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04년 5월2일. '농구 대통령' 허재가 강원 원주시 치악체육관에서 열린 은퇴 경기를 끝으로 30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당시 39세였던 그는 등번호 9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팬들 앞에서 마지막 승부를 펼쳤다. 국내 농구선수가 공식 은퇴 경기를 치른 것은 처음이었다. 경기에는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스타 선수들도 대거 출전해 허재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그만큼 허재는 한국 농구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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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구 최초 '은퇴 경기'…30년 선수생활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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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생인 허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타고난 운동신경과 끈질긴 성격으로 농구 골대 그물이 찢어질 때까지 연습했다. 압도적 재능으로 두각을 드러내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제7회 아시아 청소년 농구선수권대회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금메달을 이끌었다.
이후 1990년대 한국 농구를 풍미했던 허재는 2003~2004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다. 국내 농구 역사상 최초로 열리는 은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몰린 팬들 열기는 뜨거웠다.
입장권을 구하려는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경기 당일 비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에도 3000여장이 3시간 만에 매진됐고, 체육관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찼다. 주변에는 허재 은퇴를 아쉬워하거나 축하하는 글귀가 담긴 현수막이 걸렸다.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후배 스타들도 총출동해 은퇴하는 선배 앞날을 응원했다.
은퇴 경기는 화이트 팀과 블루 팀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허재는 전반에 화이트 팀, 후반에 블루 팀 유니폼을 입고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는 남은 힘을 다 쏟아붓고 떠나겠다는 듯 마지막 순간까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코트를 뛰어다녔다.
경기 종료 직전에는 후배인 서장훈과 김주성, 김영만 도움으로 덩크슛까지 꽂아 넣었다. 종료 버저가 울리자 관중석에서는 종이비행기가 축포처럼 날아들었다. 허재는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플레이로 팬들 성원에 보답하며 52득점, 4어시스트, 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허재가 후배들 헹가래를 받은 뒤 관중들에게 감사 인사하자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행복한 미소를 짓던 허재는 어느덧 눈시울이 붉어진 상태로 한동안 코트에 서 있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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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로서도 '정상' 오른 허재…왜 퇴출까지 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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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생활을 끝마친 허재는 지도자 준비를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이후 감독으로서도 우승을 경험하며 선수와 지도자로서 모두 정상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 됐다.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특유 입담과 예능감으로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방송인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2022년 프로농구 신생 구단 '데이원' 대표로 농구계에 복귀한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구단은 한국농구연맹(KBL) 가입비 미납과 고양 오리온 인수 대금 미지급, 선수 임금 체불 등 문제를 일으키며 경영난을 겪었다. 결국 KBL은 2023년 6월 데이원을 리그에서 제명했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구단이 제명된 것은 처음이었다.
허재도 책임론 속에 구단 대표나 협회 임원, 감독, 코치, 해설자 등 프로농구와 관련된 어떠한 직책도 맡을 수 없게 됐다. 과거 5번의 음주운전 적발과 두 아들 특혜 논란에도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던 허재는 이 사건으로 불명예를 안고 농구계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그는 방송 활동도 중단했으나 2개월 만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복귀한 뒤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