 무지향성 타워이고, 양 옆 두 개는 12인치 알루미늄 우퍼가 각각 여섯 개씩 들어간 서브우퍼 타워입니다. 드라이버 총 26개. 높이 약 190cm. 네 타워를 합친 총 무게는 약 1,633kg, 거의 1.6t입니다. 한 대를 제작하고 조립하는 데 90일이 걸리며, 연간 생산량은 전 세계 기준 12세트에 불과합니다.
슈퍼리치들이 이 스피커에 매료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일반 스피커가 소리의 '그림'을 보여준다면, 101 엑스트림은 소리의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앱솔루트 사운드(The Absolute Sound)의 리뷰어 조너선 밸린은 이 스피커를 네 차례 연속 최고 제품상으로 선정하면서, 이 스피커를 들은 모든 청취자가 같은 말을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 가장 현실적인 스테레오 시스템이다." 스피커가 사라지고, 방의 경계가 사라지고, 녹음 현장의 공간이 그 자리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베이스 클라리넷의 어둡고 낮은 음색뿐 아니라 그 악기의 원통형 형태까지 재현된다고 합니다.
다만 이 경험에는 조건이 붙습니다. 무지향성 스피커는 벽을 필요로 합니다. 소리가 벽면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것 자체가 설계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MBL이 권장하는 공간은 40에서 120㎡. 너무 좁으면 반사음이 뭉치고, 너무 넓으면 에너지가 흩어집니다. 공간의 형태와 크기, 벽면의 재질까지 모두 음향의 변수가 되므로, 결국 이 스피커를 제대로 즐기려면 청음 환경 자체를 설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앰프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MBL이 권장하는 조합은 자사의 앰프 네 대인데, 이것만 한 대에 약 5만3000달러입니다. 네 대면 약 2억8000만 원. 스피커와 앰프를 합치면 시스템 전체가 약 7억 원을 넘기는 셈입니다.
101 엑스트림은 스피커가 아니라 일종의 건축물입니다. 음악을 위한 방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방을 만드는 장치이기 때문에, 이 스피커를 산다는 것은 기기를 놓은 것이 아니라, 공간을 만드는 것에 가깝습니다.
EPILOGUE

슈퍼리치들이 스피커 한 쌍에 아파트 한 채 값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시일까요. 물론 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한 브랜드들을 다시 떠올려 보면, 이 소비의 본질은 과시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설치형 스피커는 누군가를 나의 공간으로 초대해야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을 사고 있는 걸까요. 몰입입니다. 정확히는, 몰입이 가능한 조건을 사고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견뎌야 하는 것이거나, 빈 곳을 메우는 것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하루에 4시간 넘게 무언가를 듣고 있지만, 정작 소리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은 거의 없습니다. 듣고 있되 듣고 있지 않은 상태. 그것이 현대인과 소리의 모순적인 관계입니다.
하이엔드 오디오가 보여주는 세계는 소리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다릅니다. 윌슨 오디오의 엔지니어는 드라이버 하나의 위치를 200만분의 1초 단위로 조정하고, MBL은 한 대의 스피커를 완성하는 데 90일을 씁니다. 그리고 이 스피커를 사는 사람들은 단 4분짜리 음악 한 곡을 듣기 위해 수억 원의 장비와 수개월의 공간 설계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술을 대하는 지독할 정도의 고집이자, 자신의 청각이라는 감각을 최고의 상태로 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10억 원짜리 스피커를 거실에 들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능동적 청취의 태도는 충분히 빌려올 수 있습니다. 하루 중 단 10분이라도 멀티태스킹을 멈춘 채, 오직 하나의 선율에만 온 신경을 기울여 보는 것. 이어폰이든 블루투스 스피커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기기의 가격이 아니라, 그 시간만큼은 소리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이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소리는 배경에서 전경으로 올라옵니다.
세상이 소란스러울수록, 나만의 주파수를 지키는 일은 더 중요해집니다. 거대한 스피커가 없어도 좋습니다. 잠시 모든 알림을 끄고, 좋아하는 곡 하나에 온전히 귀를 여는 그 시간이 바로 당신만의 청음실입니다. 나만의 고요를 소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소란스러운 시대에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몰입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에, 이번 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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