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Korea가 만드는 글로벌 미래] 1-③ HD현대일렉트릭 美 앨라배마 공장 르포
반도체·방산·조선·배터리·변압기까지, 한국 제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특정 분야에 치우친 것과 달리, 한국은 첨단 기술을 중심의 '풀 스펙트럼' 포트폴리오로 공급망 재편기에 다양한 산업의 핵심축으로 떠올랐다. 다만 중국의 추격과 대외 불확실성이라는 변수 앞에서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세상을 움직이는 축으로 부상한 한국 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등을 짚어본다.
육중한 철로 만들어진 정글.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자리한 HD현대일렉트릭 북미 생산법인(HD HPT)을 방문했을 때 받은 인상이다. 공장 밖에는 변압기 완성품 70대가 열을 맞춰 도열해있었다. 그 앞에는 변압기 100대 분량의 자재가 깔려있었다. 공장 내부에 완성품과 자재를 배치해둘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변압기 주문이 쇄도하고 있는 상황이 이런 장관을 만들어냈다.
HD HPT를 찾은 고객사들도 이 모습을 보면 입을 못 다물 정도라고 한다. "저 변압기들을 지금 우리가 가져가면 안 되나"라고 농담을 섞어 말하기도 한다. 한국 제조업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기도, 그만큼 미국 내 변압기 확보전이 치열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강진호 HD HPT 법인장은 "그만큼 시장에서 변압기가 귀한 몸이 된 것"이라며 "2029년 물량까지 계약서에 사인이 다 돼 있는데, 2030년 이후 물량 주문도 들어오고 있어서 쉴틈이 없다"고 말했다.
HD HPT 공장이 바빠진 것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의 확대, 기업 리쇼어링 등의 영향이 크다. 여기에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조금씩 반영되기 시작했고, 내년 이후부터는 이 부분 물량이 본격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제 공장에서도 AI 데이터센터향 변압기의 제작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량의 전력이 필요한 AI 데이터센터 특성상 전방 발전 인프라의 확장이 불가피한데, 이는 HD현대일렉트릭과 같은 변압기 기업들에게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이 이곳 몽고메리에 13만2800㎡(약 4만200평)에 달하는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전력변압기 생산시설을 2011년 구축해둔 게 신의 한 수가 되고 있다. HD HPT는 연간 최대 105대의 변압기를 만들 수 있는데, 여기에 약 2억 달러를 투자해 2공장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공사가 완료되면 변압기 생산능력이 연 150대 수준까지 확대되고 최근 수요가 늘고 있는 765kV(킬로볼트) 제품의 제작 및 시험이 가능해진다. 증설 작업은 내년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현장에서는 중장비들이 흙을 퍼나르고 바닥을 다지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공장 안은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경쟁사보다 빠른 납기를 중요시했던 고(故) 정주영 창업주의 후예들이 미국에도 뿌리를 내린 모습이었다. 작업장에는 원통 모양의 수직권선기 여러개가 깔려있었는데, 이 권선기가 돌아가는 타이밍에 맞춰 동선을 감는 작업에 직원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얇은 강판 수천개를 겹쳐쌓는 작업, 건조 및 조립 작업도 동시에 진행된다. 완성품을 시험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변압기의 경우 번개를 맞을 수도 있기에, 이와 유사한 전기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시험 등의 과정을 거친다.
미국 내 노후 전력망 교체에 따른 변압기 수요분이 2030년쯤부터 본격 소화될 것으로 예측되는 것을 고려한다면 사업 기회는 더욱 커진다. 강 법인장은 "지금과 같은 사이클이 당분간 쭉 이어질 것"이라고, 강성수 HD현대일렉트릭 애틀랜타법인장은 "변압기 시장의 경우 '슈퍼사이클'의 단계를 넘어 '게임의 룰'이 바뀐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열매는 분명하다. HD HPT의 매출액은 2017년 1억100만 달러에서 2025년 3억7400만 달러로 3배 이상 늘었다. 고용 인원 역시 같은 기간 300여명에서 460여명으로 증가했다. HD HPT는 제2공장이 완공되면 약 200명을 추가 채용할 예정이다. 변압기 제조에서는 숙련 인력 확보 및 유지가 변압기 생산역량과도 직결되어 있는 만큼 변압기 생산량 증대를 위해 직원 채용 및 교육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5년간 미국 현지에서 변압기를 생산해 공급해온 트랙레코드는 HD HPT가 가진 독보적인 강점이다. HD현대일렉트릭이 지난 15년간 미국 시장에 공급한 전력변압기는 1000대에 육박한다. 4인 가구 기준 약 4000만 가구의 연간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업계 최고 수준의 품질과 납기 준수율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다.
공장 내부까지 철로를 연결해 300톤급 대형 변압기도 즉시 철도 운송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점 등도 차별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를 통해 운송 기간을 1주 이상 단축하며 고객이 요구하는 납기에 맞춘 적기 공급 체계를 갖췄다. 타사와 달리 제관공장을 갖춰 자체적으로 초대형 변압기의 외함을 만들 수 있다는 강점 역시 있다. 실제 이 제관공장에는 조선과 유틸리티 사업 모두를 영위하는 HD현대그룹의 최대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35년 경력의 용접 인력 등이 상주하고 있었다.
강진호 법인장은 "한국산 변압기의 경우 고객 대응 등에서 유연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시장에서 받고 있다"며 "경쟁 기업들의 경우 고객의 요구에 맞추기 보다 자신들의 표준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고객의 운영 편의성을 최우선에 두고 고객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는 방식으로 고객 만족을 실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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