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을 읽지 못하고 오만했다.”
6·3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여야 모두 민심을 외면하다 시민들의 강한 경고 앞에 섰다는 자성적 평가가 나왔다. ‘내란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정치가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 승리를 손에 쥐지 못했고, 국민의힘은 자기 쇄신 대신 여당에 대한 견제 심리에 올라타 겨우 궤멸적 패배를 모면했다는 것이다.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6·3 지방선거가 남긴 한국 사회의 균열과 질문’ 주제로 열린 ‘지방선거 평가 긴급 심포지엄’(주최 한겨레신문·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토론자로 나서 “민주당이 무비전, 무전략, 무데뽀 선거를 치렀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에 기대 정당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전국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15 대 1로 민주당이 이길 거라고 자신하고 시작하는 선거는 처음 봤다. 긴장감이나 전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본선 경쟁력보다는 강성 당원의 선호를 반영한 공천이 이뤄지면서 중도층을 끌어들이지 못했다”며 “우리 당이 행정·의회 권력을 다 갖고 있기 때문에 심기일전하지 않으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더 큰 회초리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포지엄 토론회에 함께 나온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은 선거 결과에 대해 “민심을 외면한 지도부의 폐쇄적 리더십”을 지적하며, “계엄 옹호 세력 결집과 지도부 중심의 자기 확신 매몰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평했다. 그는 선거 이후 당의 현실 자각에도 큰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지도부가 서울시장 선거 승리에 기대어 “희망의 불씨를 봤다고 민심과 동떨어지게 해석하고 있으며, (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기회 삼아) 부정선거를 선동하고 있다”며 “‘계엄, 윤석열, 당내 민주화’, 이 세 문제를 정리하지 못하면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정교한 접근이 이뤄지지 못한 게 여당에 부담이 됐다는 진단도 나왔다.
최병천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고가 아파트들이 들어선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여당이 패한 것을 두고, 부동산 가격 상승보다는 종합부동산세가 아파트 소유자들을 자극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최 위원은 종부세가 한강 주변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여당의 패배를 불러온 원인이 됐다며, “종부세가 ‘한강벨트 초토화세’가 됐다고 표현했다.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김영배 의원은 정부와 여당이 투기 억제와 조세 정의를 넘어 주거 안정 문제와 정책 예측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민심을 설득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집이 있는 사람에게도, 집 없는 사람에게도 이번 선거에서 문제 제기를 당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두 거대 정당에 쏠린 ‘정당 양극화’가 중앙·지역 정치를 휩쓸면서 유권자들의 선택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심포지엄 발제자로 나선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정당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경쟁 후보가 없는) 무투표 당선자는 늘어나고 있다”며 “민주주의 뿌리가 마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도의회(2.05 대 1)와 시·군·구의회(1.66 대 1)에 출마한 후보들의 전국 평균 경쟁률이 ‘1.5~2 대 1’에 그쳤고, 시·군·구의회 무투표 당선도 8년 전 30명에서 311명으로 10배 남짓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권자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1개도 안 되는 구조에서, 지방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없다”며, 동네(지역)에서 활동하는 지방 정당 결성, 정당 간 연합을 제도화하는 결선투표제 도입 등의 보완책을 강조했다.
토론에 나선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도 “거대 정당들이 얻은 지방의회 비례대표 지지율과 득표율에 비해 실제 차지한 의석 점유율이 과도하게 부풀려지는 게 문제”라며 “소수 정당을 지지한 표들은 사표가 되어 민심의 왜곡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젊은 남성 세대가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고 규정하는 성급한 일반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2030세대가 최근 몇 년간 보인 정치사회적 태도는 매우 유동적이고 요동치고 있다”며 “정당들은 이 세대를 임의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불만과 요구를 포착하고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는 젊은 세대들의 정치 참여를 높이는 활동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토론회를 진행한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은 지방선거를 거치며 나타난 민심에 대해 “(내란 사태 때 나온) 광장의 목소리가 제도와 정치 언어로 전환되기는커녕 제도 앞에서 소진되면서 상실감이 커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김부겸 후보의 도전’을 언급하며 “상대를 두들기고 배제하고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김 후보처럼 설득하고 보듬으려는 노력이 (정치에서 필요한)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호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dmzsong@hani.co.kr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