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장을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가장 편안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가족이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할 수 있는 최선의 장소는 어디일까요? 그곳은 병원이 아닌 집이에요. ‘환자’가 아닌 ‘나’로 살 수 있는 공간이죠.”
나이토 이즈미(70)는 말기 암환자를 집으로 찾아가 돌보는 ‘재택 호스피스 전문의’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재택의료가 시작된 야마나시현 고후시에서 30여년간 자전거를 타고 환자들의 집을 오가며 임종을 지킨 그가 최근 재택 호스피스 이야기를 담은 책 ‘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마음의숲)를 펴냈다.
가족의 빨래를 개며 조용히 마지막을 준비한 사람, ‘가장 소중한 보물’인 아이들 곁에서 눈 감은 40대 엄마, 친구들과 술 한잔을 나누며 남은 시간을 보낸 환자. 집이라는 일상의 공간에서 마주한 죽음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그를 지난 8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나이토는 가족이 있는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환자들은 ‘평온한 작별’을 한다고 말한다. “제가 돌본 말기암 환자가 아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장면이 잊히지 않네요. 그는 ‘나는 먼저 천국에 갈게. 미안해. 하지만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어. 안녕’이라고 말했어요. ‘안녕’이라는 말은 남겨진 이들에게 주는 큰 선물이며,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이기도 합니다.”
가족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는 이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적다. 나이토는 “가족이 사랑하는 이의 임종을 맞는 자리에서 배제된 채 있다가, 갑자기 죽은 모습만 보게 된다면 두려움이 될 것입니다.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생명이 서서히 쇠약해져 가는 과정을 보고,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 남겨진 가족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한 죽음’은 “‘미소로 작별할 수 있는’ 마지막을 맞는 것”이다. 그래야 “남겨진 사람들은 그로부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나이토는 강조한다.
환자를 떠나 보내고 진행하는 의식이 있다. 나이토는 환자의 사망진단서를 ‘인생졸업증명서’라고 부르고 가족에게 그 증명서를 전달한다. “가정에서 임종을 맞이한 후, 저는 그 자리에서 사망진단서를 작성합니다. 이 서류를 그 사람답게 삶을 잘 마쳤다는 ‘인생 졸업증명서’라고 불러요.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면 죽음은 마침내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라 볼 수 있어요. 더불어 ‘집에서 죽고 싶다’는 환자의 바람을 받아들이고, 생의 마지막까지 지켜본 가족에게는 그것이 서로를 향한 ‘표창장’과도 같은 것이에요. 모두를 표창한다는 마음으로 그 서류를 가족에게 건네고 있습니다. 그걸 받는 가족은 정말 큰 자부심으로 가득 찬 얼굴이에요.”
한국보다 앞서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2005년 65살 이상 고령자 등이 치매, 뇌혈관 질환 등으로 일상생활 지원(개호)이 필요할 때 의료와 생활지원 등을 종합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개호보험법 개정을 계기로 지역 기반 통합 돌봄체계인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구축했다.
문학을 좋아했던 나이토가 의사를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생명의 철학’인 의학을 깊이 탐구하고” 싶어서였다. “의학은 인간 전체를 바라보며, 인간을 지탱하는 학문이라고 느꼈어요.” 호스피스를 알게 된 건 1986년 영국으로 건너가 7년간 연수를 하면서다. “영국에서 접한 호스피스 활동은 단순한 의료 행위가 아니라, 많은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운동이었어요. 병원 중심의 의료에서 벗어나, 생명을 자기 손으로 되찾자는 의지가 담겨 있었어요. 행복한 마지막을 맞이하도록 돕는 일은, 환자뿐 아니라 남겨진 가족을 구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에서 만난 환자가 남긴 말은 여전히 가슴에 새기고 있다. 여생이 며칠 남지 않은 한 여성 환자는 나이토에게 “먹지 못하는 환자에게 억지로 수액을 권하지 말아 주세요. 두 시간 동안 수액에 묶여 있는 것보다, 맛있는 수프 한 숟가락이 더 ‘생명의 영양’이에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로 나이토는 의미 없는 연명 치료보다 원하는 방식으로 존엄을 지키며 사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일흔이 된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좋은 의사’가 되고자 노력한다. “좋은 의사는 자신이 만나는 환자에게 항상 이웃 사랑의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진심으로 인간을 대할 수 있는 힘을 갖추고, 그것을 끊임없이 갈고 닦는 사람입니다.”
나이토는 지난 3월부터 통합돌봄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한국에 재택 돌봄에 대한 조언을 건넸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삶의 마지막 장을 보낸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관점, 병원 중심의 의료에 대한 인식이 크게 전환되는 과정입니다. 이런 변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재택 돌봄을 담당할 의료·복지팀의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재택 호스피스 케어를 하려면 의료진이 암 환자의 신체적 통증을 안전하게 완화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배워야 해요. 이런 변화 속에서 고통이 완화되고, 스스로 선택한 집에서 미소를 되찾는 사람이 늘어나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바랍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