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뉴노멀 '나홀로 소송'⑤
'변호사 없는 '나홀로 소송'이 늘어나고 있다. 소액 민사사건은 변호사 비용이라는 '배꼽'이 소송을 통해 얻는 이익인 '배'보다 더 커서다. 특히 AI(인공지능) 활용도가 커지면 나홀로 소송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나홀로 소송의 현 주소와 변호사 조력은 정말 필요 없는지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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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없이 AI(인공지능)을 활용해 스스로 소송을 진행하는 나홀로 소송을 두고 법조계의 평가가 엇갈린다. 시민들의 사법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반면 법률 지식이 부족한 당사자들이 AI가 만든 부정확한 소장·준비서면을 그대로 제출할 경우 법원 업무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나홀로 소송의 확산은 시민들에게 권리구제 기회가 많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변호사 선임 비용 부담이나 복잡한 절차 때문에 소송을 포기하던 시민들도 직접 소송에 나설 수 있는 길이 넓어져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소송비용 때문에 권리구제 자체를 포기하던 사람들이 AI를 활용해 직접 법원에 가보겠다고 나서는 건 사법 접근성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민사소송 경험이 있는 한 시민도 "변호사 비용이 청구금액보다 더 커서 AI로 판례를 찾고 분석해 직접 진행한 적이 있다"며 "절차가 쉽지는 않았지만 아예 포기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반면 비전문가가 작성한 서류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법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청구 취지와 원인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서면이 들어오면 재판부가 사실관계부터 다시 정리해야 해 사건 처리 부담이 커지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도 "법률지식이 부족한 당사자가 사실관계와 법률 주장을 뒤섞어 제출하면 재판부가 보정명령을 내리거나 추가 설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당사자 입장에서는 비용을 아낄 수 있지만 법원 전체로 보면 시간과 인력이 더 드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AI가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만들어내거나 법령을 부정확하게 인용하는 환각 문제는 실무상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 월가의 대표 로펌인 설리번 앤드 크롬웰(S&C) 조차 AI가 생성한 부정확한 법률 인용과 허위 판례가 포함된 문서를 미국 뉴욕 맨해튼 파산법원에 제출했다가 공식 사과했다. 우리 법원도 AI가 만들어낸 허위 법령·판례나 위·변조 증거를 제출해 소송이 지연되거나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면 재판부가 이를 당사자에게 부담시킬 수 있도록 했다.
법조계는 변호사가 작성한 서면에서도 AI 오류가 걸러지지 않은 만큼 법률 지식이 부족한 일반 당사자의 나홀로 소송에서는 같은 문제가 더 쉽게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당사자가 직접 소송을 하면서 AI를 활용하는데 오히려 서류가 혼란스러워지는 경우가 많다"며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추지 않은 서류를 받는 법관 입장에선 판단에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나홀로 소송 증가에 따른 법원 업무 부담 가중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나홀로 소송을 시작 단계부터 적극 돕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 국립주법원센터(NCSC)에 따르면 법원 내 셀프헬프센터는 민사사건 당사자들에게 △필수 법률정보 △절차 안내 △기관 연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당사자가 더 잘 준비된 상태로 재판에 들어오도록 돕는다.
독일은 상급심에 변호사 강제주의를 둬 당사자 본인소송을 제한한다. 독일의 경우 기초법원에 해당하는 사건에서는 당사자가 직접 소송을 수행할 수 있지만 상급법원 이상에서는 원칙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소송비용 부담에 대비한 권리보호보험인 이른바 변호사 보험이 비교적 널리 활용된다.
법조계에서는 나홀로 소송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대기업 소속 사내변호사는 "소액·생활분쟁은 앞으로도 당사자 본인이 직접 들고 오는 사건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표준화된 입력형 소장, 초기 상담창구 확대, 쟁점별 안내서 고도화 같은 장치가 마련돼야 접근성 확대와 법원 부담 완화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룰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