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로 돌아간 한국의 불평등 [유레카]
한겨레
“한국의 불평등은 식민지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세계불평등연구소(WIL)가 지난해 말 개정판을 공개한 ‘한국의 소득 불평등’ 보고서의 결론이다. 세계불평등연구소는 책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주도해 만든 기관이다. 홍세현 파리경제대학(PSE) 교수, 김낙년 동국대 교수 등이 쓴 이 보고서는 한국 경제 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구조적 불평등을 파고든다.
이들에 따르면, 1933~2022년 한국의 성인 1명당 소득(이하 세전 기준)은 연평균 3.1% 늘며 ‘한강의 기적’을 달성했다. 불평등 문제에서도 대한민국은 단연 우등생이었다. 소득 상위 10%인 이들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33년 약 50%에서 1960년대 들어 30% 미만으로 내려갔다. 일본인 재산 몰수, 토지개혁 정책 등의 영향이다.
특히 1970년대 재벌과 수출 대기업 중심의 고속 성장기에도 소득 불평등은 악화하지 않았다. 경제 발전 초기에 불평등이 심해진다는 경제학의 이론(‘쿠즈네츠 곡선’)이 한국엔 맞아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1980년대 들어선 정치 민주화와 임금 상승 억제 정책 폐지, 국민연금 도입 같은 사회안전망 강화 등으로 하위 50%의 소득 점유율이 확대되는 재분배의 황금기를 누렸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불평등이 계속 심해진 결과, 2022년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이 일제 강점 말기의 소득 집중도와 유사한 최악의 수준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진단한다. 저자들은 그 이유를 비정규직 확대, 세금을 면제받는 자본소득의 집중에서 찾는다. 기업의 투자와 배당 부진으로 회사 내부에 쌓인 ‘유보된 이익’이 불어났고, 이 유보 이익을 자본소득으로 환산했더니 소득 최상위 대주주 계층에 부가 집중됐다는 얘기다.
이 보고서가 특별히 의미 있는 것은 한국의 소득 집중, 불평등 추이를 90년이라는 긴 시야에서 조망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과세 자료와 가계 설문조사, 한국은행 국민계정 등을 통합한 소득 조사 방법을 최초로 적용했다.
기업의 내부 유보이익을 개인 소득으로 간주하는 통계 집계 방식의 적정성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반도체·인공지능(AI) 등 특정 산업의 초호황과 그 이면의 양극화라는 ‘케이(K)자형 경제’의 난제를 마주한 우리에게 이 보고서가 던지는 경고는 분명하다. 다시, 불평등 문제에 주목할 때다.
박종오 경제산업부 기자 pjo2@hani.co.kr
조회 0·스크랩 0·공유 0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