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터처블' 선관위는 끝…감시·감독·검증의 시간](하)
6·3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신뢰를 뿌리부터 흔들었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보장돼야 하지만, 인사·예산·장비·투표관리 등 운영 영역까지 감시·감독·검증에서 벗어나 있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머니투데이 더300이 선관위 개혁 논의의 쟁점과 과제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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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년 비상근·겸직 관례...선관위원장 '상근화' 논의 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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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이 법률적인 판단을 할 수는 있지만 행정사무를 처리하는 전문가는 아니다. 그간 '중립성'에만 선관위 업무의 초점을 맞춘 게 문제다."
10일 판사 출신 한 변호사가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거버넌스'(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하면서 한 말이다. 중앙선관위원장은 1963년 창설 이래 줄곧 현직 대법관이 비상근으로 겸직하는 게 관례였다. 나머지 8명의 중앙선관위원도 상임위원 1명을 제외하면 비상근으로 법조인 출신이 많다. 선거 관리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법조 출신 비상근·겸직 구조가 이어져 온 것이다.
문제는 판사들이 투표용지 인쇄와 투표소 인력 배치 등 현장 운영 전문가는 아니라는 점이다. 선거법 위반 여부 등에 대한 판단 과정에선 판사 출신 선관위원장과 선관위원들의 전문성이 발휘되지만 나머지 행정업무는 선관위 사무총장 등 행정 담당자들이 맡는다. 비상근·겸직 구조에선 조직 장악력이 떨어지고 내부 통제·관리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원인을 선관위 지배구조와 조직 관리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정치권에서도 선관위원장 상근화 논의가 시작됐다. 책임 소재와 조직 통제 강화로 위기대응 능력을 높이려면 선관위원장 상근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8일 이재명 대통령과 4부 요인 만남 과정에서도 선관위원장 상근화 논의가 이뤄졌다.
헌법 제114조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는 대통령 임명 3명, 국회 선출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 등 총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하도록 명시돼 있다. 대법관인 선관위원이 위원장을 맡는 것은 법 조항에 명시된 규정이 아닌 관례다. 다만 선관위법은 선관위원장의 법적 지위를 비상임으로 정하고 있다. 상임위원 1명만 상근으로 두도록 했다. 따라서 헌법 개정이 아닌 법률 개정만으로도 상근 선관위원장을 둘 수 있다.
선관위원장 상근화 법안도 이미 발의돼 있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선관위법 개정안은 선거 관리 업무 집중을 위해 법관이 각급선관위원장으로 호선돼 겸직하는 것을 막고 상임화를 추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오는 16일 선관위 업무 보고 등을 받은 뒤 공직선거법 개정 등 제도 개선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개헌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찰을 받도록 하거나 위원회 구성 자체를 바꾸려면 개헌이 필요하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처럼 위원장을 포함한 중앙선관위원 대부분이 비상임인 체제에서는 조직 관리가 느슨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중앙선관위가 지역 선관위까지 실질적으로 관리·통솔하려면 상시적으로 업무를 들여다보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상근 선관위원 도입의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중립성 확보 방안이 전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치적 중립성이 흔들릴 경우 상근직을 도입하는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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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투표 용지 미리 찍다 동났다…'현장 즉석 발급' 도입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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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는 유연한 현장 대처를 저해하는 현행법도 영향을 미쳤다. 현장에서 투표용지를 출력하는 사전투표와 달리 본투표는 선거일 이전 투표용지를 미리 인쇄해 각 투표소로 보내는 구조다. 이번처럼 본투표 참여자가 예상보다 많을 경우 준비된 투표용지가 동나면 추가 용지 즉각 투입이나 수급이 어렵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본투표에서도 일부 현장 발급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본투표와 사전투표의 투표용지 발급 방식을 다르게 설계했다. 공직선거법 제151조 제1항은 본투표용 투표용지를 각 구·시·군 선관위가 미리 작성해 선거일 전날까지 읍·면·동 선관위에 송부하도록 했다. 반면 사전투표 용지는 제158조 제3항에 따라 사전투표 관리관이 발급기를 통해 인쇄해 교부한다. 전국 어디서든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 특성상 선거인의 선거구에 맞는 투표용지를 현장에서 출력하기 위해서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본투표 사전 인쇄 방식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투표용지 최소 인쇄 비율을 상향하겠다고 밝혔으나 수요를 예측해 준비하는 현행 구조가 유지되는 한 현장 변수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투표용지를 선거인수대로 100% 준비하는 것도 부담이다. 투표용지가 남을 경우 완전한 회수와 폐기에 공을 들여야 하고 부정선거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지난 2020년 총선 당시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개표소에서 발견된 잔여 투표용지를 근거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본투표에도 현장 인쇄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선관위 공무원 노조는 지난 8일 성명에서 "투표용지가 남으면 부정선거라는 오해와 공격에 직면하고, 부족하면 행정 불신으로 이어지는 딜레마 속에서 현장의 유연한 대처가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며 "사전 인쇄 방식을 유권자 수에 맞춰 실시간 발급 시스템으로 전환하면 용지 과다·부족 논란을 원천적으로 해소하고 참정권을 보다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정 선구에서만 투표가 가능한 본투표의 경우 각 투표소에서 필요한 투표용지 종류가 확정돼 있는 만큼 현장 발급 방식의 운영 난이도가 오히려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처리 속도와 장비 장애는 고려해야 할 변수다. 사전투표는 이틀 동안 유권자가 분산되지만 본투표는 하루에 수백만 명이 몰린다. 발급기 출력 속도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출력에 이상이 생기거나 정전 등 전원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투표 진행 자체가 중단될 수도 있다. 선관위를 둘러싼 불신이 여전한 상황에서 '기계 조작'이라는 새로운 의혹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비용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전국 1만4000여개 투표소에 발급기와 예비 장비, 보안 용지, 비상 전원 장치 등을 배치하려면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원활한 투표용지 출력이 이뤄지려면 투표소당 발급기가 예비 장비를 포함해 수십 대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발급기를 투표소에 예비로 설치해 유사시로 활용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지만 투표용지 전량을 현장에서 인쇄하는 것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보궐선거나 유권자 밀집 지역, 고령층 거주 비중이 높은 지역 등에서 시범 운영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접전 지역이나 투표율 예측 오차가 컸던 지역을 대상으로 도입을 검토할 수도 있다. 안전장치 마련도 필수다. 투표 중단 사태를 막기 위해 예비 발급기와 비상 전원 장치를 의무적으로 배치하고 통신 장애 발생 시에도 작동할 수 있는 기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장비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발급기 봉인, 사전 점검 절차 법제화 등과 투표용지 인쇄·보관 과정과 동일한 감시 절차 마련 등도 뒷받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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