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나긴 중동 전쟁에 피로와 좌절을 느낀 국민에게 ‘영원한 전쟁’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집권했다. 그런데 취임 뒤 1년3개월 동안 다섯차례나 외국을 공격했다. 많은 이들이 지난해 3월 예멘 후티 반군, 같은 해 6월 이란, 올해 1월 베네수엘라와 현재 진행 중인 이란 침공을 떠올리겠지만, 지난해 크리스마스 밤에 단행된 나이지리아 공습은 기억 저편으로 희미해졌을지 모른다.
미군은 당시 나이지리아 인근 해상에서 수십발의 미사일을 발사해 이슬람국가(IS) 연계 테러집단을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기독교인 살해에 대한 응징이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달 전에 경고한 바 있다는 것이 국방부의 설명이었다. 트럼프는 지난해 12월26일 언론에 “어제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 때려라, 그게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다’”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공습을 당한 농촌 주민들은 수확철 들판에 느닷없이 떨어진 미사일에 아연실색했다. 주민들은 현장을 찾은 시엔엔(CNN)에 “이곳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평화롭게 공존해온 지역인데 왜 공격했는지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뉴욕타임스는 익명을 요청한 미국 관리 2명을 인용해 트럼프가 기독교인 사망에 대한 보복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게 해주는 일회성 이벤트라고 전했다. 이 폭격은 그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얼마나 즉흥적이고 가볍게 사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 나이지리아에서 이란까지 ‘즉흥’ 공습 지난 2월28일부터 시작된 이란 침공도 다르지 않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7일 전인 같은 달 11일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그의 극소수 측근들에게 이란 최고지도자 제거, 이란군에 대한 궤멸적 타격, 민중 봉기에 의한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현란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트럼프가 “좋게 들리는데”라고 반응한 순간부터 ‘전쟁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백악관 참모들과 정보기관은 네타냐후의 주장을 검토한 끝에 표적 제거와 이란군 파괴는 완수할 수 있으나, 민중 봉기와 정권교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트럼프는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고 한다. 내부 논의에 참여한 인사들에 대한 광범위한 인터뷰를 토대로 한 뉴욕타임스 보도를 보면, 결국 트럼프의 ‘전쟁 내각’에서 회의적이던 인사들조차 “전쟁이 짧고 결정적일 것”이라는 대통령의 강한 확신과 그의 ‘직감’을 따랐다. 트럼프가 전쟁 초기에 이란 국민에게 봉기를 촉구하며 정권교체를 공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전쟁 목표가 분명치 않고, 사전 준비도 부족하며, 명확한 출구 전략마저 결여된 작전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이란은 이웃 아랍국가들의 에너지 시설까지 공격하며 완강히 저항했다. 미국은 이란의 항전 능력을 과소평가한 채, 전쟁을 4~6주 안에 끝낼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 있었다. 정권교체가 허황된 계획임이 명백해지자 전쟁 목표는 계속 바뀌었다. 애초부터 목표가 이란의 핵·미사일 및 해군 전력의 무력화였다고 주장하며 이미 ‘셀프 승리’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세계 경제를 볼모로 잡자 백악관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대규모 인명 피해가 불가피한 지상군 투입 등 확전은 일단 접고, 호르무즈해협 역봉쇄로 전술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가 벌인 일련의 전쟁은 미국이 국제법을 무시한 채 군사력을 과거보다 훨씬 더 가볍고 대담하게 사용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미국에 조금이라도 이익이 될 것 같으면 언제든 남의 나라를 공격할 수 있는 것은 세계 최강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약소국이나 중견국이라면 국가와 정권의 존망이 위태로워 쉽게 전쟁을 결정하지 못하지만, 미국은 설사 전쟁이 실패로 끝나도 견뎌낼 수 있는 ‘맷집’을 지녔다. 세계 최강의 경제력과 축적된 부, 잠재적 적국들과 멀리 떨어진 지리적 위치 덕분이다. 국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전쟁을 도구로 선택하는 것도 낯설지 않다. 트럼프는 어느 대통령도 이루지 못한 이란 정권교체라는 ‘대업’을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 했을 수 있다.
로버트 캐플런 미 오스틴 텍사스대 교수는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미국은 사실상 제국으로서 세계 속에 존재하며, 잘못 시작된 전쟁들은 제국주의 역사에 깊게 뿌리박힌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제국주의의 핵심은 국가의 필수 이익이 걸려 있지 않더라도 잠재적 이익이 될 수 있는 지역들에 개입하는 데 있다”며 “‘다시는 이런 전쟁이 없을 것’이라 선언하면서도 주기적으로 중간 규모 전쟁에 휘말리는 현실은 미국의 현대적 제국성을 반영한다”고 강조한다.
■ ‘어리석은’ 전쟁들, 선택 이유는? 미국은 베트남전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긴 전쟁을 치렀다. 시작할 때마다 “짧게 끝날 것”이라 장담했지만, 베트남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각각 20년, 이라크전은 8년이나 지속됐다. 미국에서 이 전쟁들이 ‘영원한(forever) 전쟁’으로 불리는 이유다. 역대 대통령들이 이처럼 소모적인 전쟁의 늪에 빠져든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이들은 잘못된 전쟁임이 분명해졌음에도 미국의 힘을 과신하고 위신 추락이 두려워 조기 종전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전쟁 실패의 책임을 인정하긴 싫고,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현재 진행 중인 이란과의 전쟁에서도 반복되는 현상이다.
미국 전쟁사가 바버라 터크먼은 저서 ‘바보들의 행진’에서 역대 대통령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 이유를 네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국가 안보가 위태롭다’ ‘중대한 이익이 걸려 있다’는 허구적 관념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스스로 여기에 사로잡혀 과잉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도미노 패가 연쇄적으로 넘어지듯 확산돼 미국까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허상도 그 사례다. 둘째는 미국은 전능하다는 환상, 셋째는 융통성 없는 아집, 넷째는 이성적 사고 대신 지렛대 조작에만 집착하는 행태다.
이란 전쟁의 경우에는 여기에 더해, 트럼프 개인의 오만과 절대 권력을 향한 야심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자신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착각 속에 있는 듯한 정황마저 보인다. 예수의 모습을 흉내 낸 합성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교황까지 공개적으로 무시하는 행태가 그 단면이다. 영국 역사학자 리처드 오버리는 트럼프 2기 출범 직전인 2024년 출간한 저서 ‘전쟁 충동’에서 “오만으로 인한 전쟁은 강력한 개인이 비용(대가)과 상관없이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높이기 위해 벌이는 것으로 역사상 흔치 않다”며, 대표적 인물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아돌프 히틀러를 꼽았다. 최근 사례로는 사담 후세인과 블라디미르 푸틴을 지목했다. 오버리는 “야심 찬 지도자에게 전쟁을 통한 권력 추구가 아무리 매력적일지라도 너무 자주 자기 파멸로 귀결됐다”고 경고한다. 트럼프 역시 이 부류에 속할 개연성이 적지 않다.
■ 2차 대전 이래 최대 군비 증강 박차 베트남전 실패에서 끌어낸 교훈이 이른바 ‘파월 독트린’이다. 미국이 전쟁에 나서려면 압도적 전력, 명확한 출구 전략, 중대한 국가 이익, 분명한 목표, 폭넓은 국내외 지지 등 여덟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를 가장 충실히 적용한 사례가 콜린 파월 합참의장이 지휘한 1990~91년 걸프전(1차 이라크 전쟁)이었다. 미국은 압도적 전력으로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격퇴하고 7개월 만에 철군했다. 이란 침공은 압도적 전력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측면에서 파월 독트린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더구나 그 압도적 전력마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라는 지렛대에 걸려 마음대로 쓰기 어려운 형국이다. 트럼프는 “긴 전쟁은 없을 것”이라 장담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전개될지는 불투명하다. 그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해야 전쟁이 끝날 수 있는데,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영원한 전쟁’이라는 망령이 다시 미국을 사로잡을지 모른다.
트럼프는 지난달 내년도 국방 예산으로 1조5천억달러를 편성해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올해보다 40% 이상 늘어난 규모로, 2차 세계대전 시기를 제외하면 최대치의 군비 증강이다. 구체적 소요 내역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본토 미사일 방어망 ‘골든돔’과 황금함대 등 트럼프의 공약이 포함될 것으로 관측된다. 일부 전문가는 팔란티어·안두릴·스페이스엑스 등 실리콘밸리 신흥 방산업체들에 새 일감을 몰아주려는 의도가 반영됐다고 본다. 어찌 됐든 트럼프는 자신이 공언해온 대로 ‘꿈의 군대’를 만들어 군사 모험주의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의 ‘전쟁 국가’ 질주는 미국 내부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잠식하고, 대외적으로는 영토와 자원 확장을 추구해 세계 질서를 한층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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