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논설위원
“고문은 피의자가 범죄를 자백하게 하거나, 모순되는 진술을 해명하게 할 때 사용한다. 공범을 찾아내거나, 피의자의 여죄를 밝히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18세기 이탈리아 밀라노의 청년 귀족 체사레 베카리아는 당시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유럽의 형사사법제도를 비판하는 책 ‘범죄와 형벌’(1764)에서 고문의 목적을 이렇게 분석했다. 이 시대 유럽은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잔혹한 고문이 합법적인 수단으로 통용됐다. 거의 모든 국가가 피의자에게 생사를 넘나드는 육체적 고통을 가해 자백을 받아내고 유죄 판결한 뒤 잔인하게 처형했다. 명분은 범죄의 진상을 밝히겠다는 것이었지만, 베카리아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했다. “고통에 대한 인상이 고문을 당하는 사람의 정신을 완전히 사로잡는 지점에 이르면, 고통받는 사람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가까운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베카리아는 고문이 잔인할 뿐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무의미하다고 했다. 체력과 인내심이 강한 범죄자는 고통을 견뎌 무죄 판결을 받고, 그러지 못한 무고한 사람은 고통을 못 견디고 허위 자백하게 된다. 고문은 “진실이 아니라 체력을 측정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 이것을 증거로 쓰는 것은 이성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베카리아의 주장은 볼테르를 비롯한 계몽 사상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독일 프리드리히 대왕 같은 계몽 군주들이 그의 영향을 받아 형사법 개혁에 나섰다. 신생 국가 미국의 헌법과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형법전 등 근대 형사사법제도의 모태가 됐다. 문명국가들은 베카리아의 사상을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그 하이라이트가 1984년 유엔 고문방지협약이다. 이 협약은 고문을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단순한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수면 박탈, 감각 차단, 심리적 압박도 금지한다. 우리나라는 1995년에 이 조약에 가입했고, 검찰도 2019년부터 “어떤 경우에도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인권보호수사규칙을 시행하고 있다.
국회에서 진행 중인 ‘윤석열 검찰 조작기소’ 국정조사는 형사사법제도가 발전해온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아무리 흉악한 범인이라도 고문하지 말라는 것은 18세기 계몽주의가 낳은 형사법의 대원칙이다. 강압에 의한 자백은 진실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의 검찰은 이런 원칙은 안중에도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사의 목적을 달성하면 된다는 듯한 태도였다. 2022년 대장동 사건 2차 수사팀은 당시 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공범으로 엮으려고 이미 구속된 남욱을 서울중앙지검 구치감에 2박3일 동안 감금한 채 조사했다. 체포영장의 구속기간인 48시간 안에는 피의자를 제멋대로 다뤄도 괜찮다는 식이었다. 정일권 부장검사는 남욱에게 애들 사진을 보여주고 “배를 갈라 장기를 꺼낼 수도, 환부만 도려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날 50여개의 구치감 방에서 밤을 지새운 피의자는 남욱밖에 없었다. 남욱은 2022년 11월21일 구속기한 만료로 풀려난 당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유동규를 통해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진상·김용에게 3억원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그는 지난해 9월 같은 법정에서 이 진술을 뒤집었다. 검사들의 압박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했다는 취지였다.
지난 14일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윤석열 사단’ 검사들은 오히려 당당했다.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이원석은 “이번 국정조사야말로 보복·표적·기획·편파·강압 수사”라고 했다. 송경호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남욱 변호사가 과거에 남긴 객관적 동선과 자발적 육성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남아 있다”고 했다. 수면이 불가능한 구치감 감금과 협박성 발언, 그리고 애들 사진까지 보여준 뒤 받아낸 진술은 결코 “자발적”인 게 아니다. 가혹행위가 위험한 이유는 강압적 상황에서 나온 진술이 진실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검찰이 뭘 잘못했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베카리아는 고문이 무고한 시민을 처벌하는 결과를 낳는데도 “이를 바꾸려 하지 않고 올바른 결론을 내리는 것을 등한시해왔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 문명국가들은 그의 조언을 충실히 따랐다. 우리는 2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올바른 결론”을 두고 갑론을박한다. 윤석열 검찰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은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