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 기소에 수조원대 영업이익… 정유업계, 손실보전 입증 부담 커진다
한겨레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손실보전액을 둘러싼 정유업계와 정부의 입장차가 뚜렷해지고 있다. 업계는 싱가포르 석유제품 수출가격(MOPS·몹스)에 가까운 수준으로 보전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원가에 적정 마진을 더한 기준금액을 바탕으로 보전액을 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최근 정유 4사가 담합 등 혐의로 기소된데다, 수조원대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2분기 실적 발표까지 눈앞에 두고 있어, 정부를 얼마나 설득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국·이스라엘-이란의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와 국내 석유가격 변동성이 커지자 정부는 지난 3월13일부터 보통휘발유와 경유, 실내등유 등 석유제품 공급가격에 상한을 두는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가격 통제로 정유사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당시 정부는 사후정산 방식의 손실보전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고, 지난 1일 고시를 통해 보전 기준과 절차를 확정했다.
산업통상부가 고시한 ‘석유판매가격 최고액 지정에 따른 손실보전을 위한 재정지원 규정’을 보면, 산업부는 정유사가 최고가격 대상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데 투입한 원가에 적정 마진을 더한 기준금액이 최고가격을 얼마나 웃도는지를 따져 그 차액 범위 안에서 손실보전액을 정하기로 했다.
해당 기준엔 업계가 막판까지 요구한 몹스 기준이 반영되지 않았다. 7일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정유업계는 해당 고시의 행정예고 의견수렴 마감일인 지난달 29일 산업부에 몹스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으로 적정 마진을 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몹스는 국내 정유사가 석유제품 가격을 정할 때 주요 기준으로 삼는 지표로, 업계는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국내에서도 몹스에 가까운 가격에 제품을 팔 수 있었다고 본다. 몹스와 최고가격과의 차이만큼 손실을 인정해 달라는 뜻이다.
최종 고시가 발표됐지만, 정유사 손실보전 규모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우선 원가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가 관건이다. 고시는 원유 구입가격과 운송비, 보험료, 인건비, 국내 유통비 등을 원가 항목으로 제시했지만, 이자비용,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재고손실 등은 명시하지 않았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휘발유, 경유, 등유, 나프타 등이 함께 산출되는 만큼 전체 원가를 유종별로 어떻게 배분할지도 쟁점이다. 적정 마진 기준도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다.
손실보전액을 둘러싼 협상이 본격화할 시기에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온 점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이스라엘-이란의 전쟁 발발 직후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하는 과정에서 정유사들이 가격 인상을 담합하고 추종한 정황이 드러난 만큼, 정부에 손실보전을 요구할 명분이 약해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이 제시하는 손실 산정 관련 자료에 대한 검증 문턱도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발표될 2분기 실적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1분기 정유 4사가 합산 약 6조원의 대규모 영업이익을 기록한 데 이어, 2분기에도 확대된 정제마진이 수익성 개선 요인으로 반영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국제가격과 내수 판매가격의 차이를 손실로 보는 업계 논리에도 일리가 있지만, 정부 재원과 실적 등을 고려하면 이를 전부 손실로 반영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며 “실제 보전은 최고가격 적용 제품의 내수 판매 물량 등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수준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내다봤다. 산업부 관계자는 “적정 이윤을 반영할 때 국제가격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아예 기준으로 삼는 것은 손실 보전의 원칙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최고액 정산위원회 구성을 마치고 이달부터 운영에 들어간다. 손실보전액 심의는 개별 정유사들의 신청서와 원가 자료가 접수된 뒤 본격 진행된다. 손실보전액 규모의 윤곽은 이르면 9월께 나올 것으로 보인다.
유하영 기자 yhy@hani.co.kr
조회 0·스크랩 0·공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