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진정한 과학적 태도란,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해서 무조건 절대적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반증될 수 있는 모호한 부분이 남아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의학자이자 저술가인 요로 다케시의 저서 ‘바보의 벽’은 현대 사회의 불통을 인식의 한계 또는 왜곡의 결과로 설명한다. 과학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과학적 사실’과 ‘과학적 추론’을 구분하지 못해 유력한 또는 본인이 선호하는 추론을 사실이라고 믿으면서 다른 추론은 무시하거나 맹비난한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로 이런 예 가운데 하나가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대한 설명이다. 수십만년 동안 사피엔스(현생인류)와 공존하던 네안데르탈인은 약 4만년 전 자취를 감췄는데 그 원인을 두고 여러 학설이 나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경쟁 가설로 수만년 전 유라시아의 토착종인 네안데르탈인이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외래종인 사피엔스에 밀려 수천년 만에 멸종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두 종의 뇌 구조와 게놈 정보를 비교해 인지능력과 언어능력의 차이가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경쟁 가설을 반증하는 논문 두편이 잇달아 나왔다. 예전 같으면 모른 척했겠지만 ‘바보의 벽’을 허무는 노력의 하나로 이 자리에 소개한다. 먼저 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 실린 미국과 중국 공동연구팀의 연구 결과다. 연구자들은 현생인류인 유럽계 미국인과 한족 중국인의 뇌 구조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비교해 그 차이가 네안데르탈인과 동시대 사피엔스 뇌 구조의 차이와 비슷한 수준임을 밝혔다. 유럽계 미국인과 한족 중국인의 평균 인지능력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으므로 뇌 구조의 작은 차이로 네안데르탈인이 동시대 사피엔스보다 머리가 나빴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논문으로 현생인류의 언어능력을 만든 유전적 변이가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갈라지기 이전에 이미 일어났다는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아이오와대가 주축이 된 미국 공동연구팀은 인류 조상이 빠르게 진화시킨 영역(전체 게놈의 0.1% 미만)을 분석해 언어능력 획득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 변이가 일어난 시점이 침팬지와 갈라진 600만년 전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분화된 60만년 전 사이로 나온 것이다. 이미 인간형 변이를 지닌 네안데르탈인을 말더듬이처럼 묘사하는 건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한편 지난해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는 네안데르탈인 멸종을 설명하는 학설 중 하나인 혼합 가설을 지지하는 수리모형 분석 결과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수만년 전 현생인류의 인구는 수만~수십만명으로 수천명에 불과한 네안데르탈인보다 훨씬 많았고 그 결과 현생인류가 여러차례 흘러들어와 섞이면서(혼혈) 결국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졌다는 것이다(유전적 희석). 빨간 잉크 한 방울에 파란 잉크를 떨어뜨리면 자주색, 보라색을 거쳐 결국 파란색이 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아무래도 경쟁 이론에 비하면 뉴스로 다루기엔 재미가 덜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