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에 물린 환자에게는 말의 채찍을 불에 태운 재를 발라주라고 적혀있습니다.”
김혜나 한독의약박물관 학예사가 조선시대 의학서 ‘구급간이방’의 한 페이지를 해석해주자 요즘 시대에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급간이방은 한의학은 물론 고대 국어 연구에도 중요한 사료로 평가되는 국가 보물로, 한독의약박물관에 명인본이 전시돼 있다.
본지는 최근 충북 음성군 대소읍에 자리한 한독의약박물관에 방문해 동서양 의학과 약학의 역사를 살펴봤다. 한독은 연간 7억원에 가까운 비용을 투입해 모든 전시 관람과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흔한 ‘기업 홍보관’을 상상하며 입장한 박물관은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모습이었다.

한독의약박물관은 대소읍 대풍산업단지 내 한독 공장과 나란히 자리했다. 1964년 한독 설립 10주년을 기념해 처음 조성됐으며, 1994년 한독 공장이 서울 중화동에서 음성으로 이전하면서 지금의 단독건물을 갖추게 됐다. 1층엔 중국, 일본, 서양의 유물이 전시된 국제전시실이 있으며 2층엔 한국전시실이 운영된다.
한독의약박물관은 국내 첫 전문박물관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학예사 2명과 교육사 2명이 상근하면서 의약사 관련 교육 사업과 전시를 기획·운영하고, 관람객들을 안내한다.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은 약 2만여점에 달하며, 이 중 6점은 국가 보물로 지정됐다. 유물들은 기증을 받거나, 직접 구매해온다.
한국전시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청자상감상약국명합’은 한독의약박물관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고려 12세기에 왕의 의약품을 보관했던 용기로, 보물 646호로 지정됐다. 박물관이 직접 구매해 확보했다. 한국전시실 한편에 마련된 ‘일산문고’ 역시 눈길을 끌었다. 의학자인 일산 김두종 박사가 기증한 의학서적들이 자리잡고 있다. 구급간이방 역시 일산문고에 전시돼 있다.

국제전시실에는 19세기 독일 약국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독일에서 실제 약국 매장 계산대와 벽장, 진열대 등을 분해해 국내로 들여와 재조립했다. 의약품을 보관하는 도자기 그릇, 조제와 판매에 쓰였던 도구와 포장지까지 함께 전시됐다. 이 외에도 국제전시실에는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한 항생제 ‘페니실린’과 이를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의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코너도 마련됐다.
한독의약박물관은 충북 관내 주요 문화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전국에서 연간 2만50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아오고 있다. 관람객들은 학예사의 해설은 물론, 퀴즈, 만들기, 퍼즐 등 프로그램에 모두 무료로 참여한다. 특히 한독은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이 즐기도록 ‘닥터 에이치(Dr.H)의 비밀 노트’ 게임도 자체 제작했다. 박물관 곳곳에 숨겨진 단서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방탈출 게임’ 형식이다. 이 역시 별도의 비용 없이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만 설치하면 플레이할 수 있다.

민간기업 한 곳이 유지하는 공익사업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독의약박물관은 상당한 규모와 전문성을 뽐내고 있었다. 한독은 박물관에 적지 않은 비용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지만, 정작 박물관 내부에 회사의 이력을 자랑하는 공간은 1층 한켠에 소규모로 꾸며진 ‘한독 이노베이션 스페이스’가 유일했다.
한독 관계자는 “한독의약박물관은 역사적 유물부터 ‘대한약전 초판본’처럼 의약계와 산업계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료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라며 “수동적으로 설명을 듣고 구경만 하는 방식을 넘어, 관람객들이 적극적으로 전시에 몰입하고 참여하는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고민을 지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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