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 가수
지난주 라디오 ‘여성시대’에선 국립중앙박물관 미래전략담당관을 모셔서 나눈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세상에 가짜가 많을수록 진짜의 자리로서의 소중함을 알자. 진짜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이니까…. 대체 그럼 어떻게 진품명품을 알아볼 수 있을까? 안목이 자랄 때까지 책도 많이 읽고, 좋은 선생님께 가르침도 얻고, 계속 숱한 진품을 보다 보면 눈도 좋아진다. 오래된 물건을 대하며 이 물건이 있던 그 예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탐정처럼 추리해보기도 하고 기억의 전달자로서의 이야기꾼의 역할도 생각하고 늘 기본을 탄탄히 다지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일도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선 주변 정리를 잘할 것과 동선 파악을 미리미리 해두는 것도 중요하다. 수장고 안은 물론이거니와 언제 어디서든 동료를 놀라게 하는 일은 금해야 한다. 유지되는 공기를, 그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보물이 출장 나갈 때는 호송관으로서의 무진동 차량 확인과 상대국 세관 통관에서 우리와 다른 여러 상황과 더불어 숙지해야 할 일도 많다.’
사유의 방, 달항아리 방, 많은 이들이 이 방에서 유독 마음의 평안을 얻는단다. 휴가조차도 궁금한 기획 전시를 찾아 박물관에 간다면서, 새로 뜨는 여러 유행엔 느릴지 몰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는 건 필수로 챙긴다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공간은 이제 많이 가꾸어지고 자리 잡은 야외정원이란다. 수요일과 토요일의 야간개장도 좋다고 소개했다. 박물관 굿즈 가운데 1위는 뜻밖에도 까치와 호랑이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희화화시킨 호랑이가 외국 사람에게도 재미난 설득력이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다른 나라에서 보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구경 오는 어린이들이 바닥에 철퍼덕 앉아 그림을 그리건 눕건 간에 자유로운데, 우리는 경건하고 무거운 분위기라서 아이들답게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배려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46년 전 배낭 여행할 때 만났던 캐나다 친구 맥이 스페인을 떠나면서 내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넌 더 이상 박물관에 가지 마라. 아무리 사학 전공이라도…. 거리에 앉아 살아 있는 사람들을 좀 봐. 움직이고 생동감 있는 거리를 보라고!!!” 그래도 박물관은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오면서 아쿠아 식구들 사이에도 변수가 제법 많이 생겼다. 무엇에든 열심이고 바지런한 젊은이는 경추 골절, 80대이신 재동국민학교 선배는 안구 림프종 암, 세상 건강하던 분은 치아 때문에 한달 결석, 대장 내시경 하다가 탈이 생겨서 고생한 분 등등 수영복 입고 만난 세월이 깊고 사이도 돈독해서 여자들끼리 서로 챙겨준다. 나이대도 어슷비슷하니 아팠던 얘기들 나눔으로써 위로가 되는 듯싶다. “치료받는 동안 답답하고 힘들어도 조금 더 고생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 목소리가 까랑까랑하니 안심이야. 앓는 동안 통 먹지 못했더니 악순환이 반복되더라고. 잘들 드시고 면역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자.” 당분간 못 뵌다고 인사를 나누니까, “우리 다 함께 희은씨 응원합시다”하며 다들 파이팅을 외쳐주셨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후배는 “언니, 내가 안아줄게” 하며 기운도 좋게 꽈악 안아주었다. 따뜻한 응원이었다. 한달 뒤 보자고 인사했지만 수술 전에도 잘 먹어야 한다며 다섯분이 다시 모여서 동충하초 추어탕까지 사주셨다. 남부럽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남이 부러워할 정도였다. “아이고, 가여워라. 남들은 평생 한번 겪기도 힘든 걸 세번씩이나 겪냐?” 등을 토닥여준다.
이 긴 이야기의 끝은 지난 목요일 입원, 금요일 수술, 토요일 퇴원의 과정을 거친 나의 유방암 수술이다. 국립암센터 병실에서 원고를 시작해 집에 와 마감 중이다. 일찍 발견해서 림프까지는 건드리지 않고 항암도 안 한다니 다행이다. 국립암센터와 우리 집은 3분 거리지만 공간이 주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이런저런 검사로 2월, 3월이 바빴다. 수술 후에도 열과 통증이 없어서 사흘간 방콕, 집콕으로 뒹굴거렸다. 그런 시간이 주어져서 고마웠다. 동생 둘이 매일 오가고, 조카들도 얼굴 보고는 휙 사라졌다. 사이사이 시간에 ‘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1편과 2편을 잘 보았고 엄마 생각도 많이 했었다. 소노 아야코가 쓴 ‘여기저기 안 아픈 데 없지만 죽는 건 아냐’와 푸바오 할부지 주키퍼 강철원님이 쓴 ‘매일 아침 나는 텃밭에 간다’ 두권을 읽었다. 금방 여름이 되겠지. 떠들고 웃고 맛보고 구경하고 바람 쐬고…, 여행도 또 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