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여행을 떠나기엔 부담스럽지만, 집에만 있기엔 아이들에게 미안한 주말이 있다. 지난달 첫 토요일이 그런 날이었다. 나와 아내는 각자의 일터에서 평소보다 바쁜 한주를 보낸 탓에 주말 계획을 미처 세우지 못했다. 하늘에 먹구름이라도 드리웠다면, 이번주는 밀린 집안일이나 하며 쉬자고 스스로를 달랬을 것이다. 하지만 싱그러운 6월의 햇살을 머금은 하늘은 우리를 집 밖으로 이끌었다.
이럴 때면 떠오르는 곳이 있다. 첫째가 아장아장 걷던 무렵부터 찾던 공주시 사곡면의 작은 오토캠핑장이다. 캠핑장 앞에는 작은 냇물이 졸졸 흐르고,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포근하게 둘러선 이곳에선 시골 마을 특유의 고즈넉함과 여유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내가 사는 세종시에서 차로 40분 남짓한 거리라 부담 없이 찾기에도 좋다. “아빠! 우리 캐치볼 할 수 있겠지?” “난 티니핑 튜브 챙겨줘!” 오토캠핑을 간다는 소식에 아이들은 단숨에 반색했다. 아들 서진(10)이는 캠핑장 중앙의 너른 잔디밭을 떠올리며 야구공과 글러브를 챙겼고, 딸 서하(5)의 마음은 이미 수영장을 향해 있었다. 주말마다 맑은 지하수를 새로 받아 운영하는 수영장은 이 캠핑장의 놓칠 수 없는 묘미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캠핑장을 운영하는 김영태(51)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왔지만 바쁜 일상 탓에 자주 찾지는 못했다. “여기 이 자리, 괜찮으세요? 아니면 안쪽 그늘진 사이트도 가능합니다.” 수개월 만의 방문임에도 그가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대부분의 캠핑장이 지정 사이트를 예약제로 운영하는 것과 달리, 이곳은 선착순으로 자리를 배정한다. 6월의 햇살은 한여름처럼 무겁지는 않았다. 우리는 편의시설과 가까운 자리를 택했다. 제법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아내와 함께 폴대를 세우고 팩을 박았다. 아이들도 망치를 건네고 의자를 펼치며 저마다 할 일을 찾았다. 함께 캠핑하러 다닌 시간이 쌓이면서 어느새 우리 가족만의 작은 호흡이 생긴 듯했다. 마지막으로 현충일을 맞아 서진이가 직접 챙겨 온 작은 태극기를 폴대 위에 게양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우리는 캠핑 의자에 몸을 맡겼다. 바쁘게 흘러가던 한주가 그제야 조금씩 멀어지는 듯했다. 나와 아내는 시원한 맥주 한캔을,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달콤한 음료를 들이켰다.
“어떤 걸 만들지 골라볼까요?” 이 캠핑장은 원예, 농장, 목공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날 우리는 목공 체험을 신청했다. 서진이는 다용도 수납함을, 서하는 장난감 자동차를 골랐다. 아이들은 손끝으로 나무의 결을 느끼며 사포질에 집중했다. 사포가 목재 표면을 스치는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작업장에 번졌다. 크고 작은 나뭇조각을 맞추고 망치질을 이어가자, 흩어져 있던 재료들은 점차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건 집에 가서 내 책상 위에 둘 거야.” 서진이는 완성된 수납함을 연신 들여다봤다. 서하는 자동차를 바닥에 굴려보며 환하게 웃었다. 비록 서툰 손길로 만든 작품이었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장난감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내가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가득 피어났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캠핑장에는 여러 텐트의 아이들이 어우러져 뛰놀았다. “난 이제 튜브 타고 싶어!” 햇살이 제법 뜨거워질 무렵, 물놀이가 하고 싶다는 여동생의 성화에 서진이는 공과 글러브를 내려놓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수영장에는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텐트로 돌아와 화로대를 펼치고 장작에 불을 붙였다. 타닥타닥 마른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수영장 너머 아이들의 달뜬 목소리가 뒤섞여 초여름의 저녁 공기를 채웠다. 한주 내내 가쁘게 몰아쉬던 숨을 고르고 자연의 느린 박자에 발을 맞추니, 비로소 삶의 빈틈이 온기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다가오는 밤, 식구 네명이 장작불 앞에 둘러앉아 주고받을 이야기를 떠올리니 마음이 한결 넉넉해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은, 충분히 눈부신 하루였다.
박준형 ‘오늘도 아이와 산으로 갑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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