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기억식의 맨 앞자리 한 자리가 지난 11년 동안 늘 비어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마침내 세월호 참사 12주기에 이 자리가 채워졌습니다.”
16일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세월호 참사 기억식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을 소개하는 사회자 발언에 객석에선 잔잔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2주기 기억식에 검은색 양복과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참석했다. 김혜경 여사도 자리했다. 이 대통령 부부의 왼쪽 가슴에는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 배지가 달려 있었다. 슬픔을 누르며 행사장에 들어선 이 대통령은 노란색 점퍼를 입은 유가족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이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매년 이맘때가 되면, 말로 다 담아내기 어려운 마음과 마주하게 된다. 12년이 흘렀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며 “오랜 세월 동안, 매일같이 얼마나 큰 고통과 그리움을 감내해오셨을지 감히 헤아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날의 과오와 그 무거운 교훈을 한시도 잊지 않으며,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한다”며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기본과 원칙을 반드시 바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 뒤로는 ‘안전한 나라, 약속을 넘어 책임으로’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고, ‘세월호 참사 12주기’라고 적힌 글씨 위에 설치된 노란 바람개비가 돌아갔다. 이 대통령이 추도사를 하는 동안 유가족들은 눈물을 닦아냈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리고, 다짐하는 한 304명 한분 한분의 이름과 그들이 미처 이루지 못한 304개의 꿈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깊은 애도를 전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객석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이 대통령 부부는 추도식이 진행되는 1시간20분 동안 자리를 지켰다. 행사가 끝난 뒤 김 여사는 정부자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을 꼭 안아줬고, 정 부서장은 눈물을 흘렸다. 이 대통령이 퇴장하는 길에 앉아 있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대통령님, 고맙습니다”라고 말했고, 일부 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꼭 부탁드립니다”고 했다. 이날 기억식에는 세월호 유족과 함께 보라색 점퍼를 입은 10·29 이태원 참사 유족 5명도 참석했다.
같은 시각 전남 목포신항에서도 적갈색으로 녹이 슨 세월호 선체 앞에서 유족 등이 참석한 기억식이 열렸다. 최수희양의 아버지 최준헌씨가 “그리움이 숨이 막히게 차올라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네가 남겨준 따뜻한 기억들이 아빠를 겨우 숨 쉬게 한다”고 하자, 참석한 30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 훌쩍거렸다. 이번 기억식은 전보다 세월호 선체 쪽으로 약 50m 가까운, 선체로부터 30~40m 거리에서 진행됐다. 목포 지역 시민단체들이 모인 ‘세월호잊지않기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가 해양수산부에 요청한 결과다. 선미에 쓰여 있던 ‘SEWOL’(세월)이라는 글자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지만 사회자는 “우리의 다짐도 세월호처럼 낡아가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이렇게 많은 분이 함께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서울에선 오후 4시16분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묵념을 시작으로 시민 기억식이 열렸다. 4·16연대는 서울 중구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 앞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 세월호 참사 관련 미공개 기록의 공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여권에선 일제히 유가족들이 요구해온 생명안전기본법의 조속한 제정을 약속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2회 안전의 날’ 기념식 기념사에서 “생명안전기본법, 사회재난대책법을 제정하고, 대통령 직속 국민생명안전위원회를 설치해서 체계적이고 일관된 안전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안전에 대한 모든 사람의 권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명확히 하고, 안전사고의 발생 원인 및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안전사고 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 보장 등을 뼈대로 한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뒤늦게나마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국회가 생명안전기본법 처리를 더 미뤄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호응했다.
서영지 심우삼 이준희 기민도 조해영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