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대지진 참사로 너무나 많은 이들이 덧없이 희생됐다. 날마다 늘어나는 사망자 수는 비극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하기조차 어렵게 한다. 이처럼 대지진은 인류 문명에 되풀이되는 두려운 자연재해이지만,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오늘날에도 지진의 시기와 위치, 규모를 예측하는 기술은 아직 없다. 무엇이 분명한 전조 현상인지 불확실하고, 지진 발생 메커니즘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단층과 판 경계, 지질 조건, 내부 응력의 변동이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새로운 예측 방법 연구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독일의 헬름홀츠 지구과학센터와 국제 공동연구진이 큰 지진이 일어나기 전 몇주, 몇달 사이에 나타나는 전조에서 일정한 패턴을 머신러닝(기계학습)으로 식별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 그 결과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이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지진 예측 기술의 실마리를 제시했기 때문이지만, 또한 인공지능을 활용한 최신 연구의 트렌드를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무엇이 전조인지를 미리 가정하지 않고 순전히 데이터에만 의존했다. 인공지능에 과거 대지진의 방대한 데이터를 입력하고서 데이터에서 전조 패턴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했다. 또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수많은 작은 지진의 집단 거동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이전에 확인하지 못했던 지진 활동의 숨은 패턴이 포착됐다. 분석 대상이 된 대지진 사례들에서는 본진이 일어나기 전 작은 지진 활동이 점차 특정 지역에 모이고 상호작용이 늘며 지각의 응력이 변화하는 거동에서 일정한 패턴이 나타났다. 지진 전조에 숨은 패턴이 있으며, 그 패턴을 탐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이런 방법이 모든 대지진을 예측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학습 데이터로 쓰이지 않은 다른 지진 사례들에서는 같은 전조의 패턴을 식별해 내지 못했다. 이는 지진 발생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며 일부 단층은 뚜렷한 경고 신호 없이 붕괴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번 성과는 인공지능 머신러닝을 활용한 연구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과거에는 먼저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방식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가설 없이 데이터에만 의존해 패턴을 추출하고 그다음에 패턴의 의미를 해석했다. 미국 기술비평가 크리스 앤더슨은 2008년 데이터만 충분하다면 이론 없이도 유용한 지식을 얻는 시대라며 이론의 종말을 주장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의 단언은 너무 거칠고 지나치지만, 지금은 데이터와 확률적 패턴 또한 지식의 한 방법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이른 듯하다.
물론 확률적 패턴의 지식에도 한계는 분명하다. 근본적으로는 지진이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또한 학습 데이터에 없는 지진 사례나 데이터로 기록되지 않은 현상은 지식 자체에서 누락되기 마련이다. 더 많은 사례를 학습하고 기존 연구 방식과 상호보완할 때, 새로운 방법은 지진 예측 가능성을 조금씩 넓히는 도구로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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