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야 할 길은 굽어 있고, 그 길로 이끄는 빛은 눈이 부시네…어쩌면 넌 날 구원해 줄 사람일지도 몰라.”
지난 18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 경기장에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의 ‘원더월’이 울려 퍼졌다. 잉글랜드가 2026 북중미 월드컵 L조 1차전에서 크로아티아에 승리(4-2)한 뒤 나온 자축의 노래였다. 경기장 스피커에서 ‘원더월’이 흘러나오자 관중들은 떼창했고,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이를 지켜보며 따라 부르기도 했다. 해리 케인은 감격에 겨운 듯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고, 데클란 라이스와 존 스톤스는 관중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 모습은 유튜브 등으로 전 세계에 퍼지며 ‘냉정한 스포츠에 낭만은 살아있다’는 호평을 자아냈다. 케인은 경기 뒤 믹스드존에서 취재진과 만나 “팬들과 선수단이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이런 연결감은 월드컵에서 특별한 경험이며, 최고의 순간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매 경기 결과에 따라 팬들의 찬사와 야유가 순식간에 뒤바뀌고 있는 북중미에서 ‘낭만 치사량 100%’ 광경이 감동을 주고 있다.
포르투갈 대표팀은 지난 18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경기장에서 열린 콩고민주공화국과 K조 1차전에서 11명이 아닌 12명이 뛰었다. 선수단이 지난해 7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디오구 조타를 추모하는 팔찌를 차고 경기에 나선 것이다. 이는 루이스 몬테네그루 포르투갈 총리가 대표팀에 선물한 것으로, 선수단 전원과 조타의 이름이 새겨졌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부상 위험 등을 이유로 월드컵에서 장신구 착용을 금지한다. 포르투갈은 조타와 함께 뛰려고 이 팔찌를 피파 규정에 맞춰 특별 제작했다. 그만큼 조타는 그들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A매치 49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넣은 포르투갈 대표 공격수라는 기록 외에도,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는 데 큰 역할을 한 따뜻한 선수였다고 한다. 경기 전에는 포르투갈 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경기장 대형 화면에 조타 사진이 등장하기도 했다. 영국 더 선은 “이를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조타의 부모가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월드컵의 낭만은 국적, 경쟁을 허물고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힘도 발휘한다. 지난 17일 미국 매사추세츠 폭스버러의 보스턴 경기장에서 열린 이라크와 I조 1차전에서 노르웨이 관중들은 한 몸이 된 듯 일제히 노를 저었다. 북소리가 울리자 붉은색 유니폼으로 무장한 수천 명이 “루르” 하고 외치며 양손을 앞뒤로 반복해 휘둘렀다. 이는 노르웨이 조상인 바이킹의 노 젓기를 따라 만든 북유럽 스포츠의 응원 문화로, ‘바이킹 로우’라고 불린다.
28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노르웨이 팬들이 단결해 웅장한 장면을 연출하자, 관련 영상에는 전 세계 수많은 팬들이 가슴 벅차다는 감상을 남겼다. 같은 날 노르웨이 의회에서도 의원들이 의사봉 두드리는 소리에 맞춰 “루르”를 외치며 노 젓기 응원을 선보였다.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는 특정 노래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왼쪽과 오른쪽으로 반복해 움직이는 응원으로 눈길을 끌었다.
미국의 이란 제재 등으로 여느 때보다 혼란을 겪은 북중미 월드컵. 축구가 국가와 문화를 하나로 잇는다는 ‘낭만’은 다행히 사라지지 않았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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