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미의 그거 봤니?] 기리고
업순은 겉보기엔 한국 전통 무당 같지만, 그의 신당은 국적 불명의 신상과 부적들로 뒤섞여 기괴함을 자아낸다. 극 중 ‘덜미’라는 주술은 서구 흑마술과 동남아시아 샤머니즘의 혼종에 가까워 보인다. 드라마의 마지막에 이 주술은 실제로 힘을 발휘하는데, 이 장면은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익숙함 속의 낯섦’을 안겨주며, 케이-오컬트가 로컬을 넘어 글로벌한 공포 미장센을 획득했음을 증명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가 전세계 37개국에서 ‘톱 10’에 오르며 글로벌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스마트폰 앱이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전통의 케이(K)-학원 호러와 영리하게 결합한 이 작품은, 기술과 인간의 욕망이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통제 불능의 연쇄 반응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스마트폰 앱과 K-학원 호러의 결합
‘기리고’의 성공 비결은 디지털 일상성과 전통의 ‘케이-학원 호러’의 자연스러운 결합에 있다. 여기에 최신 오컬트물의 성취를 유려하게 융합했다. 과거 일본 영화 ‘착신아리’가 음성 메시지를, ‘데스노트’가 사신의 노트를 매개로 삼았다면, ‘기리고’는 24시간 우리 몸에 붙어 있는 스마트폰 앱을 저주의 매개체로 소환한다. 사용자가 원해서 설치한 앱이 자아를 잠식하고 생명까지 위협한다는 설정은 흡사 영혼을 대가로 욕망을 채우는 ‘파우스트의 거래’를 연상시킨다.
한국 학원 호러는 늘 시대의 아픔을 투영해왔다. 1990년대 후반 ‘여고괴담’ 시리즈가 권위주의적인 학교 시스템과 소외를 고발했다면, 2000년대 ‘고사: 피의 중간고사’는 성적 등수대로 죽음이 결정되는 잔혹한 성적 지상주의를 스릴러화 했다. 최근 좀비물인 ‘지금 우리 학교는’은 어른들이 부재한 재난 상황에서의 각자도생을 은유했다. ‘기리고’ 역시 그 계보를 잇되, 한층 더 정교해진 논리를 구사한다. ‘기리고’에서는 비밀, 질투 등으로 인해 소원 빌기가 곧 죽음의 저주가 되는 어긋난 관계를 조명한다.
‘기리고’ 앱이 특히 섬뜩한 점은 사용자를 흉내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가짜 전화와 문자를 보내는 ‘스매싱’ 기능과 타인이 소원을 빌면 죽음의 타이머가 멈추는 기능이다. 스매싱 기능은 이간질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는데, 이는 현실의 ‘디지털 매장’이나 ‘사이버 불링’을 재현한다. 타인이 소원을 빌어야 내 죽음의 타이머가 멈추는 설정은 ‘저주의 돌려막기’를 희구하게 만든다. 즉 타인의 희생을 발판 삼아 살고 싶은 ‘잠재적 가해자’가 되도록 한다. 나리는 장난삼아 소원을 빌었다가 진짜로 친구의 죽음을 목도한다. 그리곤 운 좋게 살아남아 죄의식에 젖어들다 점점 ‘빌런’으로 흑화한다. 그도 모든 것을 털어놓고 친구들과 연대하려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앱의 스매싱에 속아 관계의 불신에 빠지고, 비겁한 생존자로 살면서 질투에 사로잡힌다. 그 틈새를 원혼이 파고든다. 나리 캐릭터는 타인의 불행을 성공의 제물로 삼는 이기적인 생존 논리와 불신에 매몰되어 죄의식을 지우려다 도덕적 무감각에 빠진 현대인의 초상을 잘 보여준다.
‘파묘’, 일본 애니, 동남아 흑마술의 혼종
드라마는 중반부에 하영과 방울이 등장하며 전형적인 학원물에서 본격적인 오컬트물로 전환된다. 이들은 영화 ‘파묘’가 보여준 ‘힙한 엠제트(MZ) 무당’의 흐름을 이어받으면서도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깔을 구축한다. 이들은 무속을 낡은 미신이 아닌 하나의 ‘전문직’ 혹은 ‘트렌디한 기술’처럼 다룬다. 그들이 구사하는 심령술은 전통적인 굿이라기보다 영적 세계에 대한 ‘정신적 해킹’에 가깝게 묘사되어, 디지털 앱이라는 현대적 소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시각적인 측면에서 한국 전통 무속의 상징물도 사용하지만, 일본 현대 오컬트물이나 도시괴담(‘주술회전’ ‘모노노케’ 등)의 미장센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행위의 측면에서는 단순 무당이라기보다 사건을 쫓는 ‘심령탐정’(‘심령탐정 야쿠모’)에 가깝다.
‘기리고’는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테마인 ‘무엇을 믿을지 알 수 없는 선택 불능’의 상황을 차용해 공포를 극대화한다. 세아가 ‘꿈속의 꿈’ 같은 무의식 상태에서 뒤를 돌아볼지 말지 갈등하거나, 산속에서 다친 세아를 구하려는 건우에게 빨리 택시를 타고 오라는 하영의 전화를 믿을지 말지 고민할 때, 시청자들도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심연에 빠진다.
한편 업순도 독특한 분위기를 뿜는다. 겉보기엔 한국 전통 무당 같지만, 그의 신당은 국적 불명의 신상과 부적들로 뒤섞여 기괴함을 자아낸다. 타이의 ‘랑종’이나 인도네시아의 ‘산텟’(Santet)이 연상되는데, 동남아시아의 습하고 원색적인 흑마술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차용되었다. 극 중 ‘덜미’라는 주술은 ‘덜미를 잡다’에서 따온 듯하지만, 머리카락, 소지품, 피 등이 쓰이고, 즉각적인 고통과 응보, 조종에 집중하는 것은 한국의 ‘한풀이’와 다르다. 이는 서구 흑마술과 동남아시아 샤머니즘의 혼종에 가까워 보인다. 드라마의 마지막에 이 주술은 실제로 힘을 발휘하는데, 이 장면은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익숙함 속의 낯섦(Uncanny)’을 안겨주며, 케이-오컬트가 로컬을 넘어 글로벌한 공포 미장센을 획득했음을 증명한다.
여성 영웅과 기술 공포
‘기리고’는 여성 캐릭터들이 각자의 재능(운동, 코딩, 주술)을 무기로 세상과 맞싸우는 장대한 여성 서사를 보여준다. 과거 할리우드 하이틴 슬래셔 무비(정체 모를 인물이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영화)에서 금발 소녀들이 가면을 쓴 살인마에게 비명을 지르며 잔혹하게 희생당하는 ‘스크림 퀸’에 머물렀던 것과 매우 다르다.
주인공 세아는 소원을 빈 사람만 볼 수 있는 원혼을 보기 위해 “남자친구 건우를 되돌려 놓으라”는 소원을 빌고 저주의 타이머를 작동시킨다. 스스로 저주를 짊어지는 영웅적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 순간 드라마는 ‘서바이벌 호러’에서 ‘희생을 통한 구원 서사’로 도약한다. 이는 저주의 돌려막기가 일상화된 무한 경쟁 사회에서, 누군가는 그 연쇄의 고리를 자신의 몸으로 끊어내야 한다는 묵직한 윤리적 선언이다. 세아의 영웅적 결단은 디지털 알고리즘이 결코 계산해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고결함을 증명해낸다. 세아가 ‘국가대표 멀리뛰기 선수’라는 설정은 매우 적합하다. 그는 시종 물리적 장애물과 무의식의 경계를 뛰어넘어 문제의 근본을 타격하는 해결사로 돌진한다.
권시원도 주목할 만하다. 권시원은 알코올 중독 홀어머니 무당과 가난이라는 운명을 거부하고, ‘코딩 천재’로서 자신의 재능을 불태운다. 그가 만든 초기 앱은 그저 조악한 프로그램에 불과했다. 그런데 친구인 도혜령이 권시원과 기태에게 원한을 품고 기리고에 저주를 걸며 자살한다. 그 저주로 기태와 권시원이 죽는다. 권시원은 죽으면서 ‘기리고’에 “도혜령의 저주가 계속되길” 바란다고 저주를 남긴다. 아니, 자신의 행위로 도혜령이 죽었는데, 권시원은 반성은커녕 저주의 종결이 아니라 저주의 복제를 빌어서 앱에 새겼다고? 요컨대 도혜령의 개인적 원한이 권시원으로 인해 디지털 매체를 타고 무한 복제되어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사회적 재난으로 확장되었다. 과거 학원 호러가 입시 경쟁이나 교내 소외라는 폐쇄적 공간의 비극에 집중했던 반면, ‘기리고’는 앱을 타고 어디든 뻗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파괴적이다.
업순도 굉장한 인물이다. 그는 주정뱅이 무당처럼 보이지만, 영적 능력이 상당하다. 드라마의 중반에 업순의 신당이 무너지고 새들이 부리를 박고 죽는다. 이것은 권시원이 신당을 직접 훼손하여 영적 결계를 허문 결과로 보인다. 주체적인 악의가 전통적인 방어막을 파괴함으로써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다. 업순도 살을 맞아 피를 쏟는다. 그 와중에도 딸을 보호하기 위해 “내 딸은 아무것도 모르고 한 일이다”를 되뇌며 부산하게 최후의 방비책을 세우고 부적을 쓴다. 처절한 모성인 동시에 인위적으로 촉발된 재앙을 막으려는 전통적인 가치의 마지막 저항이다. 그러나 업순이 전수한 ‘덜미’의 주술은 도혜령의 한과 결합하여 앱이라는 현대적 주문이 된다.
드라마가 말하고 있는 바는 명확하다. 개인의 뒤틀린 악의가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증폭기를 만났을 때, 설계자조차 예측하거나 회수할 수 없는 거대한 심연이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기리고’는 혼종성을 바탕으로 케이-콘텐츠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장르적 진화의 방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인공지능(AI) 시대를 앞두고 인류가 현재 사용하는 기술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는 당면한 불안을 호러로 치환하여 공유한다. 드라마가 던지는 교훈은 정직하다. 극한의 생존 게임의 장에서 공동체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저주’나 ‘저주의 돌려막기’를 멈추고, 서로 믿고 소통하면서 회복의 소원을 빌어야 한다.
황진미 | 대중문화평론가. ‘씨네21’ 영화평론가로 출발하여 티브이 드라마, 예능 등을 두루 평론한다. 인권·역사·여성·장애·인구·성·계급·권력 등 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많다. 원래 전공은 의학·보건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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