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골이 절실했다. 어떻게든 골을 넣고 월드컵 32강부터 오르는 게 중요했다. 조 3위로 밀릴 경우 득실차는 그다음 문제였다. 홍명보 감독은 그러나 모험수를 끝내 던지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스리백 전술을 유지했다. 동점골에 대한 의지보다 추가실점 우려에 더 신경 썼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도 소심했던 홍 감독의 전술적 선택은, 결국 한국의 굴욕적인 패배와 32강 직행 실패로 이어졌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5일(한국시간)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3차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0-1로 졌다. FIFA 랭킹 25위인 한국은 60위인 남아공과 비기기만 해도 조 2위로 32강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으나, 비겨도 되는 경우의 수조차 잡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역대 최악의 경기였다". 김환 JTBC 해설위원의 경기 후 이례적인 혹평은 이날 홍명보호의 경기력을 고스란히 압축한 한 마디였다. 전력이 강한 팀이 경기를 주도하고도 단 한 번의 일격을 허용하고 약팀에 지는 양상의 경기와는 달랐다. 이날 한국은 스코어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에서도 완패했다. 선수들의 집단 식중독 여부에 관한 경기 후 기자회견 질문은 이날 경기력이 그만큼 처참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전반부터 불안했다. 비겨도 되는 한국은 무리한 공격보다는 최후방부터 안정적으로 경기를 치르며 볼 점유율을 높였다. 다만 안정적인 경기 운영이 의미 있는 공격 전개로 이어지진 못했다. 답답한 경기 운영이 이어지자 공격의 핵심인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은 스리백 라인까지 내려서 직접 공격을 전개하려 애썼는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남아공의 공세가 거세졌다. 빠른 역습을 바탕으로 한국 수비 뒷공간을 노렸다. 다행히 전반엔 결정적인 실점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이기혁(강원FC)의 슈퍼 태클이 상대 역습 기회를 저지했다. 김승규(FC도쿄)는 두 차례 상대 결정적인 선방을 슈퍼 세이브해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프타임에 손흥민(LAFC)과 옌스 카스트로프(묀헨글라트바흐), 김진규(전북 현대) 3명을 동시에 투입한 건 홍명보 감독의 이날 선발 라인업 선택이 패착이었음을 인정하는 교체이기도 했다. 그러나 교체 카드 이후에도 한국은 분위기를 돌려놓지 못했다. 오히려 후반 18분 선제 실점을 허용했다. 비겨도 되는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팀에 허용한 선제 실점. 그것도 경기력에서 뚜렷한 우위를 점하지 못한 가운데 당한 '일격'이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한국은 월드컵 32강에 직행할 수 없었다. 그나마 같은 시각 킥오프한 A조 다른 경기에서 멕시코가 체코에 2-0으로 앞서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의 '4위 추락' 시나리오는 사실상 지워졌으나, 3위로 떨어지면 다른 조 3위팀들과 성적을 비교해 32강 진출 여부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균형을 맞춰 조 2위로 32강에 직행하는 게 필요했다. 한국을 반드시 이겨야 32강에 오를 수 있었던 남아공이 무게 중심을 잔뜩 수비에 옮겨두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전술적으로 과감한 선택이 필요했다. 예컨대 센터백을 빼고 전방 공격수 숫자를 늘리는 건 가장 일반적이면서 상식적인 선택지였다. 마침 벤치에는 조규성(미트윌란)을 필두로 양현준(셀틱) 엄지성(스완지 시티) 배준호(스토크 시티) 이동경(울산 HD) 이재성(마인츠)까지 다양한 카드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은 선제 실점 2분 뒤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를 빼고 박진섭(저장FC)을 투입했다. 김민재가 종아리 통증을 느껴 교체를 요청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격 자원이 아닌 박진섭을 택했다. 그나마 박진섭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라설 가능성도 있었으나, 그는 김민재가 섰던 스리백의 중심에 그대로 배치됐다. 홍명보 감독의 스리백 전술은 유지된 것이다.
후반 29분 홍명보 감독의 마지막 교체마저 '맞교체'에 그쳤다. 최전방을 누빈 오현규(베식타시)가 빠지고 대신 장신 공격수 조규성이 투입됐다. 공격수를 추가로 투입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같은 공격수 포지션 선수만 바뀌었다. 이후에도 홍명보 감독은 끝내 큰 전술의 틀을 유지한 채 극적인 한 방만을 노렸다. 그러나 별다른 전술적인 변화, 특히 상대를 흔들 만한 모험수 없이 동점골을 기대하는 건 '과욕'이었다.
선제 실점 이후 거듭 쏟아진 국가대표 출신 레전드 박지성 JTBC 해설위원도 거듭 홍명보 감독의 전술적인 선택에 아쉬움을 표했다. 박 위원은 "공격적으로 가야 되는 상황인데 수비 숫자(스리백)는 그대로 두고 경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많은 선수들이 공격에 가야 한다. 상대 박스 안에 선수들이 더 많아야 한다. 0-1로 지나, 0-2로 지나 순위가 변하는 건 아니다. 모험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술적 변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끝내 0-1로 패배하자 박 위원은 "이기려고 한 경기가 맞는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공격을 어떻게 하겠다는 게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월드컵 1~3차전을 통틀어서 같은 부분에 아쉬움이 나오고 있는 건, 월드컵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홍명보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월드컵 세 경기 중 가장 좋지 않은 경기를 한 건 맞다"면서 "이런 큰 무대에서의 결과는 모든 게 감독의 책임이다.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들이 제가 판단하고 결정한 것이었다. 잘못 판단하고 결정했으니까 결과가 좋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라고 말했다.
![]()
![]()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