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민자는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의 줄임말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눈에 띄는 흐름을 포착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시대의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
"제 팬케이크가 지금 조리 중입니다."
최근 SNS(소셜미디어)에는 식당도, 카페도 아닌 인형 매장에서 올라온 기이한 '조리 인증샷'이 넘쳐난다. 요리사 복장을 한 직원이 집게로 팬케이크 모양의 봉제 인형을 집어 들고, 가짜 오븐에 넣어 굽는 시늉을 한다. 이어 시럽을 뿌리는 퍼포먼스와 함께 "맛있게 즐기세요"라는 말과 함께 인형을 예쁜 종이봉투에 포장해 준다.
영국 봉제 인형 브랜드 '젤리캣'(Jellycat) 매장에서 벌어지는 이 퍼포먼스는 #JellycatDiner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SNS로 확산했다. 틱톡에서는 "내 크루아상이 구워지는 중", "내 팬케이크 준비 완료" 같은 문장이 하나의 밈(meme)처럼 소비된다. 최근 글로벌 소비 흐름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랜덤'에 돈을 쓰던 시대에서, 예측할 수 있는 만족과 정서적 안정에 비용을 지불하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
1999년 런던에서 설립된 젤리캣은 부드러운 촉감과 단순한 디자인의 동물 인형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뮤저블'(Amuseable) 라인을 앞세워 전혀 다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팬케이크, 삶은 달걀, 커피 컵, 크루아상 등 일상 사물을 의인화해 눈과 입, 다리를 붙인 이 제품군은 기존 인형과는 전혀 다른 감성을 자극한다.
성과도 뚜렷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젤리캣의 2024회계연도 매출은 2억3300만파운드(약 4600억원)로 전년 대비 약 60% 증가했다. 2025회계연도 매출은 최대 3억3000만 파운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시장에서 젤리캣의 성장률이 45%를 넘어서며, 라부부 열풍으로 '아트토이' 시장의 강자였던 중국 팝마트를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
제품이 아닌 경험 판다…'리테일테인먼트'의 힘
━
젤리캣 성공 비결에는 제품이 아니라 '경험'을 판매하는 데 있다. 매장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무대가 된다. 직원은 점원이 아닌 '셰프'로 등장하고, 인형은 상품이 아니라 '요리'로 재해석된다. 이런 '리테일테인먼트'(Retail-tainment) 전략은 소비자에게 강한 서사를 제공한다.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을 체험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으로, 아트토이 산업의 권력이 '제품'에서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디자인과 희소성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얼마나 몰입감 있는 경험을 제공하느냐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중국 경제 매체 계면신문은 "상하이 팝업스토어에서 객단가가 일반 매장보다 30~40% 높게 나타났다"며 "퍼포먼스가 소비자의 소비 의사를 높였다"고 분석했다.
━
랜덤박스 피곤해…도파민 자극 대신 '확실한 위로'
━
그간 아트토이 시장은 '랜덤 박스' 방식이 주도해 왔다. 어떤 제품이 나올지 모르는 구조는 소비자의 기대감과 도파민을 자극하며 반복 구매를 유도하는 강력한 장치였다. 하지만 이 전략은 점차 한계를 드러냈다. 원하는 제품을 얻기 위해 여러 번 구매해야 하는 구조는 피로감을 누적시켰고, 소비 경험 자체에 대한 만족도를 떨어뜨렸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팝마트의 사례를 들어 "랜덤 박스 중심의 반복 구매 구조가 소비자 피로로 이어졌고, 이는 인기 캐릭터 수요 감소로 연결됐다"고 지적했다.
![]()
젤리캣은 전혀 다른 방향을 택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직접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작은 '환대'를 경험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젤리캣의 성공은 단순한 캐릭터 인형의 유행 아닌 도파민을 자극하는 불확실성의 소비에서, 일상 속 위로와 안정감을 제공하는 '정서 중심 소비'로의 전환을 상징한다고 본다. 자극적인 랜덤 박스가 주는 짧은 쾌락보다, 내 일상과 닮은 제품이 주는 지속적인 만족이 더 큰 가치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글로벌 소매 전략가 애덤 가스턴은 포브스 인터뷰에서 "2026년 소비자들은 더 이상 불확실한 선택에 베팅하지 않는다"며 "확실한 정서적 만족을 제공하는 브랜드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정서적 보험'(Emotional Insurance)' 소비다. 실패 가능성이 있는 도박형 소비 대신, 확실한 만족을 보장받는 선택에 돈을 쓰는 흐름이다. 저성장과 불확실성이 일상화되면서 소비자 심리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다.
연동된 커뮤니티 글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