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일과 남들 언행, 자신과 연관 짓고
사실 아닌데 상상으로 오해·확증편향
반추·불면으로 이어진다면 점검 필요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
수진씨는 30대 중반의 회사원입니다. 여느 때처럼 아침 8시에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랫집 아주머니를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그분은 수진씨를 보면 항상 반갑게 인사하며 웃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는 달리 고개를 까딱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수진씨는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내가 어제 늦게까지 거실에 있었는데 내 발소리가 층간 소음을 만들어 화가 나셨나?’ ‘아니면, 어제 새벽 화장실에서 물을 내린 소리가 들려서 짜증이 나셨나?’ 그날부터 수진씨는 거실을 다닐 때 뒤꿈치가 쿵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었고 새벽에 화장실에 가면 물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아랫집 아주머니는 그 전날 치과에서 사랑니를 뽑아 입을 벌리기가 고통스러워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뿐이었습니다.
수진씨는 오전에 팀장에게 업무 보고를 올렸습니다. 평소엔 “확인했습니다^^”라고 오던 답장이 오늘은 “확인했습니다..”로 돌아왔습니다. 수진씨에게는 마침표 두개가 신경이 쓰였습니다. ‘오늘 마침표가 유독 차갑게 느껴지네. 내가 보고한 내용이 마음에 안 드시는 걸까? 마침표 두개는 처음 보는데, 어떤 의미지? 이제 나랑 거리를 두려는 건가? 퇴사에 대한 무언의 압박인가?’ 수진씨는 마음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자신이 보낸 업무 보고를 확인해 보니 이전보다 좀 부실하게 작성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진씨는 다시 메일을 보냈습니다. “수정해서 다시 보내드릴까요?” 그런데 “괜찮습니다..”라고 답장이 왔습니다. 수진씨는 다시 마침표 두개가 보이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팀장은 급한 전화를 받느라 빨리 답장을 보내다 보니 ‘^^’ 부호 없이 마침표만 찍었을 뿐이었습니다.
수진씨는 점심 식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 팀장에게 왜 ‘^^’이 아니고 ‘..’으로 끝났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동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돼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음식점에서 다른 동료들은 모두 냉면을 시켰는데 수진씨만 비빔밥을 시켰습니다. 옆에 있던 대리가 “수진씨는 오늘도 비빔밥이네요?”라고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동료들도 일제히 수진씨를 바라봤습니다. ‘내가 너무 한가지만 고집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걸까? 매일 같은 것만 먹는 내가 답답해 보인다는 뜻인가?’ 수진씨는 비빔밥을 먹으면서도 밥이 목에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동료들과 다시 점심을 먹으러 와서 “저는 오늘 냉면으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대리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사실 대리는 자신이 지난주에 수진씨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수진씨는 아랫집 아주머니의 굳은 얼굴이 생각나고, 팀장 메일의 “..”도 떠오르고, 대리의 비빔밥 이야기가 생각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새벽 2시가 되어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아랫집 아주머니가 자신을 외면하던 모습이 생각나 참아 보기로 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켜고 다시 팀장의 메일을 확인하며 이전에도 마침표 두개(‘..’)로 문장이 끝난 게 있었는지 검색해 보았습니다. 수진씨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놀라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들에 사로잡혀 며칠 밤을 새우고 출근하는데 이제는 어떤 일도 하기가 싫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수진씨는 계속 마음이 너무 힘들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했습니다.
수진씨는 검사 결과 평소에 불안이 높고 걱정이 많은 편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주위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을 자신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관계사고’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관계사고(idea of reference)란 자신과 무관한 주변의 일이나 타인의 언행에 특별한 의미를 주고 자신과 연관 짓는 생각을 의미합니다. 관계사고를 가진 분들은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를 오해해서 혼자만의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분들은 다른 사람이 한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넘겨짚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별것 아닌 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면 실제 ‘팩트’와 자신의 ‘상상’을 혼동하게 됩니다. 자신의 판단이 ‘팩트’에 기인하지 않고 ‘상상’에서 나오게 되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오해하고 ‘확증편향’을 가지게 됩니다. 기존 신념, 가치관, 판단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되고 상반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인지적 편향입니다.
수진씨는 담당 주치의와 함께 ‘나의 추측은 팩트가 아니라 상상이야’, ‘대부분의 일은 나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일어나’, ‘상대가 직접 내 앞에서 말하지 않은 것은 미리 짐작하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밤에 침대에 누워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반추해 보는 습관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이나 사람의 얼굴, 메일 내용들을 생각하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각성이 되고 잠이 오지 않게 됩니다. 밤에 생각을 끊을 수 없는 경우에는 생각을 그만하려고 하면 더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럴 땐 과거에 여행하면서 보았던 풍경 등을 상상하면 다른 생각을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수진씨는 관계사고와 확증편향의 특성을 이해하고 점차 별것 아닌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을 내려놓았습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대화하고 일하는 것이 이전보다 많이 편해졌습니다. 하루의 에너지 소모도 줄어들어 퇴근 후에는 피트니스를 할 여유도 생겼습니다. 이메일이나 메신저가 와도 내용에만 신경 쓰고 ‘^^’나 ‘..’ 부호에는 신경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수진씨는 이제 자신이 좋아하던 악기도 배워 보기로 했습니다.
개인별로 자세한 것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진료, 상담을 하면서 파악해야 합니다. 기사만 읽고 자신 자신을 진단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기사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모두 가명을 쓴 것임을 밝힙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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