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투자의 대상이기 이전에, 오늘을 사는 우리 가족이 가장 행복해야 할 공간이다. 지금 누리는 행복이 미래의 집값에 못지않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이제라도 가족만의 ‘진짜 집’을 가꾸어보길 권한다. 수십 년간의 경험으로 단언컨대, 공간이 바뀌면 비로소 삶이 바뀐다.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70%에 달하는 사람들이 아파트 거주를 열망하는 나라. 이곳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부의 원천이자 신분을 가르는 상징이 되었다. 21세기 한국에서는 땅값 비싼 강남 한복판부터 한적한 농지 옆, 심지어 작은 어촌 마을에 이르기까지 아파트는 주거의 ‘갑’으로 군림하고 있다.
평생 건물을 짓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건축가의 시선으로 볼 때, 이 현상은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하다. 건축가들이 가장 개입하기 꺼리는 유형의 집이 정작 현실에서는 가장 많은 사람이 살기를 원하는 곳이라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분명 오늘날의 아파트는 살 사람이 주도권을 쥐고 지은 ‘집’이라기보다, 건설사와 정부가 자신들의 이익과 행정 편의에 맞춰 찍어낸 ‘건설 상품’에 가깝다. 수십 년간 이어진 일방적인 공급 논리 속에서 우리 머릿속은 ‘아파트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길들여졌고, 이제는 이 규격화된 삶의 방식이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라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로 지어진 콘크리트 상자 속에 살고 있을지라도, 그 안에서 숨 쉬는 ‘사람’이 있는 한 삶의 주도권을 쥘 가능성 또한 여전히 우리에게 있다. 뻔한 아파트에서 뻔하지 않게 진짜 ‘우리 가족’의 온기가 흐르는 집으로 거듭나기 위한 건축가로서의 다섯 가지 구체적인 대안을 소개한다.
거실 구조를 전면 재구성하라: 극장에서 광장으로
한국 아파트 거실의 99%는 데칼코마니처럼 똑같다. 한쪽에는 큼직한 소파가, 맞은편에는 대형 티브이(TV)가 위용을 자랑한다. 티브이는 클수록 자랑거리가 되고, 이제는 ‘거실’이라기보다 ‘홈 시네마’라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할 정도다. 소파에 앉은 가족들의 시선을 주목해 보자. 우리는 가족과 마주 보는 대신 극장 관객처럼 일렬로 앉아 화면만 응시한다. 비싼 가전과 가구를 들여놓느라 거금을 썼지만, 정작 가족 간의 대화와 눈 맞춤의 기회는 우리 돈을 내고 스스로 없애버린 꼴이다. 시선과 목소리를 집어삼키는 커다란 화면에 제압당한 거실에서 일상의 대화는 자취를 감춘다.
이 현상이 눈에 들어온다면 지금 당장 티브이를 거실 밖으로 ‘귀양’ 보내보라. 그리고 거실 중앙에 커다란 테이블을 놓고 식구들이 둥글게 모여 앉을 수 있도록 배치를 바꿔보자. 무거운 일자 소파보다는 움직이기 쉬운 1인용 의자가 좋고, 차가운 가죽보다는 포근한 천 소재가 대화의 온도를 높여준다. 구조가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티브이가 사라진 자리에 시선이 교차하기 시작하면, 스마트폰에 몰두하던 아이도 고개를 들어 엄마와 눈을 맞추고 한 마디라도 더 건네게 된다.
‘안방’이라는 권위주의를 해체하라: 활동 빈도에 따른 공간 배분
전통적으로 한국인에게 ‘방’은 취침, 식사, 휴식, 노동이 모두 이루어지는 다목적 공간이었다. 자연스레 가장 크고 볕이 잘 드는 방은 집안 어른이 머무는 ‘안방’이 되었고, 이 관성은 아파트의 ‘마스터 베드룸’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러나 오늘날 아파트에서 안방의 실질적 기능은 무엇인가. 식사도, 휴식도, 오락도 거실이나 주방에서 이루어진다. 안방은 사실상 ‘잠만 자는’ 곳으로 전락했음에도 여전히 집에서 가장 넓고 좋은 방향을 독차지하고 있다. 명백한 공간 낭비 아닌가?
이 모순을 이해했다면 안방을 가족 공동의 오락실이나 서재, 작업실로 과감하게 전환하라. 어수선하게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취미 용품이나 아이들 장난감을 이 넓은 공간으로 몰아넣고 문을 닫으면, 거실은 오히려 정갈한 쉼터와 손님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난다. 수면을 위해서는 붙박이장이 있는 가장 작은 방으로도 충분하다. 공간의 면적을 위계가 아닌 ‘활동의 빈도’에 따라 재배치할 때, 집의 효율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주방을 소외된 구석에서 심장부로 소환하라: 음식은 가족 만남의 유일한 기회다
아직도 많은 한국 아파트에서 주방은 냄새나는 가사 노동의 공간처럼 취급받는다. 북향의 외진 곳에 배치된 탓에, 남편이 햇살 가득한 거실에서 야구 중계를 즐기는 동안 아내는 어두운 구석에서 홀로 설거지를 하는 풍경이 반복된다.
가족 간 대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주방을 거실 가까이, 가족 생활의 중심으로 끌어당겨라. 싱크대를 거실 쪽으로 향하게 하거나 아늑한 바를 설치해 가족들이 요리하는 사람 곁에 자연스레 머물게 하는 것이다. 퇴근한 남편이 걸터앉아 아내와 하루를 나누는 곳, 아이들이 엄마 옆에서 간식을 먹으며 숙제하는 곳이 주방이 될 때 집안 전체의 공기가 달라진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가족의 일상적 축제가 되어야 한다.
형광등을 걷어내고 ‘빛의 층위’를 설계하라: 공간은 빛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사무실이나 병원에나 어울릴 법한 차가운 형광등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려 애쓴다. 천장 중앙에서 쏟아지는 단일한 백색광은 생체 리듬을 방해하고 사람의 표정을 경직되게 만든다.
형광등을 버리고 조명을 다층적으로 구성해 보자. 차가운 주광색이나 주백색보다는 은은한 전구색(색온도 3000K 이하)의 간접 조명이 훨씬 효과적이다. 천장 조명 하나에 의존하지 않고 스탠드나 벽등으로 빛의 레이어를 겹겹이 쌓으면, 집은 한결 우아하고 깊이 있는 공간으로 변신한다.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 가족의 표정은 부드러워지고, 마음은 비로소 깊은 이완에 이른다.
발코니에 목숨 걸어라: 폐쇄된 공간에서 탈출하는 숨구멍
우리는 실내 면적을 조금 넓혀준다는 유혹에 당연한 듯 ‘발코니 확장’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는 마당 없는 아파트에서 하늘과 바람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반외부 공간을 스스로 없애버리는 일이다.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맥주 한 잔을 기울이고, 흙을 만지며 초록 식물을 가꾸는 시간은 좁은 거실 몇 평보다 훨씬 큰 정서적 풍요를 안겨준다. 건설사의 논리에 따라 지어진 아파트는 앞 동과의 시선 문제 때문에 발코니를 커튼으로 가리게 만들지만, 이를 건축적으로 해결하면 전혀 다른 공간이 탄생한다. 덧창 등을 활용해 발코니를 안락한 테라스로 유지하라. 외부 시선은 차단하면서도 바람과 빛이 통하는 이 마법 같은 공간은, 답답한 아파트 생활 속에서 진정으로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 되어준다.
물론 이 제안들을 모두 실행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어떤 것은 가구 배치만으로 가능하지만, 어떤 것은 전문가와 함께 전체 평면을 재구성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심만 한다면 이 중 하나 이상은 오늘이라도 시도해볼 수 있다.
집은 투자의 대상이기 이전에, 오늘을 사는 우리 가족이 가장 행복해야 할 공간이다. 지금 누리는 행복이 미래의 집값에 못지않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이제라도 가족만의 ‘진짜 집’을 가꾸어보길 권한다. 수십 년간의 경험으로 단언컨대, 공간이 바뀌면 비로소 삶이 바뀐다.
임우진 | 건축가. 이론보다 현장을, 현상보다 그 원인을, 그리고 건물 그 자체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더 깊이 들여다보며 공간과 도시를 만들어왔다. 25년간 파리에서 활동 중이며, 여러 나라에 살면서 체화한 통문화적 시선으로 비판보다는 영감에, 우월함보다는 다양성의 가치에 더 관심이 많다. 이런 관심의 일부를 저서 ‘보이지 않는 도시’에 담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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