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한 직후 독일 주둔 미군 감축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미 국방부 내부에서도 충격이 일고 있다고 30일(현지시각)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러시아가 오랫동안 유럽 내 미군 병력 축소를 요구해온 상황에서 나온 발언인 데다, 국방 당국자들과 사전에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최근 마무리한 전 세계 병력 배치 검토에도 유럽 내 대규모 감축 계획은 포함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복수의 국방 관계자들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독일 내 미군 감축 검토’ 발언이 나오기 전까지 관련 계획을 알지 못했다. 한 의회 보좌관은 “국방부는 이를 예상하지 못했고 어떤 감축도 계획하고 있지 않았다”며 “트럼프가 첫 임기(2020년) 때도 주독 미군 감축을 진지하게 추진했던 만큼 이번 발언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고 우려했다.
폴리티코는 “미 국방부가 최근 수개월에 걸쳐 전 세계 병력 배치에 대한 검토를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유럽 내 대규모 감축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올해 1월 발표된 미 국방전략은 유럽 동맹국들이 재래식 방어를 더 많이 책임져야 한다는 방향을 담았지만, 미군 감축은 유럽의 방위력 증강과 맞물려 수년에 걸쳐 조정될 사안으로 여겨져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폭탄 발언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의 신경전 직후에 나왔다. 메르츠 총리는 최근 간담회에서 “미국은 이란과의 전쟁을 끝낼 뚜렷한 전략이 없으며, 테헤란 협상 테이블에서 굴욕을 당했다”고 직격했다. 이에 발끈한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메르츠 총리가 이란의 핵무장을 묵인하고 있다고 맹비난했으며, 29일 주독 미군 감축 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내 들었다.
푸틴 대통령과 통화 직후 이 발언이 나왔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러시아는 나토 동진과 유럽 내 미군 주둔을 지속해서 문제 삼아왔는데, 실제 감축이 이뤄질 경우 나토의 동부전선 억지력뿐 아니라, 러시아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당혹스러워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독일 주둔 미군이 미국의 글로벌 군사 전략에서 대체 불가능한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약 3만5000∼3만60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람슈타인 공군기지, 슈투트가르트의 미 유럽사령부와 아프리카사령부, 란트슈툴 군 병원 등 미국의 핵심 군사 인프라가 몰려 있다. 람슈타인을 포함한 카이저슬라우테른 군사 공동체는 미국 본토 밖 최대 규모의 미군 커뮤니티로, 군인과 민간인, 가족 등을 포함해 5만명 이상이 관련돼 있다.
이들 시설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뿐 아니라 현재 이란 전쟁에서도 중요한 지원 역할을 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공군이 이란 공세 때 람슈타인에서 직접 전투 임무를 수행하지는 않았지만, 이 기지가 미국·유럽·걸프 지역을 잇는 공중 교량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또 드론과 장거리 타격 조율을 위한 지휘·통신·데이터 전송의 핵심 거점으로 기능했다고 보도했다.
벤 호지스 전 미 육군 유럽사령관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독일과 유럽의 미군은 독일인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물류 작전과 훈련장 등 미국의 자산은 미국을 위한 것이지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독일마셜펀드의 대서양 안보 전문가 클라우디아 메이저도 월스트리트저널에 “대부분의 병력은 나토 병력이 아니다. 그들은 미국의 이익에 봉사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감축은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제정된 국방수권법안은 국방부가 안보 영향을 평가하고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인증하기 전까지는 유럽 내 전체 미군 병력을 7만5000~7만6000명 밑으로 줄일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첫 임기 때 내려진 1만1900명의 철수 지시가 무산된 것도 의회가 관련 예산을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전 비용은 막대하다. 병력을 옮기려면 단순히 병영뿐 아니라 훈련장, 정비시설, 가족 주거지, 학교, 민간 지원 인프라까지 새롭게 갖춰야 한다.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는 친미 성향이 강하지만 러시아와 가까운 나토 동부 국경에 위치해 있어 대규모 핵심 기지를 이전하기에는 부담이 있다. 국방 예산 전문가인 토드 해리슨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은 폴리티코에 “폴란드에는 병력을 수용할 시설이 없을 것이며, 이를 구축하는 데는 매우 장기적인 건설 비용이 불가피할 것”고 지적했다.
독일 외무장관 요한 바데풀은 미국의 감축 가능성에 대해 “이전 미국 대통령들에게서도 제기되었던 낯설지 않은 내용이다. 준비돼 있다”면서도 “동맹 사이에서 마땅히 그래야 하듯, 미국의 결정은 우리 및 다른 동맹국들과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람슈타인 공군기지에 대해 “미국과 우리 모두에게 대체 불가능한 기능을 한다”며 대형 미군 기지는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