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들, 중동전 터지자 기름값 대폭 올려…“트럼프 만세”까지
한겨레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발발 직후 국내 석유값 급등의 배경에는 일부 정유사의 가격 담합과 정유사의 주유소에 대한 우월적 지위 등이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정유사 가격 결정 부서에서는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올해 2조 벌 듯” 등 전쟁을 기회 삼아 역대급 실적을 기대하는 적나라한 대화까지 오간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나희석)가 6일 발표한 수사 결과를 보면 에이치디(HD)현대오일뱅크와 에스케이(SK)에너지가 상호 정보를 공유해 가격을 결정한 것은 2년 전인 2024년 7월부터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두 회사는 상대 회사의 가격 정보를 확인할 담당자를 지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서로 정책을 참고해 석유값을 정해왔다. 검찰은 이처럼 석유값 결정을 논의해오던 두 회사가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이후 발 빠르게 가격을 대폭 인상시키기로 합의했고, 이런 결정을 지에스(GS)칼텍스와 에쓰오일(S-OIL)이 추종하면서 석유값이 크게 올랐다고 분석했다. 국내 정유시장은 4개 정유사의 점유율이 총 98.6%에 이르는 과점 시장이기 때문에, 정유사들이 동시에 가격을 올리면 석유값이 그대로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들은 전쟁으로 인한 국제 정세 혼란을 매출 극대화의 기회로 봤다. 지난 2월28일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발발 나흘 뒤인 3월4일 에쓰오일의 가격결정부서 대화방에서는 “어제 제품가 또 10불 오름. 미친 듯. 오늘 가격 100원 더 올린다. 우리 올해 2조 벌 듯”,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등의 대화가 직원 사이에 오갔다. 실제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은 지난 2월 말까지만 해도 리터(ℓ)당 1690원대 초반을 유지하다가 3월4일 1800원 선을 돌파한 뒤 가격이 하루 수십원씩 수직 상승하다가 3월6일에는 1930원대를 나타냈다. 2022년 8월8일 이후 3년7개월 만에 1900원을 넘은 것이다.
검찰은 4대 정유사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자영주유소와 맺은 ‘전량구매계약’ 등도 가격 급등의 배경이 됐다고 봤다. 전량구매계약은 정유사가 자신의 석유 제품만 구매하도록 주유소에 강제하는 계약이다. 정유사들은 각 주유소가 다른 정유사에서 석유를 구매할 경우 손해배상 청구, 비용 회수, 보너스카드 중단 등의 불이익을 준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검찰이 확보한 정유사 직원들의 메신저에는 전량구매계약을 해지한 주유소를 두고 “소송을 통해 골탕을 먹여야 한다” “(다른 방식으로) 가는 순간 손해배상 아작난다” 등의 대화가 담겼다. 검찰은 “결국 이처럼 불합리한 유통구조로 자영주유소들이 받는 석유 가격이 상승하고, 이는 소비자에 대한 석유 판매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일반 소비자인 국민에게 피해가 전가됐다”고 밝혔다.
정유사들이 휘발유 가격 기습 인상으로 폭리를 취한 사실을 숨기려고 정부에 거짓으로 보고한 점도 드러났다. 검찰은 “에이치디현대오일뱅크와 에스케이에너지, 에쓰오일은 지난 3월 초 ‘민생물가 특별관리’ 대상인 휘발유 등의 일일 판매가를 단기간에 대폭 인상해 폭리를 취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산업통상부에 2차례에 걸쳐 실제보다 주유소에 대한 판매가를 낮춰 허위 보고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이날 “보도 내용을 보면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며 “향후 추가로 진행될 조사와 재판 과정에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유하영 기자 y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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