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바깥의 마음-김화진 작가
20대 초반, 서울과 안양 사이 오가던 나
씻겨 내려가지 않기를 바랐던 ‘서울의 나’
합정역 카페에서 마주친 천운영·정용준 작가
전세 대출로 겨우 얻은 ‘불안과 기쁨의 서울’
서울 바깥에서 서울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오직 서울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기대와 흠모, 동경, 흥미를 가진 이가 있는가 하면 질투와 분노, 절망을 느끼는 이도 있다. 서울 바깥에 사는 또는 살아본 적 있는 여섯명의 작가가 서울 바깥의 마음을 정확히 응시한다.
나는 스물세살 즈음 안양의 집에서 나왔다. 집 나올 용기, 그런 게 있었는지 모르겠다. 왜 집을 나오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스무살이 되었을 때 서울을 오가며 느꼈던 감정 중 하나는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오가는 동안 안양에서의 나와 서울에서의 내가 같지 않다는 느낌이었고, 학교 수업을 마치고 혹은 수업 후 학교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친구들과 이리저리 서울의 모르는 어딘가를 쏘다니다가 다시 안양으로 돌아오면 서울에서 했던, 받았던, 느꼈던 것들이 다 씻겨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매일 저녁이면 샤워를 하는 것처럼 ‘안양 샤워’ ‘귀소 샤워’ 같은 걸 한다는 식으로 그 느낌을 받아들여보려고 애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샤워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양에 있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 바깥에서 묻혀 온 것들은 쏟아지는 샤워기 물줄기를 받듯이 전부 다 쓸려 내려가는 거다. 그러면 나는 그것이 이상하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씻겨 내려가지 않았으면, 내가 계속 서울에서의 나처럼, 서울에서 묻힌 것들을 묻힌 채로 사는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내가 오가는 두 도시가 단절되어 있다는, 정확히는 두 도시를 오가는 내가 둘로 나뉘어 있다는 감각은 통학하는 내내 지속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학교와 집을 오가던 때 나는, 특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남태령역과 선바위역을 지나갈 때마다 ‘이제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라고 은근하고 끈질기게 생각했다.
20대 초반에 했던 생각으로부터 나는 여전히 멀리 있지 않다. 나는 여러개의 정체성을 받아 드는 일을 좀 어려워한다. 몸 안에서나 몸 밖에서나 이동을 어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왔다 갔다 하는 일이 힘들어서인지 정체성을 한쪽으로 통일하고 싶은 마음, 어디에서든 일관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는 나를 좀 통일하고 싶었다. 한쪽으로. 그런데 그게 안양 쪽으로는 아니고 서울 쪽으로였다. 나는 서울에서의 나 쪽으로 나를 합치고 싶었다. 지하철을 타면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독립을 시도한 이후 몇번의 실패 끝에 성산동에 살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은 합정, 상수, 망원역과 가까운 동네다. 주택가가 조용하고 오르막이 없으며 언제든 걸을 수 있는 천변이 근처에 있었다. 작은 원룸이었지만 그곳에 다다랐다는 사실이 무척 뿌듯하고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전에도 몇번의 독립 시도, 몇번의 이사가 있었지만 그 집에 살게 되며 비로소 조금, 내가 원하는 곳과 선 자리가 미세하게 맞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안양에서 버스와 지하철로 왕복 두시간 걸려 오가던 합정에 있는 카페를 도보로 왕복 50분이면 오갈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합정역의 어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작가들이 자주 나타난다는 합정역의 카페에서 어리둥절한 상태로 커피를 내리고 청소를 하고 서빙을 하고, 그러다 간혹 소설책을 읽다 보면 진짜로 작가를 만나게 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커피머신 너머로 보이는, 바로 맞은편 자리에 고개를 숙인 짧은 머리의 여성이 어딘가 익숙해서 계속 보게 되었다.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컵에 얼음을 담으면서도 한번씩 그쪽을 봤다. 누구지? 누구지? 내가 이 동네에서 낯익을 사람이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도 한번 더. 그러다가 순간 떠올렸다. 그분은 천운영 작가님이었다.
아는 척을 해 말아… 사인해달라고 해 말아… 그런데 나는 지금 책도 없는데….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는 아는 척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나는 천운영 작가를 두번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았고, 그때 나는 이후로 내 삶에서 작가를 만나는 일이 빈번히 벌어지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휴학생이었다. 떨리는 손과 목소리로 서명을 책에 받지 않는 게 너무 큰 실례가 아닐까 걱정하며 공책을 내밀었고, 작가님은 “어떻게 알아보지” 같은 말과 함께 웃으며, 친절하게 내가 내민 공책에 서명해 주셨다. 작가님이 카페에서 나가고 퇴근 시간까지 바 안쪽에서 평소대로 할 일을 하면서도 나는 뭔가 조금 둥둥 떠 있었다. 어떤… 영혼 같은 게 말이다.
나는 그때 행운과 마주쳤다고 생각했는데, 그날과 멀지 않은 어느 날 또 한번 행운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바 옆자리였고, 남자 손님이었다. 백팩을 내려두고 뭔가를 열심히 적는…. 그리고 이번에는 누구지? 누구지? 고민하는 시간이 지난번보다 조금 짧았다. 고개를 숙인 모습만 보다가 손님이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정용준 작가잖아… ‘떠떠떠, 떠’ 너무 좋잖아…. 바로 알아보긴 했지만 이번에도 아는 척을 할까, 사인을 받을까, 고민하는 시간은 또다시 길었다. 방해하는 거면 어떡하지, 당연히 방해하는 거지… 근데 또 이번이 아니면 못 볼 텐데…. 예의와 욕망 사이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늘 욕망이 이긴다. 나는 작가님께 다가갔고 인사를 하고 “소설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다. 사인을 받았나? 이상하게 그 부분이 기억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음 부분이 더 좋기 때문이다. 정용준 작가님은 (역시) “어떻게 알아보지?” 같은 말과 조금 놀라움, 조금 멋쩍음이 섞인 웃는 얼굴로 이런저런 말을 해주셨고, 마지막으로 “드릴 게 없네, 이거 드릴게요”라고 말하며 쓰던 연필을 내게 주셨다. 세상에… 연필… 대박이다. 이런 표현이 너무 하찮지만 그런 표현밖에 할 수 없었다. 보통 연필보다 심이 더 두껍고 몸통이 넓고 납작한 연필이었다. 한동안 나는 그 연필을 가지고 다녔다.
서울에서 살게 된 지 10년이 넘었다. 나는 이제 조금쯤 나를 서울에서 사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을까? 아무래도 그렇다. 경기도에 갈 때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며 ‘아 머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일을 하며 만나게 되는 동료들에게 “어디서 오셨어요?” 하고 묻고 “인천이요” “분당이요”라는 말을 들으면 “멀리서 오셨네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이동 거리가 한시간이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어유, 하고 깊은 한숨을 쉬고 나서 조금 놀란다. 이전에 나는 한시간이라고 하면 금방이라고 생각하는 안양 사람이었는데. 엄마가 “멀지도 않은데 집에 좀 자주 와”라고 말하면 “으응, 다음주에…”라며 속으로는 ‘안 가까운데…’라고 생각하는 표리부동의 사람이 되었다. 10년 전의 나는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몰랐겠지. 나는 사는 내내 대부분을 잘 모르니까.
떠올려보면 서울에서의 내 자리를 바라는 마음은 늘 황송했다. 나는 늘 자신이 없었다. 열아홉살 고3 시절, 과목마다 들어오는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너희 서울로 대학 가고 싶지? 서울 애들 얼마나 공부 열심히 하고 교육에 돈 많이 쓰는 줄 아니, 너희가 다 가고 싶어 하는 대학에 자리가 얼마나 적은 줄 아니, 서울에 있는 학생 수만 몇명인 줄 아니, 그중에서 공부 잘하는 애들 수는…? 하면서 겁을 줬다. 같은 교실에 있던 친구들 중 몇명이나 그 말에 진짜로 겁을 먹었을까? 적어도 나는 진짜로 무서웠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통학을 시작하고 나서 점점 어리둥절해진 나는 그제야 두번째로 서울에서의 자리를 바라게 된 것이다. 내 방, 내 집 같은 것. 서울에 있는 방을 구하고도 몇년을 월세를 내고 간당간당 남은 돈을 쥐고 머리를 굴리며 살다가 처음으로 전세 대출을 받기로 결심한 때가 떠오른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역시) 그 조건 안에 내가 무사히 들어갈 리 없음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최선을 다한다’라고 적으면 ‘그래, 최선을 다하면 되지’라고 뭉뚱그려 생각하게 되는 데 비해, 실제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대출 심사에 필요한 온갖 서류를 준비하고(민원24, 인증서, 주민센터…. 그냥 하면 되는데 그게 왜 그렇게 힘이 드는지….) 그것을 은행에 보내는 일이라는 사실, 그리고 모든 서류를 누락 없이 제출해도 계약 당일까지 내가 신청한 그 금액이 전부 다 나올지 나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대학 입시 때의 마음(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마음)과 비슷하게 굴러가던 전세 대출은 정말로 대학 입시처럼 나를 끝까지 떨게 하다가, 결국엔 서울 안쪽 어딘가에 밀어 넣어주었다. 고맙다 고마워. 대출금으로 보증금을 이체하고 이사를 마친 날은 새해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월의 어느 평일이었다.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과 그런데 해냈네 하는 기쁨으로 그날은 분절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서울로 오는 여정에서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동안 내내 오가는 감정에 가깝다. 나는 항상 내게 주어진 일을 버거워하며 받아 들고 끝내고 나서 끝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그리고 또 반복….) 얼마나 추웠는지, 얼마나 떨었는지 이외의 세부들은 벌써 기억에서 지워졌다.
거의 모든 것을 잊었지만 내가 아직까지 기억하는 그날의 장면이 하나 있다. 짐을 들여놓는 와중에 좁은 베란다에 있던 아주 오래된 보일러가 갑자기 덜컹, 하더니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불안에 떨며 보일러에 다가가자, 보일러의 덮개가 떨어지더니 물이 분수처럼 쏟아졌다. 나는 낯선 보일러 앞에 서서 쏟아지는 물벼락을 맞으며 이게 무슨 일이지, 망연자실했고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는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뭘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일을 수습하려고 베란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 있는 상태였다. 무척 심란했는데, 동시에 속이 시원하다는 생각을 했던 게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항상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상태를 훨씬 두려워하고, 막상 벌어지면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서울에 한번 더 자리를 잡은 그날 나는 나에 대한 것을 하나 알게 된 것이다. 차갑게 젖은 온몸을 하고서.
김화진 작가
김화진 작가 l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 연작소설 ‘공룡의 이동 경로’ 장편소설 ‘동경’ 등이 있다. 제47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