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의 차이나 퍼즐] 30 _미-이란 종전과 중국의 전략
트럼프의 실패로 이란과의 관계에 공을 들여온 중국이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것은 분명하지만, 당장 중국이 중동의 패권을 장악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이란 공격은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세력 확장을 차단하고 미국의 주도권을 재확립하려는 긴 ‘그레이트 게임’의 일부였고, 그 시작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허겁지겁 철군한 2021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중국일까.
미국과 이란이 맺은 종전 양해각서(MOU)에 중국의 서명은 없지만 중국의 영향력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전쟁 기간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은 통화와 회담 등 수십차례 소통했고, 중국은 우방국 파키스탄과 긴밀하게 공조하며 미-이란 협상에 간접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5월 정상회담에서도 이란과 호르무즈해협은 주요 의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이란 종전 양해각서에 서명한 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시진핑 주석은 나를 도왔다. 해결을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2월28일 이란을 공격한 뒤 수백억 달러의 예산과 첨단 무기를 쏟아부었지만 공언했던 목표를 거의 달성하지 못한 채 힘의 한계만 드러냈고, 그 사이에서 중국의 외교적 영향력은 훨씬 커졌다. 미국이 이란의 반격과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고전하는 동안, 중국은 여러 국가 정상들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평화의 수호자’ 미국보다 훨씬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이미지를 선전했다.
트럼프의 실패로 이란과의 관계에 공을 들여온 중국이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것은 분명하지만, 당장 중국이 중동의 패권을 장악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이란 공격은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세력 확장을 차단하고 미국의 주도권을 재확립하려는 긴 ‘그레이트 게임’의 일부였고, 그 시작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허겁지겁 철군한 2021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판훙다 샤오싱대 중국-중동센터 주임은 지난 18일 싱가포르 매체 ‘싱크차이나’에 쓴 글에서 2021년 8월 미국의 아프간 철군 이후 중동에서 미국과 중국의 각축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면서 결국 미국의 이란 공격으로 나아가게 됐다고 분석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말까지 아프간에서 서둘러 철군해 중국과의 경쟁에 자원을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빠른 탈레반의 파죽지세 진군 때문에, 미국은 그해 8월 도망치듯 아프간을 빠져나왔다. 중국은 미국의 처참한 철군으로 생긴 힘의 공백을 파고들며 존재감을 확대했다. 중국은 아프간 주변국 외교장관 회의 등을 개최해 아프간의 안정적 전환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였고, 2022년 12월에는 시진핑 주석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으며, 2023년 3월에는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의 역사적 화해를 중재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트럼프가 2018년 이란과의 핵 합의(JCPOA)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뒤 이란이 중국과 더욱 밀착하게 되면서, 이란은 중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는 중요한 교두보가 됐다.
하지만,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중국은 거센 역풍을 맞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친이란 세력들을 약화시켰고, 시리아에서도 친이란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지고 친미 정권이 집권했다. 이어서 2025년 6월에는 이스라엘이 이란 핵 시설들을 일방적으로 파괴한 ‘12일 전쟁’이 벌어졌다. 이 격동기에 중국은 이란과 친이란 세력에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은 채 방관했고, 중국의 소극적 태도에 대한 실망감이 확산됐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데 성공한 듯 보였다.
지난 2월28일 트럼프가 여기서 더 나아가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 정권 교체를 시도하면서 국면이 다시 바뀌었다. 중국의 주요 에너지 공급국이자 중동의 교두보 역할을 해온 이란을 굴복시켜,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압도적 우위에 서고, 미-중 ‘그레이트 게임’에서 승기를 잡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최고 지도부가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모두 사망한 뒤 몇시간 만에 이란이 반격에 나서고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나아가면서 트럼프의 계산은 모두 틀어졌다. 이후 중국은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드론·미사일 생산에 사용할 수 있는 부품과 원료를 이란에 제공하고, 이란산 석유를 계속 구매하며 이란을 지원했다. 이란이 중동 내 미군 시설을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도록 위성 정보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3월31일에는 중국이 파키스탄과 함께 ‘중동 평화와 안정 회복을 위한 5개항 공동 구상’을 발표했고, 일주일 후 파키스탄은 미국과 이란의 임시 휴전을 중재하는 데 성공했다. 미-이란 종전 협상 막바지인 5월 말에는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 아심 무니르가 테헤란을 방문해 이란과 집중 협의를 한 뒤 곧바로 베이징으로 이동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는 등 중국과 긴밀하게 공조했다.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이란페르시아어학과 교수는 “중국은 비공식적으로 이란에 물자와 정보를 지원했고, 파키스탄의 중재 역할 막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특히 이란이 미국과 합의에서 자체 핵무기는 보유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지만 이슬람 세계의 유일한 핵 보유국인 파키스탄과 연대를 강화하면서 이란-파키스탄-중국의 협력 틀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이란 전쟁 실패로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중동의 안보, 에너지, 경제를 모두 좌우하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중동의 주요국들이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상황은 이번 전쟁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바뀌기는 어렵다. 중동의 미국 동맹국들 사이에 ‘미국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과 불만은 커졌지만, 중국이 이들 국가에 안보를 보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2023년 하마스 공격 이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초토화하고, 지난해 이란 핵시설을 공급하고, 올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정권 교체에 나섰을 때도 군사·안보적으로는 주요한 책임을 전혀 떠맡으려 하지 않았다. 당분간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 중동의 주요 왕정 국가들이 미국에 안보를 의지하면서, 장기적으로 대안을 마련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우빙빙 베이징대 중동연구센터 주임은 지난 25일 제주포럼에서 “미국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중동에서 쉽게 발을 빼지 않을 것이고 중동에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란의 보복 공격을 받은) 걸프지역의 미국 동맹국들은 이번 전쟁의 최대 패배자가 됐고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오히려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중동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려 하지 않는다. 모든 당사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법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우선, 중국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핵심은 대만해협을 비롯한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중동에서 당장 미국에 도전하거나 과도하게 힘을 소진하려 하지 않는다. 둘째, 중국 국내에서 첨단 기술 대약진과 내수 침체라는 극과 극의 ‘K-자 성장’이 심각한 상황에서 중동의 안보를 떠맡을 여유가 없다. 셋째, ‘과잉 생산’되는 중국 첨단 제조업 제품들의 수출 시장을 유지하려면 이란,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시장 전체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이란 재건 시장에서 큰 몫을 차지하려 계산하고 있겠지만, 이란과 밀착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란 이외의 중동 시장에서 역풍을 맞지 않도록 미묘한 균형을 취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단기간에 중동에서 미국과 대립해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려 시도하지 않을 것이고, 대신 미국의 점진적 쇠퇴를 활용해 어부지리를 누리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즉, 중동의 안보를 책임지기 위한 비용은 부담하지 않고 경제적 영향력은 확대하려는 ‘최소 비용, 최대 효과’ 전략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빅딜’을 통해 ‘제2의 닉슨’이 되려 시도할 가능성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란 특사였던 로버트 말리와 외교 전문가인 스티븐 워트하임은 지난 23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이란에서 트럼프가 저지른 엄청난 실수는 미국에 선물이 될 수 있다”면서 “트럼프가 원한다면 이란과 합의에 이를 재량권이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 크다”고 썼다. 이란에 가장 강경했던 트럼프가 화해에 나선다면, 공화당 내 반발도 누를 수 있다는 뜻이다. 유달승 교수도 “이란 정권 교체에 실패한 트럼프가 이를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은 이란과의 국교 정상화 틀을 마련하는 것”이라면서 “이란 지도부도 미국과 다시 전쟁을 하지 않을 보험이자 안전 장치로서 국교 정상화와 미국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원할 가능성이 있고, 미-이란 화해가 실현되면 국제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이란 종전 양해각서에는 대이란 제재 해제에 대한 구체적 보장, 양국 관계 정상화, 이란 재건 기금을 비롯해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는 여지까지 담겨 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북한이 미국에 원했던 내용들이 모두 들어 있다”면서 “북한도 미-이란 협상을 주목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이란 전쟁을 둘러싼 미·중의 복잡한 셈법이 한반도와 세계에 거대한 거대한 나비효과를 예고하고 있다.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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