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당시 외신에 허위공보를 한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항소심 재판부가 ‘주의의무 위반’을 근거로 판단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앞선 1심에서는 해당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바 있다.
4일 한겨레가 확인한 윤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사건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윤성식)는 “보도자료 작성·배포에 관한 주의의무도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로부터 도출된다고 봐야 한다”며 해외홍보비서관으로 하여금 사실관계에 반하는 피지를 작성하게 한 윤 전 대통령에게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해외홍보비서관에게 허위 피지(Press Guidance·언론 대응을 위한 정부 입장)를 작성하게 한 행위는 이러한 주의의무를 위반하게 한 만큼 직권남용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1심과 2심의 판단은 해외홍보비서관의 의무를 달리 규정하며 갈렸다. 앞서 1심은 “대통령비서실 소속 비서관이 ‘사실에 터잡아 업무를 수행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볼 만한 근거규정은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공소사실에서 전제한 해당 의무 자체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공정 의무나 헌법상 알권리로부터 도출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울러 1심은 해외홍보비서관의 역할을 “특정 현안에 관한 대통령의 입장 내용을 가능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작성하여 외신 등에 전달하여야 할 의무”로 한정하고, 사실관계의 진위까지 가려낼 권한이나 의무는 없다고 봤다. 이에 따라 1심은 직권남용의 구성 요건인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윤 전 대통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행정기관이 알고 있는 객관적 사정과 달리 국민에게 잘못된 인식을 유도하는 방식의 보도자료 작성은 공무원의 주의의무에 반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어 이 판단을 뒤집었다.
2심은 “보도자료 작성·배포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의 일환으로, 행정기관이 알고 있는 객관적인 사정과 달리 해당 사항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하거나 불확실한 점이 있음에도 과장되거나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국민이 해당 사항에 관하여 잘못된 인식을 가지도록 하여서는 아니 되는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했다. 구체적으로 피지 내용 중 “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다. 국회가 동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의 본회의장 진입을 막지 않았다”는 부분이 객관적 사실관계에 반한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2심은 또한 대한민국처럼 대외적으로 개방된 사회에서 국정에 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의 필요성은 국내 언론뿐 아니라 외신에서도 동일하다며 “대한민국의 상황에 대한 외신의 보도 내용이 국내에 전파돼 국민의 알 권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2심은 이런 이유로 윤 전 대통령이 해외홍보비서관으로 하여금 허위 내용이 담긴 피지를 작성·배포하게 한 행위는 주의의무를 위반하게 한 것이므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심은 “설령 해외홍보비서관이 피지의 내용이 객관적 사실관계에 반한다는 사정을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피고인은 자신이 지시한 내용이 사실에 반함을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해외홍보비서관이 이 사건 피지의 내용이 객관적 사실관계에 반한다는 사정을 알지 못했다는 사정은 피고인의 직권남용죄 성립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못 박았다.
국가공무원법 제56조의 ‘성실의무’를 직권남용죄의 구체적 ‘의무’로 인정한 2심의 판단은, 향후 상고심에서도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앞서 윤 전 대통령 쪽은 해당 판단이 “직권남용죄에 대한 대법원 판례에 모순된다”면서 상고장을 제출했다. 다만 현행법상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이 명료하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져 왔고 같은 판례를 두고도 유·무죄 판단이 엇갈리는 등 대법원의 일반적이고 확립된 판례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워, 추상적 의무가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를 둘러싼 치열한 법리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수연 기자 l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