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본지는 러시아 및 안보 전문가 4명과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등장한 북한 추정 인물들에 관한 인터뷰를 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독립매체 유로마이단PR(EMPR)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18일 자 촬영 영상을 게재했다. 영상은 북한인으로 추정되는 남자들이 모스크바 주요 공항인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을 빠져나와 관광버스에 탑승하는 장면을 담았다. 영상 속 인물들이 북한 억양의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점과 생김새, 옷차림 등으로 이들을 북한인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본지는 주요 인공지능(AI) 모델들의 분석에 기초해 촬영 시점을 해가 넘어가는 오후에서 저녁 사이로 추정했다. 영상이 조작됐을 확률이 희박하다는 점도 확인했다.

본지가 항공 추적 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이들은 국내선을 타고 해당 공항에 입국한 것으로 추정된다. 18일 평양 순안 국제공항과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을 오간 항공편이 없었던 데다 영상 속 인물들이 빠져나오던 건물은 로시야항공이나 아에로플로트 등 주로 국내선을 담당하는 B 터미널이었다.
18일 오후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으로 들어온 국내선 항공편은 여럿 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항공편은 오후 4시 42분 도착한 하바롭스크발 항공편 SU6288편이다. 수속을 마친 후 공항을 빠져나오는 시간을 어림잡아 볼 때 촬영 추정 시점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해당 항공편은 이날 유일하게 러시아 극동에서 수도로 들어오는 노선을 취했다. 출발지인 하바롭스크가 북한 병력과 인력이 북한 청진항이나 무수단항 등지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이나 두나이항에 도착한 후 머무는 임시 거처로 여겨진다는 점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2024년 10월 국정원은 러시아로 북한군 3000여 명이 보내졌다면서 이들이 하바롭스크 군사 시설에 집결했다고 밝힌 적 있다. 이곳에서 훈련이나 교육을 마친 후 서쪽 전선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전문가들 “김정은 방러 준비단일 수도”, “병력보단 민간 인력일 듯”본지와 함께 이번 일을 살핀 전문가들은 조금씩 다른 의견을 밝혔다. 호사카 산시로 국제방위안보센터(ICDS) 연구원은 “만약 이들이 실제 군인이자 장교라면 내달 9일 러시아 전승절 퍼레이드에 참가하거나 북한 지도자 방문을 준비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며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중국 열병식에 참석했고 러시아를 ‘군사적 형제’라고 부르는 관계를 고려하면 러시아 행사에 참석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설명했다. 또 “김 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은 내달 중순으로 보이는 미·중 정상회담과의 연관성에서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이달 초 본지와 인터뷰한 파벨 라투슈카 국가위기관리기구(NAM) 대표 역시 북러 관계를 고려해 김 위원장의 러시아 전승절 퍼레이드 참석을 예상한 바 있다. (본지 6일자 ‘[단독] 벨라루스 외교통 “북한 김정은, 내달 러시아 전승절 참석 가능성”’ 기사 참조)
반면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인 브루스 클링너 맨스필드재단 선임 연구원은 “영상을 검토한 결과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한 북한인들은 동일한 복장을 하고 있지만, 꼭 군복으로 보이진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전 사례에서 북한군이 러시아 선박이나 군용 항공기, 열차 등으로 이동한 걸 고려하면 이번 인원은 병력보다는 노동자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이달 본지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건설 인력 업체들이 북한말이 가능한 통역사와 인력관리 담당자를 구인 중이라는 보도를 한 적 있다. 당시 존 하디 민주주의수호재단(FDD) 러시아 프로그램 부국장은 “러시아는 전시로 인한 노동력 부족 이전에도 북한 노동자들을 받아들였지만, 지금의 노동력 부족이 북한 노동자를 더 매력적인 선택지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본지 13일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서 북한말 통역사 급구...이유는’ 기사 참조)
클링너 선임 연구원 역시 “유엔 제재로 금지된 상태인데도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 노동자들을 러시아에 파견해 온 전례가 있다”며 “이 과정에서 북한 당국은 노동자 임금의 최대 90%를 회수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는 러시아로부터 지급되는 군 관련 대가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는 분석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민간 인력에 무게를 뒀다. 라몬 파체코 파르도 킹스칼리지런던 국제관계학 교수 겸 브뤼셀자유대학 안보외교전략센터(CSDS) 한국 석좌는 “내 직감으로는 모스크바 공항에서 목격된 북한인들은 군인보다 민간인일 가능성이 크다”며 “그간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을 투입할 때는 다른 경로와 이동 수단을 썼다는 점이 위성사진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궁극적으로 이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저렴한 노동력으로 활용되기 위한 것인지 현실적으로 단정하긴 어렵다”며 여지를 남겼다.
발레리 아키멘코 분쟁연구센터(CSRC) 러시아 군사 전문가는 “러시아는 북한과 관계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편”이라며 “러시아 매체에서 해당 도착 사례를 보도한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만약 전승절 같은 과시용 프로젝트였다면 보도가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물론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단정하긴 이르다”고 덧붙였다. 참전 병력 가능성에 대해선 “의미 있게 참전하려면 상당한 규모여야 한다. 비행기 한 대 분량보다 훨씬 더 많은 수준이 됐을 것”이라며 희박하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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