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29일 쿠팡의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정 5년 만에 동일인(총수)을 쿠팡 국내 법인에서 김범석 쿠팡아이엔씨 의장으로 변경한 데에는 동생 김유석씨의 경영 참여를 구체적으로 확인한 게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공정위는 2021년 쿠팡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지만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지에 관한 규정 미비 등을 이유로 미국인인 김 의장 대신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2018년 미국 국적인 이우현 오시아이(OCI)홀딩스 회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됐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이에 공정위는 2024년부터는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해 동일인을 법인으로 지정하기 위한 요건을 구체화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려면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동일인이 되는 회사 출자는 제외)과 그 친족의 국내 계열회사 출자나 경영 참여가 없어야 하는 등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김유석씨가 한국 쿠팡에서 물류 총괄 직급으로 고액 연봉을 받아온 사실은 알려졌지만, 공정위는 김유석씨의 경영 참여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2024년과 지난해 법인을 동일인으로 유지했다.
그러다 지난해 쿠팡의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를 계기로 열린 청문회에서 그가 부사장급 지위라는 점이 드러났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RSU)을 포함한 김유석씨의 총보수가 103억2천만원(연도별 연평균 환율로 환산)에 이르는 점도 알려졌다. 공정위 설명을 들어보면, 공정위에도 정보 유출 사고 이후 김유석씨 경영 참여 관련 신고가 접수됐고, 현장점검에서 그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자료를 추가로 확보했다. 또 물류 총괄 직급 자체는 임원급 지위가 아니지만, 공정위가 확인한 쿠팡 내부 등급에 따르면 김유석씨가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거의 최상위 등급이라는 점을 밝혀냈다고 했다. 김씨가 물류·배송 정책 관련 회의를 수백회 여는 등 업무집행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했다.
최장관 공정위 기업집단감시국장은 브리핑에서 “중요한 것은 직급·보수의 형식적 측면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회사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등기임원과 유사한지다”라며 “계열사마다 다르지만, 대표이사보다 오히려 김유석이 높은 등급인 경우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올해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면서 김 의장이 쿠팡 그룹의 실질적 지배자라는 것이 법적으로 명확해졌으며 이에 따른 추가 의무와 규제가 적용된다. 쿠팡은 김 의장 및 친족(4촌 이내의 혈족과 3촌 이내의 인척)이 지분 20% 이상을 소유한 국외 계열회사의 주주 구성 등에 대해 공시할 의무가 생겼다. 대기업집단에 속하는 국내 회사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국외 계열회사의 주식 소유 현황 등도 공시해야 한다. 가령 현재는 미국 쿠팡아이엔씨 등의 기업 정보를 한국에 공시할 의무가 없지만, 이 기준에 해당하면 공시 대상이 된다.
사익편취 금지 규정도 새로 적용받게 된다. 쿠팡이 김 의장이나 그 친족이 소유한 계열회사 등과 통상적인 조건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일감을 몰아준 정황 등이 포착되면 제재 대상이 된다.
공정위가 김 의장 친족의 국내 경영에 대한 판단을 뒤집으면서, 김 의장이 과거에 지정자료를 허위 제출했다고 보고 고발할지도 주목된다. 앞서 공정위는 2024년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당시 김 의장으로부터 친족이 국내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확인서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최장관 국장은 “지정자료 허위 제출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 관련 자료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동일인 지정에 따라 그룹 운영 과정에서 김 의장의 법적 책임과 의무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논평을 내어 “이번 결정으로 쿠팡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익편취 등에 대해 최소한의 통제가 가능해졌고, (김 의장) 친족 회사까지 계열사 범위에 포함돼 내부 거래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며 플랫폼 대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에 대해서도 좀 더 실효적인 규제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