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축구의 도약을 이끈 선구자이자 현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인 모리야스 하지메(58)를 발굴한 이마니시 가즈오 전 산프레체 히로시마 총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16일 "J리그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총감독 등을 역임하며 현재 일본 축구의 기틀을 마련한 이마니시 가즈오가 이날 85세의 일기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고인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폭 생존자이기도 하다. 매체에 따르면 이마니시 전 감독은 1945년 8월 6일, 4세의 나이에 폭심지에서 약 2km 떨어진 히로시마 시내 자택에서 피폭을 당했다. 당시의 끔찍한 기억에 대해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지만, 왼쪽이 번쩍하고 빛났던 것은 기억난다"고 생전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당시 피폭으로 왼손과 왼쪽 다리에 화상 흉터가 남았고, 이로 인해 학창 시절 괴롭힘과 조롱 섞인 별명에 시달리기도 했다. 발이 빨라 고교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나, 반팔과 반바지 유니폼 사이로 화상 흉터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극복한 계기는 축구였다. 사회인이 된 후 상처가 개의치 않게 됐다는 그는 "경기에 나서면 모두가 응원해 주었기에 거부감을 잊을 수 있었다. 축구에 구원받았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도요공업(현 산프레체 히로시마)에서 현역 생활을 마친 그는 구단 내 감독을 비롯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조직적인 플레이를 적극 도입했고, 팀이 일본 리그 2부로 강등되자 네덜란드에서 한스 오프트 감독을 초빙해 그라운드 내의 지도를 맡겼다.
본인은 총감독으로 스카우트 활동과 선수 교육, 축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등에 주력했다. 특히 당시 무명이었던 나가사키 니혼대 부속 고교 시절의 모리야스를 직접 시찰해 스카우트했다. 이마니시 전 감독은 모리야스에 대해 "발이 빠르지도, 기술이 뛰어나지도 않았지만 축구를 대하는 자세가 좋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마니시 전 감독의 '축구 선수이기 전에 훌륭한 사회인이 될 것'이라는 지도 방침 아래 수많은 일본 국가대표 선수와 톱클래스 지도자가 배출됐다. 그가 발굴한 모리야스는 J리그 출범 후 히로시마의 핵심 선수가 됐고, 오프트 감독 체제의 국가대표로도 맹활약했다. 이후 지도자로 변신한 모리야스는 히로시마에 세 차례 J1 우승을 안겼고, 현재 일본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매체는 "현재 일본 축구의 도약은 이마니시 씨의 선견지명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며 "괴로운 피폭 체험에서 앞을 향해 나아갈 계기를 마련해 준 축구계의 발전에 헌신한 생애였다"고 고인을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