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앞두고 하위법령을 둘러싼 이해관계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제도 도입은 확정됐지만 시장 규모와 사업 모델을 좌우할 초진과 처방 기준 등 세부 내용을 두고 정부와 산업계 간 입장 차가 뚜렷한 상황이다.
20일 헬스케어 업계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올해 12월 시행 예정인 의료법 개정안에 맞춰 비대면진료 하위법령(시행령·고시) 마련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논의 방향은 비대면진료를 대면진료의 보완 수단으로 한정하고 재진 환자 중심으로 운영하는 보수적 모델에 가깝다.
핵심 쟁점은 초진과 처방 기준이다. 정부는 동일 의료기관에서 대면진료 이력이 있는 재진 환자 위주로 비대면진료를 허용하고 초진은 도서·벽지 등 의료취약지나 거동 불편 환자 등 예외적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실상 초진 비대면진료는 최소화하는 구조다.
처방 기준도 보수적으로 설계되고 있다. 특히 초진 환자에 대해 처방일수를 최대 7일로 제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의약품 측면에서는 마약류 등 오남용 우려 품목을 중심으로 비대면 처방을 금지하고, 탈모치료제 등 일부 비급여 의약품에 대해서도 제한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플랫폼 규제 역시 강화되는 흐름이다. 정부는 비대면진료 중개 플랫폼에 대해 신고·관리제를 도입하고 환자와 의료기관을 연결하는 중개 역할로 기능을 제한할 방침이다. 특정 의료기관 유도나 의료행위 개입은 금지되며 전자처방전 전달 시스템 등 공적 인프라 구축을 통해 민간 플랫폼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 같은 규제 방향에 대해 산업계는 시장 위축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20일 논평을 통해 “초진 처방 7일 제한과 비급여 의약품 규제가 동시에 적용될 경우 이용 환자의 상당수가 비대면진료에서 이탈할 수 있다”며 “현장 수요와 데이터에 기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개 플랫폼이 정책 설계 과정에서 배제될 경우 실제 이용 환경과 괴리된 규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계는 만성질환과 피부·탈모 등 반복 관리가 필요한 환자군의 경우 장기 처방이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일률적인 처방일수 제한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비급여 의약품 제한 역시 플랫폼 기반 비대면진료의 주요 이용 영역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이번 하위법령이 비대면진료 산업의 방향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규제 수위에 따라 플랫폼 중심 시장 확대 여부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플랫폼업계 관계자는 “현재 논의 방향이 유지될 경우 시장 성장 속도 둔화가 불가피하다”며 “하위법령이 사실상 비대면진료 산업의 ‘게임의 룰’을 결정짓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해 하위법령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복지부가 의료 안전성에 방점을 두고 있는 반면 산업계는 접근성과 산업 경쟁력을 강조하고 있어 최종 규제 수준에 따라 시장 규모와 구조가 크게 달라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