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이 한때 급물살을 타는 듯했지만, 핵 프로그램 제한과 제재 완화를 둘러싼 이견으로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중재국들을 인용해 미국과 이란이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 문안을 놓고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란 핵 프로그램과 제재 완화 조항을 둘러싼 표현 문제로 협상 진전이 둔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양쪽은 호르무즈해협 통행 제한을 완화하고 전투를 중단하는 한편, 이후 핵 프로그램 관련 협상을 이어가는 틀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메모리얼 데이를 맞아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란과의 합의는 위대하고 의미 있는 합의가 되거나, 아니면 합의가 없을 것”이라며 “나는 나쁜 합의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메모리얼 데이 추모 연설에서도 이란 전쟁을 언급하며 강경 기조를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작전 ‘장엄한 분노’에서 우리는 훌륭한 13명의 영혼을 잃었다”며 “이들은 세계 최대 테러지원국이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결코 핵무기를 갖지 못할 것”이라며, 이란과의 합의가 추진되더라도 핵무기 보유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또 이란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전장으로 돌아가 더 크고 강력하게 싸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쟁점은 핵 프로그램 제한과 제재 완화의 순서다. 미국은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 처리와 핵무기 개발 포기 등에 대해 선제적이고 명확한 약속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쪽에서는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재개방과 일부 제재 완화 혜택을 얻은 뒤 핵 협상을 지연시킬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핵 프로그램의 구체적 조치는 후속 협상에서 다룰 사안이라며, 먼저 제재 완화와 동결 자산 해제에 대한 구체적 보장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양쪽 모두 협상 타결 필요성은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장기화와 유가 상승, 국내 여론 부담을 안고 있다. 이란 역시 제재와 미국의 해상 통제로 경제난이 심화해 금융 숨통을 틔울 필요가 있다. 협상 기대감이 커지면서 이날 국제유가는 급락했고, 아시아와 유럽 증시도 대체로 상승세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협상을 중동 질서 재편 구상과도 연결하고 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파키스탄, 튀르키예, 이집트, 요르단 등 지역 국가들이 이란과의 평화 합의 이후 아브라함 협정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란도 합의 체결 뒤 이 협정에 참여한다면 “영광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아브라함 협정은 이스라엘과 일부 아랍국가 간 관계 정상화 합의로,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이 이미 참여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으로 이어지는 ‘되돌릴 수 없는 경로’가 마련돼야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카타르와 튀르키예 역시 가자지구, 서안지구, 레바논 문제를 둘러싼 이스라엘과의 갈등이 커진 상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종전 협상을 아브라함 협정 확대와 묶어 추진하더라도, 실제 지역 국가들의 동참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