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한국 저격’으로 망 사용료 논란이 재점화됐다. 유럽연합(EU) 등 전 세계적으로 콘텐츠 제공사업자(CP)가 망 투자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콘텐츠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이 규제 움직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다.
3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인터넷 환경 변화와 맞물려 망 이용대가를 둘러싼 갈등이 통상 이슈로 번지고 있다. USTR은 최근 “세계 어느 나라도 자국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에 인터넷 트래픽 전송에 네트워크 사용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한국만 제외하고”라고 언급했다. USTR은 지난달 공개한 ‘2026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도 한국의 망 사용료 문제를 서비스 분야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망 사용료 논란은 유튜브, 넷플릭스 등 대규모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CP가 인터넷 서비스 제공사업자(ISP)에 통신망 이용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불거졌다. 영상과 인공지능(AI) 서비스 확산으로 데이터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망 투자 비용은 통신사가 부담하는 반면 수익은 글로벌 플랫폼에 집중되는 구조가 심화되면서 비용 분담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빅테크는 이용자가 이미 통신사에 인터넷 접속료를 지불하고 있기 때문에 망 사용료 부과는 이중 과금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트래픽 비중이 글로벌 빅테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네이버·카카오 등의 국내 사업자는 망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어 역차별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USTR 주장과 달리 한국은 망 사용료를 법적으로 부과하고 있지 않다. USTR도 망 이용대가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는 상황을 인지한다는 점에서 ‘입법 가능성’에 대한 선제 견제 성격이 짙다는 지적이다.
USTR의 이번 발언이 한국을 넘어 유럽 등 규제 확산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희권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콘텐츠 시장을 미국 기업이 주도하는 만큼 이번 USTR 발언은 한국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EU를 포함한 규제 확산에 대한 경고 성격”이라며 “망사용료가 입법화될 경우 미국은 무역법 301조 조사 등 다양한 대응 카드를 꺼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인터넷 환경 변화가 있다. 초기 인터넷은 텍스트 중심으로 트래픽 부담이 크지 않았다. 이 시기에 확립된 ‘망 중립성’은 통신사가 콘텐츠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지금은 실시간 생중계, 초고화질 영상 등으로 특정 플랫폼이 유발하는 트래픽이 급증하면서 망 투자 부담이 커졌다.
특히 AI 시대에 막대한 트래픽 유발이 예상되면서 ‘망 공정기여(fair share)’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통신 인프라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트래픽 유발 사업자도 일부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미국에서도 통신사가 주로 부담하는 보편적서비스기금(USF) 재원을 빅테크가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농어촌이나 저소득층의 통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재원으로, USF 규모는 연간 85억달러(약 12조5000억원)에 달한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미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콘텐츠 사업자는 통신사에 트래픽 전송을 요청하면서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며 “구글이나 넷플릭스가 미국 통신사에는 돈을 주면서 한국에는 부당하다고 얘기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의 통신사인 AT&T는 ‘피어링 정책’을 통해 대규모 트래픽을 전송하는 사업자에게 유료 계약을 요구한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디지털 네트워크법(DNA)을 통해 망 이용대가를 둘러싼 ISP와 CP 간 분쟁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망 이용 사업자가 지속 불가능한 투자를 초래해서는 안 되며 트래픽 유발에 따른 이익은 네트워크 투자에 공유돼야 한다는 취지다. 독일 법원은 2월 메타(옛 페이스북)가 도이치텔레콤에 약 3000만유로(약 450억원)의 망 대가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연동된 커뮤니티 글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