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나요? [투데이 窓/혜원]
머니투데이
긍정적 태도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집착
억지로 포장 말고 자연스러움에 맡겨야
AI는 편한 도구지만 너무 의존하면 안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인 태도로 살아야 삶이 긍정적으로 바뀐다고들 말한다. 이 말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고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불교적으로 보면 긍정적으로 살려는 것도 집착으로 비칠 때가 있다. 우리 동네에서는 억지로 긍정적으로 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는 것을 오게 하고, 머무는 것을 머물게 하고, 가는 것을 가게 하라. 말하자면 긍정도 부정도 집착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밀어내거나 끌어당기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억지로 자신을 긍정으로 포장하거나 부정을 과도하게 표출하지 않고 자연스러움에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 또한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이쯤 되면 뭐 어쩌라는 거야? 하고 짜증 날 수도 있다. 결론은 그 어떤 것도 삶의 기본 태도로 고정해 놓지 말라는 말이다. 바람이 불어가고 강물이 흘러가듯이.
한날은 새벽에 택시 탈 일이 있어서 택시를 불러서 타고 가고 있었다. 중년의 여성 기사였는데 요즘말로 스몰토크로 이말 저말 오고 갔다. 그 분이 세상이 참 아름답고 순간순간 너무 감사하다는 표현을 반복하시길래 필자의 병증이 도져서 아니 뭘 저렇게 과도하게 긍정적이실까? 하고 내심으로 생각했었는데 얼마 안 지나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았다. 그분은 수년 전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끈기와 노력으로 재활해서 택시를 몰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뒤에 앉아서 도인인 척 속으로 어험 하고 있었지만 앞에는 선지식이 나를 태우고 가고 있었다.
그때 그분은 삶의 한 조각이라도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해내야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삶에 대해 내가 뭐라고 옳다 그러다 하겠는가. 넓게 보면 모든 이들이 그럴만한 이유와 필요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떠한 정답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진리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때로는 진리라고 찰떡같이 믿는 것이 자신을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하게 만들기도 한다. 신분과 지위를 떠나 모든 삶을 존중하는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겸손한 것도 어떤 태도가 아니다. 자신에 대한, 세상에 대한, 대상에 대한 태도를 고정해 놓지 않는 것이다.
출가하고 자비관을 수행할 때 있었던 일인데 자비관은 특정 대상을 자비롭게 바라보는 수행이다. 그 수행을 두 달 정도 했을 때 길 위의 돌멩이들 잡초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보석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법당의 부처님은 나를 향해 방긋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나는 환희심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현자타임이 돌아왔을 때 깨달았다. 단지 내가 그렇게 보아서 그렇게 보였다는 것을. 그저 돌멩이는 돌맹이, 풀은 풀인 것을 억지로 아름답게 보거나 못하게 볼 필요가 없는 것을.
요즘 AI(인공지능)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혹은 깊게 신뢰하고 의지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인간은 특정한 것을 대상화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랑에 빠지는 특별한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AI가 소개팅과 결혼을 주선하는 서비스도 나오지 않을까 한다. 개인적인 삶이 극으로 치달아 타인과 소통하고 이견을 조율하는 시간과 노력을 아끼는 시대에 AI는 이상적인 상대로 여겨질 것이고 기업은 그 틈을 파고들 것이다. 그러다가 괜찮은 이성 상대를 만나면 AI에 결혼 승낙받을지도 모른다. 긍정과 부정의 의견이 많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구라는 땅에 발을 딛고 숨 쉬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생명이 가진 고유의 능력과 한계를 인정하고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AI는 우리에게 너무 친절하다.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이 사바세계에 우리를 긍정해 주는 고마운 존재지만 긍정 도파민에 절여지면 세상을 건강하게 살기 힘들어진다. 각기 다른 채널과 카테고리 속에 살아가는 지금 공허한 메아리를 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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