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혜덕 | 평화나무농장 농부
7월 첫날이다. 돌아보니 지난 6월 한달도 안갯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져 버렸다. 바쁘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낼 새도 없이 일 속에 묻혀 살았다.
월초부터 발도르프학교 9학년 학생들의 2주간 농사 실습, 다른 발도르프학교 어린 학생들의 하루 방문, 인도에서 유기농업의 현장을 보고 싶다고 온 두 분, 농장에서 나오는 농산물로 대지의 밥상을 차려달라는 대산농촌재단의 요청을 받아들여 저녁을 지은 것, 인연 깊은 분들을 농장으로 초대해 하루를 함께 지낸 것, 뜻깊은 포럼 참석과 역사 탐방, 이런 것만으로도 한달이 꽉 차지만, 그런 일을 빼도 농사일만으로도 한달이 가득 찼다.
남편과 나는 농사일을 가족노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려고 일의 종류와 시기를 분산한다. 농장을 꾸려가는 데 경제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지만 손이 많이 가는 토마토, 고추 등의 열매채소와 손이 훨씬 덜 가는 곡식 종류를 분산하여 심는다. 벼는 기본 곡식이고, 빵을 만들어 농장 회원들에게 보내줄 밀과 귀리와 보리 등도 적절한 면적에 심는다.
이 두가지 종류의 작물 사이에 배추, 양배추, 브로콜리 등의 잎채소가 있다. 가을에도 다시 씨를 뿌리지만 봄에는 추위 속에서 모종으로 기르느라 좀 더 분주하다. 2월 후반에 온상을 만들어 씨를 뿌리고 4월이 되면 밭에 옮겨 심는다. 뿌리채소인 무와 당근은 밭에 씨를 바로 뿌린다.
이러한 채소들은 김을 두번 매고 나서 6월 후반에 들어서면 수확한다. 올해 가장 먼저 수확한 채소는 봄배추와 브로콜리다. 배추 두포기와 브로콜리 한송이를 한 상자에 담아 농장 회원들에게 보냈다. 그다음 차례는 양파와 양배추였다. 양배추는 앞의 둘보다 자라는 속도가 늦어 속이 차기를 기다리면서 양파를 캤다.
양파는 말린 뒤 줄기를 자르고 상처 나거나 너무 작은 것만 빼고 회원 수대로 나누어 담았다. 양파뿐 아니라 보낼 채소의 양을 미리 정하지 않고 나오는 만큼 나누어 보내겠다는 방식에 동의한 회원들에게 보낸다. 이런 방식에 새삼 감동하며 담았다.
양파와 며칠 전에 수확한 양배추를 한 상자에 넣어 농장 회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날이 바로 어제, 6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부추도 한달에 한번씩 자라는 대로 베어 순서대로 보내고 있다. 곧 감자도 캐고 공심채도 수확을 시작한다.
텃밭처럼 집에서 먹을 양으로 조금씩 심은 파밭, 채두밭, 꽈리고추밭, 가지밭도 틈틈이 김을 매주었다. 들깨 씨도 세차례 뿌렸다. 밀, 귀리, 보리는 6월 말 즈음에 수확한다. 보리와 밀은 수확을 마쳤고 귀리는 다음주에 벤다. 그 베어 낸 자리에 심는 작물이 들깨다. 첫번째 심은 깻모는 보리 베어 낸 자리에 넣었다. 밀을 베어 낸 자리에는 곧 두번째로 기른 모종을 옮겨 심는다. 어제 마지막으로 포트에 씨를 넣은 들깨는 귀리를 베어 내면 그 밭에 심는다.
고추 기르기와 토마토 기르기. 이 두가지 열매채소는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작물이다. 고추는 두차례 곁순을 쳐주고 지주를 세우고 쓰러지지 않게 끈으로 묶어주었다. 토마토는 곁순을 제거하고 줄기를 열흘에 한번씩 유인해주고 있다.
1년 농사라고 하는 큰 틀 안에서 봄에 씨 뿌려 기르기, 밭에 옮겨 심고 돌보기, 수확하기, 가을 문턱이 다가오는 8월이 되면 다시 씨를 뿌려 길러서 수확하는 일이 교대로, 때로는 함께 이루어진다.
단순하지만 쉼 없이 이어지는 이러한 노동이 이 세상과 교류하는 일임을 느낀다. 농산물을 회원들과 나누며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회원들도 그렇게 느끼는 듯하다. 회원이 아니더라도 우리 농장을 바라보는 분들에게서 그러한 시선과 마음을 읽는다.
세상이 불합리와 폭력으로 가득하고, 기후 변화도 우리를 염려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지치지 않고 농사짓는 일이 이 세상을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작은 톱니바퀴 하나의 역할은 하리라 여긴다. 그래도 이 세상이, 우리나라가 조금은 더 살 만한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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