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목되는 미국 주식시장]
강세론자에게 지금 증시가 버블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근거를 물어보면 반드시 나오는 대답이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다. 선행 PER은 향후 예상 주당순이익(EPS)을 기준으로 계산한 주가 밸류에이션이다.
실제로 미국 주식시장은 올들어 가파르게 올랐지만 펀더멘털 애널리스트들이 증시의 고평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선행 PER은 오히려 올해 초는 물론 1년 전보다도 낮아졌다. 주가보다 기업들의 EPS 전망치가 더 빠르게 상향 조정됐기 때문이다.
![]()
다우존스 마켓 데이터와 팩트셋에 따르면 지난해 7월2일 S&P500지수의 향후 12개월 예상 EPS 기준 선행 PER은 22.4배였다. 1년이 지난 올해 7월2일 S&P500지수는 20%가량 상승했지만 선행 PER은 오히려 20.5배로 낮아졌다.
오는 14일 JP모간과 씨티그룹 등 대형 금융회사들의 실적 발표를 시작으로 2분기 어닝 시즌이 본격적으로 개막하는 가운데 2분기 S&P500 기업들의 EPS는 7분기 연속으로 두자릿수 성장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팩트셋이 집계한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치에 따르면 S&P500 기업들의 지난 2분기 EPS는 전년 동기 대비 23% 성장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낙관론자들은 이익 성장세가 주가 상승세를 앞지르고 있는데 무슨 버블이냐며 일축한다. 하지만 마켓워치는 애널리스트들의 이익 전망치 자체가 버블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CAPE 비율은 닷컴 버블 수준 육박
━
팬뮤어 리버럼의 애널리스트인 요아힘 클레멘트와 프란시스카 레이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S&P500지수의 선행 PER이 낮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역사적인 기준에서 증시 밸류에이션은 극단적으로 높아 보이는데다 기업들의 이익 성장률도 장기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경기 사이클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선행 PER 외에 다른 대표적인 밸류에이션 지표인 실러 CAPE(경기조정 주가수익) 비율을 계산한 결과 현재 S&P500지수의 CAPE 비율이 약 41배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26년 전 닷컴 버블 당시 기록했던 사상 최고 수준의 CAPE 비율에 근접한 수치다. CAPE 비율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지난 10년간의 평균 EPS로 주가를 나눠 산출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최근 S&P500 기업들의 EPS 성장률이 장기 추세를 크게 앞선다는 점을 감안해 이익 성장 속도를 장기 추세 수준으로 조정해 CAPE 비율을 계산하면 67.6배로 더 치솟아 오른다. 이는 미국 역사상 어떤 자산 버블 때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
이익 전망치 자체가 버블일 수도
━
단순한 선행 PER로는 증시에 버블 조짐을 거의 느낄 수 없는데 기업들의 EPS를 장기 평균으로 조정한 CAPE 비율에서는 현재의 주가 밸류에이션이 극단적이란 점이 드러나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클레멘트와 레이스는 현재 주식시장은 단순한 주가 버블이 아니라 "이익 버블 위에 형성된 주가 버블"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클레멘트는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FT) 기고문에서 현재와 같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기업들의 이익 성장세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며 결국 언젠가는 실적 모멘텀이 꺾이는 순간이 온다고 경고했다.
물론 앞으로도 몇 년간 기업 이익이 가파른 증가세를 계속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강력한 실적 모멘텀은 투자자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레멘트와 레이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알파벳, 아마존, 메타 플랫폼스, 오라클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의 경우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 자산 경량형 구조에서 자산 집약적 구조로 변하고 있는 만큼 향후 이익 성장률이 정상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제조업체들처럼 보유 설비가 늘어나면서 감가상각비 증가 등으로 비용이 늘어날 것이란 의미다.
게다가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자본지출 증가세가 둔화되면 반도체 등 AI 공급망에 있 기업들도 이익 성장률이 급격히 둔화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특히 반도체기업들에 대해 이익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일 수 있다고 경고하는 애널리스트들이 적지 않다.
━
이익 정점 치면 주가 30% 급락 가능성
━
BCA 리서치의 수석 전략가인 피터 베레진은 과거에도 이익 버블이 형성된 사례가 있었다며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은행들과 주택 건설업체들의 놀랄 만한 이익 성장세를 꼽았다. 당시에도 투자자들은 그리 높지 않은 PER에 주목하느라 기업들의 가파른 이익 성장세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간과했다.
베레진은 "일반적으로 이익 버블은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산업에서 좀더 흔하게 나타난다"며 "여기에는 천연자원과 항공, 해운, 그리고 현재 주식시장에서 특히 중요한 반도체가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주 올 3분기 증시 전망 보고서에서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이익 버블이 언제 정점을 찍는지 예측하는데 매우 서툴다"며 "이익 증가세가 정점을 지나면 주가는 30~50% 급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댐프트 스프링 어드바이저스의 최고경영자(CEO)인 앤디 코스탄도 지난 5월 미국의 경제 성장률이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기업 이익 전망치를 정당화할 만큼 충분히 빠르지 않다며 이익 버블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
이익 모멘텀 강할 때도 약세장 도래
━
월가의 베테랑 시장 분석가인 짐 폴슨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현재 S&P500 기업들의 EPS 모멘텀은 적어도 1990년 이후 그 어느 때와 비교해도 가장 강력한 수준"이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이익 모멘텀이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
그는 2000년 3월에도 기업들의 이익 성장세가 강했지만 그 때가 바로 닷컴 버블 정점이었고 2007년 10월에도 기업들의 실적은 매우 강력한 모멘텀을 보였지만 얼마 뒤 글로벌 금융위기로 약세장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으로 증시가 급락했던 2022년 초 역시 기업들의 실적 모멘텀은 양호했다.
폴슨은 약세장 직전까지 EPS 모멘텀이 긍정적이었던 이유에 대해 향후 12개월 EPS 전망치는 지난 12개월 EPS와 달리 투자 심리를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강세장이 막바지에 가까워지면 예상 EPS는 전형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인다"며 "아마도 이는 지속 가능한 펀더멘털을 반영하기보다 긍정적인 EPS 전망치를 통해 낙관적인 투자 심리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폴슨은 현재 S&P500 기업들의 향후 12개월 예상 EPS 컨센서스가 과거 10년간 실제 발표된 평균 EPS 대비 거의 90% 가까이 높다며 이는 최소한 1990년 이후 역사적 평균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의 예상 EPS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예상 EPS가 지속 가능한 기업 실적과 고조되는 투자자 낙관론을 어느 정도씩 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며 "단순히 예상 EPS가 여전히 강력하다는 이유만으로 안심하고 주식 매수를 계속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