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수출의 절반을 지탱하는 '비IT(중화학공업)' 산업이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글로벌 경쟁 강화 속에서 선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관세와 상향 평준화되는 기술 속에서 앞으로의 양적 성장은 제한될 것이라는 경고등도 함께 켜졌다.
한국은행 조사국이 29일 발표한 '비IT 수출의 주요국간 경쟁 상황 평가' 보고서를 통해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세계 비IT 중화학공업 시장의 지각변동을 분석한 결과 승자는 단연 중국으로 파악됐다. 중국은 압도적인 생산능력과 기술력 제고를 무기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11.0%에서 14.6%(3.6%p 상승)까지 끌어올렸다.
중국의 진격 속 독일과 일본 등 전통 제조강국들은 힘을 쓰지 못했다. 독일의 점유율은 12.4%에서 11.1%로 떨어졌고, 일본 역시 6.9%에서 5.6%로 각각 1.3%포인트(p)씩 주저앉았다.
반면 한국은 3.9%에서 4.0%로 소폭 상승하며 자리를 지켜냈다. 특히 세부 품목별로 보면 중국의 점유율이 오를 때 한국도 동반 상승한 품목 비중이 60.8%에 달했다. 일본(20.4%)과 독일(23.6%)이 중국에 시장을 내주는 사이, 한국 제품이 중국과 함께 독일·일본의 기존 점유율을 흡수하며 버텨낸 덕분이다.
한국 비IT 수출을 지탱한 핵심 동력은 '기술 고도화'였다. 제품복잡성지수(PCI)를 활용해 기술 수준별로 분석해 본 결과, 한국의 고위 기술 품목 수출은 2020~2024년 중 연평균 6.8% 증가했다. 이는 저위(3.3%), 중저위(3.0%), 중고위(2.1%) 성장률을 크게 웃도는 수치이자 전 세계 평균 증가율(6.0%)을 상회하는 성적이다.
특히 최근의 비IT 제조업 부진 속에서도 조선과 방산 등 고부가가치 세부 업종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대표적으로 포병무기(+30.7%p), 로켓발사기(+29.5%p), 장갑차(+16.3%p) 등 방산 부문과 디젤전기기관차(+14.9%p), 화물선(+13.8%p) 등 수송장비 부문에서 점유율이 크게 뛰었다.
2025년 단행된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는 우리 대미 수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 실제로 2025년 2분기부터 2026년 1분기까지 우리 비IT 관세 대상 품목의 대미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8%나 감소했다. 그러나 한국의 대미 점유율 하락폭은 -0.4%p에 그쳐 중국(-1.9%p), 일본(-2.1%p), 독일(-2.2%p) 등 경쟁국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아세안(+1.1%p)이나 멕시코(+1.0%p) 같은 중국의 대체 수출 기지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와중에도 한국은 자리를 잘 지켜낸 셈이다.
이는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고관세를 매기면서 발생한 '반사효과' 때문으로 파악됐다. 미국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빠진 세부 품목 상당수를 한국 제품이 대체해 들어가며 방어막을 형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일본과 독일은 이러한 중국 대체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했다.
한은은 비IT 수출 전선이 지금까지는 잘 버텨왔지만, 앞으로의 환경은 더 험난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 세계 제조업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글로벌 시장의 쟁탈전이 임계점에 달했기 때문이다. 위로는 기술 선점국인 독일·일본과 싸워야 하고, 밑에서는 가성비와 기술력을 모두 갖춘 중국이 턱밑까지 쫓아왔다.
이에 한은 관계자는 "향후 비IT 수출은 범용품의 가격 경쟁보다는 고부가 품목 중심의 기술 및 품질 경쟁으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며 "과거와 같은 양적 성장은 제한될 수밖에 없는 만큼 국내 수출 기업들이 친환경·고부가가치 중심의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압도적인 기술 격차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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