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확산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커지고 있는데, 국내 연구진이 단 하나의 ‘유전자 가위’로 여러 바이러스와 변이를 한꺼번에 구별할 수 있는 진단 기술을 내놨다.
26일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은 “손성민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연구진이 미국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글래드스톤연구소 연구진과 손잡고, 유전자 가위의 반응 속도를 활용해 여러 바이러스와 변이를 동시에 구별할 수 있는 새로운 리보핵산(RNA) 진단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 내용을 담은 논문은 지난달 31일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에 게재됐다.
유전자 가위는 박테리아가 바이러스 침입에 대응하는 면역 체계에서 유래한 기술로, 잘라내거나 변화를 일으키는 등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는 도구다. 이중 RNA를 표적으로 하는 유전자 가위 Cas13은 바이러스 등을 진단하고 관련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데 쓰인다. ‘가이드 RNA’가 ‘표적 RNA’와 결합하면 주변 RNA를 자르면서 형광 신호를 발생시키는 원리를 활용한다. 다만 여러 바이러스를 동시에 검출하려면 서로 다른 유전자 가위나 다양한 색의 형광 물질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등 실제 현장 적용이 쉽지 않았다.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가 목표물과 결합할 때 바이러스의 종류에 따라 ‘가위질’의 속도가 제각각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어떤 가이드 RNA가 어떤 표적 RNA와 결합하느냐에 따라 고유한 반응 속도 패턴이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진은 반응 속도를 일종의 신호 패턴으로 읽어낼 수 있는 ‘키네틱 바코딩’ 기술을 개발하고, 가이드 RNA를 일부 조절하면 효소 반응 속도를 인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 단 하나의 유전자 가위만으로도 여러 바이러스와 변이를 동시에 구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연구진은 “다양한 호흡기 바이러스와 SARS-Cov-2(코로나19) 변이를 실제 임상 샘플에서도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연구진은 검사 과정도 크게 단순화했다. 기존에는 RNA 바이러스를 검출하기 위해 DNA로 변환하는 ‘역전사’ 과정이 필요했는데, 역전사 없이 RNA 바이러스를 직접 검출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