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배재고등학교의 광주제일고등학교를 향한 지역 비하 논란에 고교야구계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배재고는 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펼쳐진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1회전에서 광주일고에 7-2로 승리했다. 하지만 배재고 권오영 감독과 코치진은 오히려 광주제일고 더그아웃으로 찾아 고개를 숙이기 바빴다. 경기 도중 터진 배재고의 조롱 논란 때문이다.
스타뉴스 취재 결과 배재고 선수단은 광주제일고 선수들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를 외쳤다. "가야지, 가야지, 안타 치고 가야지"라는 기존의 응원 구호는 스타벅스 문구를 넣으면서 흔히 말하는 '야지(조롱)'로 변질했다.
변질한 이유는 올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당일 스타벅스 코리아가 연 '탱크데이' 이벤트와 연관이 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탱크 데이', '책상에 탁' 등의 문구를 담아 텀블러를 홍보했다. 해당 문구들은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서 민주화운동을 비하하는 목적으로 사용된 것이라 논란이 됐다.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이사가 사퇴하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스타벅스 미국 본사도 공개로 사과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파장이 컸다. 하필 그와 관련된 문구를 광주 지역 학생들에게 사용했고 "탱크 데이"라는 발언을 한 영상까지 커뮤니티에서 퍼지면서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현장에 있던 KBO 구단 스카우트 등 관계자들도 지역 비하라고 판단할 만큼 조롱의 의미는 다분했다.
경기 후 배재고 야구부는 감독, 코치를 비롯해 해당 구호를 선창한 선수까지 광주제일고 더그아웃을 방문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여기에 일부 배재고 학부모들도 직접 사과의 뜻을 밝혔다. 여기에 배재고 측은 선수 자체 징계위원회와 선수단 전체를 향한 인성교육과 사과문 게시 등을 광주제일고에 약속했다.
광주제일고 측은 대체로 참담하다는 입장이다. 광주제일고 조윤채 감독은 스타뉴스에 "아이들이라 언제 어느 때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발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면서 "우리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까 봐 '우리는 우리 것을 하자'고 독려하고 달래가면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고 씁쓸함을 숨기지 못했다.
배재고에 직접 항의한 엄현웅 광주제일고 코치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야구판에서 있을 수 없는 단어들이 나오니까 나도 순간 많이 화났다. 8회 전에 주심이 한번 경고를 줬다고 하는데 조금 더 강력하게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어린 선수들이 작정하고 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이번 논란이 확산하면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까지 우후죽순 나오고 있다. 그 부분에는 선을 그었다. 엄현웅 코치는 "고교 응원 문화라는 것이 일부 친구가 구호를 외치면 나머지 아이들은 따라 하게 된다. 팀이 이기고 있으니 흥이 나서 충동적으로 했다고 믿는다. 구호를 선창한 선수도 끝나고 직접 와서 사과했다"고 밝혔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고교야구의 선 넘는 조롱 문화가 바뀔 때가 됐다는 목소리도 높다. 모교 교가나 프로팀의 응원가를 개사해 자팀 선수들을 응원하는 건 고교야구에서나 볼 수 있는 낭만이고 진풍경이다. 하지만 일부 학교는 조롱 응원으로 꾸준히 문제가 됐고, 이번 광주제일고를 비롯한 지방팀들은 주로 피해자가 됐다.
상대 선수의 부상 이력, 유급한 선수에 대한 나이 조롱 등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그걸 고교야구만의 문화라며 묵인하고 넘어가던 것이 결국 이번 사태를 불렀다고 분석한다. 한 KBO 스카우트 A는 "최근 들어 일부 팀들의 조롱 응원이 너무했다 싶은 정도였다. 스카우트들 입장에서도 별로 좋게 보진 않는다. 제재도 약하고 지도자들도 아쉽다"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일부 학생 선수들의 일탈에는 어른들의 몫도 크다고 봤다. 좁게는 잘못된 것을 계도하지 못한 지도자들부터 넓게는 학생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방치한 한국 사회까지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이 일을 접한 고교야구 지도자 B는 "이 부분은 지도자들이 강하게 해야 할 문제다. 아이들의 문화가 바뀌려면 어른들이 강하게 나서야 한다. 코치, 감독들이 잘 가르치는 게 최우선이다. 왜 이런 생각과 행동을 사람으로서 운동으로서 하면 안 되는지 잘 설명해주면 아이들은 바뀔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우리 학교도 그 부분은 굉장히 단호한 스타일이다. 상대 선수가 다쳤다거나 투수 교체 때나 찍소리도 못하게 한다. 당연히 아이들은 흥분해서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애들 귀에 딱지가 앉도록 수천, 수억 번을 말한다. 진정한 스포츠맨이 뭔지 알려주면 아이들도 변화하고 고쳐진다. 그런 문화를 없애는 건 지도자의 역량이 크다"라고 강조했다.
배재고의 사과에도 징계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배재고 야구부에 대한 복수의 항의 및 신고가 접수됐고 스포츠 공정위원회 회부는 불가피해졌다.
단순히 징계만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 미성년자는 말 그대로 아직 성숙해지는 과정에 있는 존재이고, 아이들은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실수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는지를 어른들이 제대로 설명하고 바로잡는 일이다.
이번 논란은 특정 학교와 특정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교야구 현장 전체가 돌아봐야 할 숙제다. 고교야구만의 낭만과 열정, 더그아웃의 패기 넘치는 응원이 누군가를 향한 조롱과 상처로 흘러가지 않도록 이제는 지도자와 학교, 협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올바른 역사 인식과 스포츠맨십을 가르치는 것 역시 경기력 못지않게 중요한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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