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에는 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신이랑 법률사무소’가 시청률 10%를 돌파했다. 법리적 디테일이 엉성하고 전개가 느리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거둔 의외의 성적이다. 이유가 뭘까. 우선 익숙한 장르적 원형인 ‘아랑 전설’과 ‘헐크’의 결합이 눈에 띈다. 억울한 원혼이 사또를 찾아가 한을 푼다는 서사는 한국인의 무의식에 깊이 박힌 정의의 모델이다. 여기에 평소 예민하고 소심한 신이랑(유연석 분)이 빙의를 통해 파격적인 본능을 발산하는 모습은 마블 캐릭터인 ‘헐크’의 카타르시스를 소환한다. 배우 유연석의 다채로운 빙의 연기와 소동극을 보는 맛도 있거니와, 복잡한 법리적 절차를 가로질러 정의가 실현될 때, 굉장한 효능감도 느껴진다. 그런데 이게 전부일까. 더 들어가 보자.
한국적 오컬트, ‘퇴마’ 아닌 ‘해원’
영화 ‘검은 사제들’ 이후 한국에서 오컬트물의 흥행은 검증되었다. 그런데 ‘신이랑 법률사무소’는 다른 오컬트물과 철학적 기반이 다르다. 영화 ‘검은 사제들’이나 ‘사자’ 등 서구 가톨릭적 오컬트를 차용한 작품은 악령을 박멸하고 축출해야 할 ‘악’으로 규정하고, ‘퇴마’에 집중한다. 그러나 ‘신이랑 법률사무소’는 ‘해원상생’(解怨相生)이라는 한국 무속의 본령을 따른다. 서구식 퇴마가 신과 악마의 이분법적 대결 구도라면, 한국적 해원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모두 제자리를 찾게 하는 관계 회복에 방점을 찍는다. 드라마는 악을 처단하는 ‘심판’의 서사가 아닌 ‘치유’의 서사를 따른다. 즉 원혼을 달래고 유족을 보듬고 공동체를 화해로 이끈다.
드라마에서 귀신은 무섭다기보다 가련한 존재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른 채 기억을 잃고 떠도는 외로운 자들이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불러주면 한꺼번에 기억을 되찾지만, 말할 권리를 박탈당한 소수자이다. 신이랑은 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빙의를 통해 그들의 입이 되어준다. 심지어 그들이 생전에 못다 한 일을 해주기도 한다. 신이랑은 변호사로 법정에 서지만, 본질적으로 ‘샤먼’이다. 변호사의 이성과 샤먼의 비이성이 충돌할 것 같지만, 보완적이다. 법이 가진 증거주의의 한계(침묵)를 샤머니즘의 경청(진실)이 메운다. 또한 신이랑은 증거 수집 과정에 귀신을 염탐꾼으로 활용해 공조한다.
첫회 의료사고 에피소드를 보자. 코골이 수술을 받다가 죽은 아빠로 인해 유족은 죄책감에 빠진다. 어린 딸은 공연히 수술을 받으라고 한 자신을 탓한다. 법의 오작동으로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여론 조작으로 피해자가 오히려 비난받자, 딸이 거식증에 빠진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만이 유족을 올바른 애도와 새로운 삶으로 이끌 수 있다. 신이랑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이 여기이므로, 변호사의 길과 샤먼의 길이 어긋나지 않는다. 신이랑은 변호사로서 법적 정의를 세우기도 하지만, 이를 넘어 유족이 망자를 놓아주고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살핀다. 이후 에피소드에서는 생전에 도달하지 못했던 가족 화해에 이르게도 한다.
드라마가 지닌 해원의 정서는 한국 사회 특유의 ‘집단적 애도’ 문화와 깊이 맞닿아 있다. 한국 사회는 유독 무고하게 죽은 이들에 대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부채감을 강하게 공유한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는 말할 것도 없고, 단종의 비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은 무고하거나, 억울하거나, 선량하거나, 성군이 될 가능성이 있었으나 좌절된 존재의 죽음 등에 공동체적인 죄책감을 느낀다. 최근 화제가 된 ‘왕과 사는 남자’가 보여준 폭발적인 흥행 역시 ‘애도’에 대한 감응이었다.
관객은 현실에서 구원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허구의 공간에서 탕감받으려 한다. 신이랑이 원혼의 한을 풀어주는 과정은, 시청자에게 일종의 ‘디지털 분향소’ 구실을 한다.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보듬지 못한 죽음들, 국가나 공적 기구가 외면했던 억울한 사연들을 드라마가 대신 정중히 예우하고 배웅하는 것이다. 10%에 이르는 시청률은 단순히 재미에 대한 지표가 아니라, ‘막막한 부채감’에 대한 공동체의 무의식적 반응으로 읽힌다. 제대로 된 애도의 부재를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 드라마가 희구하던 ‘애도의 장’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성과사회 ‘수평적 폭력’ 고발
흔히 부패한 권력이나 ‘나쁜 아버지’로 대변되는 ‘수직적 구조’가 모든 불행의 원인일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드라마도 처음엔 범인이 작곡가, 연구소장인 장인, 국가폭력인 것처럼 각 에피소드를 풀어나간다. 그러나 진짜 범인은 연습생 언니, 연구원 선배, 동업자였다. 이는 한국 사회의 비극이 ‘수평적 폭력’으로 전이되었음을 뜻한다.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분석했듯, 현대 사회는 ‘규율사회’(수직적)에서 ‘성과사회’(수평적)로 변모하였다. 가해자들은 모두 과잉 경쟁 시스템 속에 내몰린 ‘옆 사람’들이다. 거악은 풍경처럼 뒤에 서 있고, 직접적인 해악은 나와 가장 가까운 경쟁자에게서 온다. 각자도생의 논리가 지배하며, 비교와 선망과 질투에 사로잡혀 동료의 성과를 가로채거나, 동료를 밀고하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잠재적 가해자가 된다. 즉 서로 감시하고 착취하는 성과사회의 내면화된 채찍이 동료를 가해자로 만든다. 이들의 내면은 절대적 악마성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비겁함’에 가깝다. 여기서 ‘자본’이나 ‘국가’와 같은 가해 시스템은 은폐되며, 피해자들은 ‘능력주의의 함정’에 빠져 ‘내 파이를 빼앗는 옆 사람’에게 증오와 분노를 투사한다. 드라마는 이 같은 수평적 갈등의 잔혹함을 폭로한다.
가족의 죽음과 ‘대리자’의 삶
한편 한나현-소현 자매의 관계는 가족 안의 죄의식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보여준다. 한나현과 소현은 애틋한 자매로 보인다. 나현에게 소현은 자신을 구하고 대신 죽은 숭고한 언니이다. 하지만 이들 자매라고 경쟁이 없었을까. 형제자매는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두고 일생 경쟁하는 관계다. 나현은 사고 이후 내내 가족을 멀리하다가 “엄마 딸 죽여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이는 언니가 엄마의 사랑을 더 많이 받던 딸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언니는 ‘죽었기 때문에 완벽한 존재’로 박제되었다. 살아 있는 인간은 결점이 있고 갈등도 빚지만, 희생하며 떠난 사람은 완벽한 ‘성녀’로 남아 가족의 삶을 지배한다.
엄마가 수술실 앞에서 던진 “네가 밴드를 하면 했지, 왜 언니를 콘서트장에 데려가서 사고를 당하게 했느냐”는 원망은 나현에게 ‘음악을 향한 너의 욕망은 재앙’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엄마 딸 죽여서 미안하다”는 나현의 사과는, 언니 대신 살아남았다는 생존자의 부채감을 넘어, 엄마의 진정한 자식은 언니뿐이라는 ‘자아 부정’이 담겨있다. 나현은 자아를 삭제하고 죽은 언니의 삶을 대리하겠다는 형벌을 짊어진다. 각별해 보이는 자매애 뒤에는, 죽어서 완벽해진 사람과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경쟁’을 하며 자신을 삭제하는, 살아남은 자의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나 때문에 언니가 죽었는데, 내가 꿈이란 걸 꾸면 안 되잖아요.” 한나현은 가수의 꿈을 버리고 언니의 꿈이었던 변호사가 되어, 언니의 수첩에 승소 기록을 써 간다. 한나현이 승소에 목매는 ‘법 기술자’로 살았던 건, 그에게 변호사란 직업이 언니의 꿈을 ‘대리 수행’하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즐거워도 안 되고, 실패해서도 안 되고, 오직 정확하게 수행해야 하는 역할극 같은 것이다. 하지만 신이랑을 만나 처음 ‘패소’하면서, 강박에 균열이 생긴다. 그제야 비로소 “어떤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시작된다.
한나현은 신이랑을 통해 언니를 만나고 가족과 13년 만에 화해하면서, 언니가 진정으로 바랐던 게 ‘승소율 높은 변호사’가 아니라 ‘억울한 자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었음을 깨닫는다. 또한, 언니를 대리하는 기능적 인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로 정의와 윤리를 고민하고 판단하는 주체로 거듭난다. 한나현은 언니와 함께 버킷리스트를 해보고, 가족과 화해하고 정중히 과거로 보내 드린다. 그리고 신이랑의 사무소에서 함께 일하겠다고 제안한다. 제대로 된 애도로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드라마는 자기 삶을 몰수당했던 여성이 자신의 본질을 회복해가는 성장의 서사로도 읽힌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옆자리 동료와 소모적인 경쟁을 주고받으며 살거나, 자신의 꿈을 몰수당한 채 누군가의 삶을 대리하며 살아간다. 능력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 착취의 구조를 보는 지혜와 진정한 애도를 통해 내가 사로잡힌 과거의 원혼에서 벗어날 용기가 필요하다.
황진미 | 대중문화평론가. ‘씨네21’ 영화평론가로 출발하여 티브이 드라마, 예능 등을 두루 평론한다. 인권·역사·여성·장애·인구·성·계급·권력 등 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많다. 원래 전공은 의학·보건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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