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인구의 약 15~20%는 어떤 형태로든 신경다양성을 가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신경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신경다양성을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닌 ‘세상을 인식하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때, 세상은 비로소 모든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자유로운 곳이 될 수 있다. ‘모든 교실은 신경다양성 교실이다’의 저자 김명희 교사를 통해 신경다양성 아이를 포용하는 방법을 알아봤다.
뇌의 차이를 바라보는 새로운 언어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란 뇌가 정보를 처리하고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의 신경학적 차이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충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발달장애), 자폐스펙트럼장애, 난독증, 난산증, 발달성 협응장애, 경계선 지능, 학습장애, 함묵증, 틱장애 등 다양한 특성을 포괄한다.
호주의 사회학자 주디 싱어(Judy Singer)가 1990년대 말 처음 제안한 이 개념은 뇌의 신경학적 차이를 결함이 아닌 다양성으로 바라보자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후 미국 교육학자 토마스 암스트롱이 저서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를 통해 교육계에 본격적으로 확산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는 대상을 바라보는 가치관과 직결된다. 결함이나 장애라는 틀로 바라볼 때와 다양성이라는 틀로 바라볼 때, 아이에게 기대하고, 요구하고, 제공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모든 교실은 신경다양성 교실이다’의 저자 김명희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다양성 스펙트럼의 어느 한 위치에 존재할 뿐이다. 다양성이라는 언어를 쓰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특성을 없애서 평균적인 모습을 보이도록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현장에서 신경다양성 아이들은 결코 드문 존재가 아니다. ADHD, 난독증, 자폐스펙트럼장애 등 신경다양성과 관련된 특성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며,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율은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김명희 교사 역시 “해마다 맡는 학급에서 공식 진단을 받은 아이들과 진단은 받지 않았지만 신경다양성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20~40% 정도 된다”라고 설명한다.
‘낮은 눈높이’ 사고방식 중요해
ADHD, 자폐성 장애, 경계선 지능, 난독증, 함묵증 등 각양각색의 특성을 가진 아이들을 한데 묶기 위해서는 포용적 통합교육이 중요하다. 김명희 교사는 포용적 통합교육의 핵심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라고 강조한다.
“신경다양성 아이들의 행동을 바꾸고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가 되었을 때는 오히려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힘을 뺐을 때,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발달 속도와 시기에 맞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았다.”
결함보다 강점에 주목하는 시선도 중요하다. 김명희 교사는 눈에 보이는 대단한 재능이 아니라, “아이가 눈을 반짝이는 때가 언제인지, 무엇을 할 때 환하게 웃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때가 언제인지” 같은 순간들에서 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신경다양성 아이들의 긍정적인 면을 보는 일은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야 하는 일”이라며 “부정성 편향을 가진 사람이 신경다양성 아이들의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에 더 빨리 반응하는 것은 본성적인 반응이다. 이러한 본성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의도하고, 연습하고, 훈련하고, 노력하면서 신경다양성 아이의 긍정적 면을 살펴봐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가정에서 양육자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교사가 진단을 권하면 낙인을 찍으려 한다고 반감을 보이는 양육자도 적지 않다. 김명희 교사는 이러한 반응을 이해하면서도 진단의 의미를 다르게 바라볼 것을 권한다. “교사들은 아이를 낙인찍으려고 진단을 권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다. 내 아이를 이해하고 나면 부모님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다. 그 시작이 바로 진단이다.”
진단 이후 양육자에게 필요한 태도와 관련해서는 일본 정신과 의사 혼다 히데오 박사의 ‘낮은 눈높이 교육’ 개념을 소개한다. 표준적인 발달에 가까워지게 하려는 이른바 ‘높은 눈높이’ 사고 방식보다는, 할 수 있는 분야를 잘 키워주고 할 수 없는 것은 무리해서 시키지 않는 보완적 접근인 ‘낮은 눈높이’ 사고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명희 교사는 “낮은 눈높이 교육이라고 해서 아이에 대한 모든 기대를 놓아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기준에 아이를 맞추려는 시도를 놓아버리고, 있는 그대로 아이가 행복하게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라고 조언한다.
신경다양성 교실 위한 학교·사회의 역할
신경다양성 아이들이 교실에서 실질적으로 배움에 참여하려면 환경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주목받는 프레임워크가 ‘보편적 학습설계’(UDL, Universal Design for Learning)다. UDL은 서로 다른 학습 요구를 가진 학생들을 위해 학습 장벽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표현·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을 설계하는 접근법이다. 자폐성 장애 학생을 위한 시각적 일과표나 진정 공간, ADHD 학생을 위한 짐볼·스탠딩 책상과 충분한 야외 활동 시간 등이 그 예다.
구체적으로는 신경다양성 아이들은 변화와 불확실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하루 일과를 예측 가능하게 해주면 좋다. 가정에서는 기상·식사·취침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UDL을 참고해 그림이나 기호를 활용한 시각적 일과표를 붙여두면 아이가 하루 흐름을 스스로 파악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지시는 짧고 구체적으로, 한번에 하나씩 전달하자. 해야 할 일이나 과제를 단계별 체크 리스트로 나눠 제시하면 아이의 실행 기능을 덜 압박할 수 있다. 구두 설명만이 아니라 칠판이나 인쇄물로 함께 제공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감각 자극에 민감한 아이를 위해서는 집이나 교실 한쪽에 조용하고 자극이 적은 ‘진정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도 좋다. 소음 차단 헤드폰, 무게감 있는 담요 등을 활용하면 아이가 스스로 감각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만히 앉아 있기 어려운 아이에게는 무조건 “얌전히 앉아 있으라”고 지시하기보다 짐볼이나 스탠딩 책상을 허용하는 등 배움과 표현의 선택지를 다양하게 열어두는 것도 방법이다.
신경다양성 아이가 같은 반에 있으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양육자들도 있다. 이에 대해 김명희 교사는 단호하게 말한다. “신경다양성 아이들이 행복한 교실은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교실이다. 가장 소외되기 쉬운 아이들도 놓치지 않는 교실은 결국 모든 아이들에게 따뜻한 배움터가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배웠고 증명했다.”
다만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다. 김명희 교사 역시 “신경다양성 교실은 결코 담임교사 혼자서 운영할 수 없다. 학교 차원의 교육철학에 대한 합의와 협력적 문화가 필수적”이라며, “학생 맞춤 통합 지원체계와 특수교육 지원 시스템이 각 학교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경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로 가는 길은 시선과 제도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아이의 행동을 고쳐야 할 문제로 바라보기보다, 아이가 세상을 인식하는 고유한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 그 시선부터 달라질 때, 교실과 가정은 비로소 모든 아이에게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다.
신경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더글라스 케네디 글 | 조안 스파르 그림 | 밝은세상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가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아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소설.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아이의 눈을 통해 ‘다르다’는 것이 ‘틀리다’가 아님을 유쾌하게 일깨워준다. 초등 고학년부터 어른까지 함께 읽기 좋다.
■‘컬러풀 브레인 프렌즈’
차예진 글 | 우주스토리
신경다양성을 가진 아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감각과 감정의 차이를 친근하게 풀어낸 어린이용 도서. 뇌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그림과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전달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어울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다.
■‘독특한 아이의 세계’
이현정 글 | 전선진 그림 | 마음책방
자폐 아이의 일상을 아이의 시선에서 생생하게 담아낸 성장 에세이. 신경다양성 아이와 함께 사는 가족, 그리고 그 아이를 곁에서 이해하고 싶은 모든 어른에게 권한다.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
토머스 암스트롱 지음 | 새로온봄
신경다양성 개념을 교육 현장에 확산시킨 교육학자 토머스 암스트롱의 대표작. ADHD·자폐스펙트럼·난독증 등 7가지 특성을 결함이 아닌 강점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신경다양성 8원칙'은 아이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출발점이 된다.
■‘우리 아이는 조금 다를 뿐입니다’
데보라 레버 지음 | 수오서재
신경다양성을 가진 아들을 키운 엄마이자 양육 활동가인 저자가 아이의 ‘다름’을 지지하는 양육법을 제안하는 책. ADHD, 자폐스펙트럼, 학습장애 등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을 위한 18가지 실천 양육법이 담겨 있다.
박은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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