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전자레인지·식기세척기 등 기존 중소형 가전제품의 자체 생산을 축소하고 외주 생산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데 따른 조처다. 글로벌 경쟁력을 잃은 저가 가전은 위탁 생산 등으로 돌리고, 냉장고·세탁기·티브이(TV) 등 프리미엄 가전 및 신사업에 집중한다는 취지다. 삼성전자는 이르면 오는 30일 중국 현지 가전 판매 철수 계획을 거래선 등에 통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이달 초 고위 경영진 회의를 열어 가전 사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한 메모리 반도체 약진으로 회사는 역대 최대 실적을 냈지만, 중국 경쟁사의 약진과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글로벌 관세 정책으로 가전 사업 부문의 수익성은 지속해서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삼성전자 생활가전(DA)·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는 약 2천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업계에선 가전 사업 부문의 부진으로 올해 적자 폭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회사는 식기세척기·전자레인지·청소기 등 중소형 가전 생산의 자체 라인을 철수하고, 외주 생산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설계는 계속하되, 생산은 특정 업체에 맡기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바꾼다. 지금도 일부 제품을 위탁 생산하고 있지만, 대상 폭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다만,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고가의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대형 가전 위주의 전략 상품은 직접 생산 방식을 유지한다.
삼성전자 내부에선 국외에 있는 가전 생산 공장도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티브이 생산의 거점이던 슬로바키아 공장을 오는 5월 폐쇄하기로 했고, 1989년 설립한 말레이시아 공장도 문을 닫을 예정이다. 중국 시장에선 가전 제품과 티브이 판매도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중국에서 냉장고와 세탁기 등을 생산하는 쑤저우법인 등 현지 생산라인은 계속 유지하며 인근 국가의 공급 거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국내 가전 대기업은 2000년대 초반 일본을 따돌리며 글로벌 시장을 장악했으나, 저가 제품에 기술력까지 갖춘 중국 기업의 성장으로 중저가 시장 경쟁력을 잃은 상황이다. 특히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가전 기업 티시엘(TCL)은 지난해 12월 출하량 기준 삼성전자를 제치고 글로벌 티브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중국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컬러 티브이 오프라인 시장 점유율이 3%에 불과하다는 집계도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제품과의 차별화를 위해 프리미엄 제품군을 공략 중이지만, 시장에서는 가전제품의 늘어난 교체 주기와 경기 둔화로 고가 프리미엄 가전 시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가전의 왕’으로 불렸던 일본 소니도 지난 1월 자체 티브이 사업을 철수하고, 티시엘과 합작사를 설립한 바 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