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부터 계엄까지…해방의 역사, 동시대 예술로 재해석
동파이프로 관통한 요새·오간자로 엮은 둥지…치유와 연대의 공간
일본관과 경계 넘은 협업…국가관 틀 넘어선 새로운 실험
(베네치아=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내 한국관의 모습. 2026.5.6. laecorp@yna.co.kr
(베네치아=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전시장 내 한국관. 외부부터 내부까지 황동색 관이 박혀 있다. 한국관을 지키는 거대한 요새이자 막힌 혈을 뚫어주는 침과 같은 모습이다.
6일(현지시간) 개막한 제61회 베네치아(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는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라는 제목 아래 한국관 건물을 해방공간으로 제시하고, 이를 요새와 둥지로 구성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최빛나 예술감독은 "부당한 권력과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이라며 "일제강점기부터 독재와 계엄 정국을 이겨낸 역사적 해방을 기념하고, 새로운 주권 개념의 실천을 만들기 위한 현재진행형의 운동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베네치아=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최고은 작가가 6일 제61회 베네치아(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6.5.6. laecorp@yna.co.kr
한국관은 작가 최고은과 노혜리가 각각 요새와 둥지를 콘셉트로 꾸몄다.
한국관을 요새로 꾸민 최고은의 '메르디앙'은 동파이프를 자르고 구부리며 한국관 외부와 내부를 관통하고 가로지른다.
이는 '요새'에 가까운 형상이지만 동시에 유려하고 유연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감각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베네치아=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제61회 베네치아(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설치된 최고은 작가의 작품 '메르디앙. 2026.5.6. laecorp@yna.co.kr
동양 의학에서 기의 흐름을 뜻하는 '경락'을 연상시키는 작품 제목처럼 동파이프는 혈관이자 침술의 침이기도 하다. 한국관 중앙의 원통형 구조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파이프가 건물을 꿰뚫으며 막힌 혈을 뚫고 피를 원활히 흐르게 하는 식으로 순환과 치유의 작용을 한다.
최고은은 "파이프는 몸 안에 기가 흐르는 통로의 의미"라며 "한국관의 여러 공간을 가로지르면서 마치 막혀 있는 혈을 뚫는 것 같은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베네치아=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노혜리 작가가 6일 제61회 베네치아(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6.5.6. laecorp@yna.co.kr
노혜리의 작품 '베어링'(Bearing)은 4천여 개의 오간자(얇고 빳빳하며 속이 비치는 직물)로 한국관 내부를 둥지로 꾸몄다. 둥지 안에는 애도, 기억, 전망, 생활 등 8개의 스테이션을 만들었다.
스테이션에는 농부 김후주, 작가 겸 가수 이랑, 사진작가 황예지, 예술가 크리스티앙 니얌페타 등이 '펠로우'로 참여했다. 이 가운데 '애도' 스테이션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설치 작품 '더 퓨너럴'(The Funeral·장례식)이 전시됐다.
(베네치아=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6일 제61회 베네치아(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꾸민 노혜리 작가의 작품 '베어링' 내 설치된 한강 작가의 '퓨너럴' 2026.5.6. laecorp@yna.co.kr
이 작품은 2018년 미국 카네기 인터내셔널에서 선보인 것으로, 흰 눈밭에 앙상하고 검게 탄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모습을 구현했다.
제주 4·3 사건을 애도하고 역사적 상처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나무들은 4·3 사건의 희생자를 의미한다. 한강 작가가 꿈에서 본 장면을 그대로 조각으로 재현한 것으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모티프가 됐다.
노혜리는 "연약한 오간자가 모여 든든한 둥지로 구현됐다"며 "한국관의 피부이자 세포, 보호막"이라고 말했다.
(베네치아=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제61회 베네치아(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설치된 최고은 작가의 작품 '메르디앙'이 한국관을 넘어 일본관까지 이어진 모습. 2026.5.6. laecorp@yna.co.kr
이번 한국관의 특징 중 하나는 이웃한 일본관과 긴밀히 협력한 점이다.
최고은의 파이프는 한국관과 일본관의 경계로 기능하는 수풀을 넘어 일본관까지 이어진다.
또 일본관의 아기 인형은 매일 한 차례 한국관으로 산책시킨다. 올해 일본관은 전쟁터든 테러 현장이든 어느 곳에서든 아이가 태어나고 자란다는 점에 착안해 '달 아기, 풀 아기'를 주제로 아기 인형들로 꾸며졌다.
영국 런던에서 왔다는 어라인 데피스 씨는 "분위기도 좋고 많은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들 같았다"며 "둥근 형태의 한국관의 구조도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laecor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